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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ug 20. 2021

가난한데 행복할수 있다 ?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의 전설


70년대 국어 교과서(?) 에 실려서 나이든 분들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가 김소운 시인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 에 등장하는  '왕후의 걸인의 찬' 이다.


(남자는  쓴다고 아마도 집에서 글을 쓰고?)아내가 직장 나가고 점심을 집에와서 먹곤 했는데 남편이 어찌어찌 부인님에게 점심 밥해 먹일려고 방방 떴지만 쌀 한줌밖에 못 구했다. 그래서 간장 한종지에 밥한공기 만들어 놓고는 자신이 개발한 저칼로리 다이어트 메뉴 '왕후 - 밥거찬' 이니 먹던지 말던지 하라 밥상에 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 원래 음식은 네이밍에 따라 가치가 생기기도 하는 법이다. 처럼 만두피를 얇게 못 만들어 욕 먹을땐 새로 개발한 '송편만두'라고 우겨대면 대박!!! 날수도 있지 않을까.... 


전설속 한정식 메뉴 '왕후밥 걸인찬' 식당에서 팔면 얼마 받아야 하나.. 위장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식단이다.


아내가 그 쪽지를 보고 감격해 '왕후 - 밥거' 울면서 말아 먹으며 행복해 했다는 전설이다. 그리하여 '가난해도 우리는 행복해' 를  상징하는 단어로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란 명언이 탄생하게 된다. 확실히 남자가 글 쓴다고 하더니 네이밍 카피라이터 감각이 있다. 


시대상으로 봤을때 인스턴트 라면이 탄생되기전 일제시대때 이야기 이다. 당시 시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인들은 전혀 공감할수 없는 이야기가 '가난한 날의 행복' 이라는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다.  


똑같은 사랑을 담은 똑같은 메뉴인데 대다수 평범한 현대 여성들은 가난한 남편이 차려주는 왕후의 밥 걸인의 찬에 그냥 신세타령 하며 먹을순 있어도 행복해 하진 않을 것이다. 다들 가난한 세상에서의 집단 가난은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지만 풍족한 세상에서 나홀로 가난이란 행복감 과는 거리가 멀다. 시대가 바뀐것이다.


지금시대 김소운 시인 흉내낸다고 부부중 누구라도 가난하다 해서 라면 한봉지 올려놓고 '대관령 한우로 만든 소고기 라면이요. 끓여 먹던지 부숴 먹던지.. 스프는 입맛따라 쳐드시오' 했다면 상대가 감동받아 행복해 하기는 커녕  '우리 이혼해' 란 말이 바로 나온다. 법원에서도 아마 인정해 줄지도.. .



가난하다 해서 행복할수 없는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확률상 쉽지 않을 뿐이다. 둘이라면 확률은 또 다시 반으로 깍인다. 둘이 유유상종으로 한마음이 되어야 하니까..  한사람이 가난을 별로 개의치 않아해도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하면 혼자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자신이 차별 받는건 참아도 처자식 차별 받는건 못참는것이 대부분의 가장들 심리다. 서로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콩깍지 유통기한이 지나면 결국 냉정한 현실만이 남는다.


부부사이에서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에서 행복감을 느끼려면 밥 한그릇 구하기가 너도나도 전부 어려워 그야말로 온 나라가 기아 상태로 허덕일때 이심전심 느낄수 있는 가난속의 행복 이란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주변과의 조화가 단절돼 고립감을 느낄때 우울증에 빠져들기가 쉽다. 근래들어 '벼락거지' 란 신조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자신은 변한것이 없는데 주변이 갑자기 부자가 돼서 혼자만 갑자기 거지가 된 초라한 느낌을 말한다. 고급 외제차가 거리를 꽉 메운채 굴러다니고 명품 소비에 줄을 서며 나라는 점점 부자 나라가 되어 가는데 국민 행복 지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면 시스템의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과거 먹을것이 없어 보리고개를 넘나들때도 대부분 사람들이 자식을 열명 가까이씩 낳아서 나라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노래를 해댔는데 현대는 이렇게 물질적 풍요속에서도 젊은이들이 대를 끊겠다는 행렬에 동참해 인구절벽 사태를 맞고있다. 이유는 한 가지다. 잘사는 나라에서 노예계층으로 자식을 키우기는 싫다는 말이다. 물리적으로 설명한다면 생명과 종의 지속성에서 한 종은 부족할땐 확장하려는 본능이 있고 넘쳐날땐 축소 하려는 성질이 있다. 즉, 지금은 '확장'이 지나쳐 다시 원상복귀로 되돌아 가려는 '수축'의 시대 이다. 


모든것이 부족한 확장의 시대에는 가난해도 작은것 하나로 행복하기가 쉽지만 물질이 남아서 넘쳐나는 수축의 시대는 부유해도 불행 하기가 더 쉽다. 남아서 쳐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고 방식에 고정된 시선으로 세상을 재단하면 현대에도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들이 먹다남긴 유통기한 임박한 왕후밥 걸인찬을 주면 가난한 자들이 행복해 할것이라고 착각다. 70년대 새마을운동 사고 방식으로 대권에 나서는 그들의 시대착오 적인 발상의 근원이 무엇인지 따져보면 그야말로 한심할 따름이다. 


현대인들이 갖는 가난과 불행은 과거처럼 단순한 굶주림이 아니라 불공정에 대한 분노다. 지도자 되겠다는 자가 가난한 자들에게 유통기한 임박하고 저질 재료로 만든 부정음식을 먹게해야 된다는 발상은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후의 밥 걸인의 찬으로 행복을 느끼던 다같이 못살던 시대가 아님을 알아야한다.


질문에 맞는 답을 해야 너는 살아남는다..


Q "풍요한 세상인데 왜 불행한 사회일까?" 


자본주의는 한 사람의 대박을 보며 수억명이 그것을 기준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맛보는것을 당연한 정의로 받아들인다. 복권 당첨 확률이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을 알고 사회적 행복을 따진다면 수억명에게 수백억을 퍼줘서 다들 부자로 만드는것보다 룰을 정해서 한명이 싹쓸이 못하게 만드는쪽이 다수의 만족도에선 훨씬 효율적이고 간단 하다는것을 인간 역사를 보면 알게된다. 그래서 사업에선 독점 금지법을 만들기도 한다.


다들 수백억 가지면 행복 할것 같지만 베네수엘라 처럼 돈을 리어커로 싣고가서 빵 한조각 살수 있는 세상이 되면 수천억 부자를 보면서 또다시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것은 마찬가지다. 


국민 총소득 GDP를 따져도 한명이 천억 갖고 999 명이 거지 인것보다는 천명이 일억씩 나눠 갖고 사는것이 같은 GDP 수치라도 사회적 으로는 훨씬 이익이고 평균 수치가 주는 일률적 착각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 한쪽에 몰린 재화가 유통 되지 않고 소수의 창고에 잠기게 되면 나라에 돈은 많아도 대다수 국민들은 가난하게 된다.)


다 쓰지도 못할만큼 재물을 움켜쥐고 갑질을 해야 한다는 욕심에 너도나도 미쳐 돌아 가지만 분배와 공정의 개념이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으로도 행복할수 있는 사회적 기본 토대이다. 조건들이 다들 기본으로 충족되고 일상화 되면 부담없는 선물처럼 각자 주고받는 마음만 남기 때문이다. 남녀간 조건없는 순수한 끌림과 로멘스도 그럴때 생겨난다.


영화 '기생충'이 전세계 화제가 된 이후 한국의 빈민가를 영국의 가다언 지가 취재한 영상


인구수 비례 집이 남아도는데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소수가 수백채 소유하고 주거 위기로 갈곳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이런 불균형 사회 시스템 안에선 아무리 부자나라가 된들 평범한 인간이 행복할수 있는 확률은 그리 많지않다. 타인의 가난을 보며 상대적 우월감과 행복감을 즐기는 부류가 자본이 약자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자본주의를 정의라 맹신한다.


'여자'의 반대말은 '군인' 이 아니라 '남자'이다. '민주주의' 반대말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니라 군사정권과 같은 '독재' 이다. 공산주의가 인간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것이 증명되었듯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돈신'  믿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라고 착각하고 공산당 타령이나 하며 사회적 행복의 개념 이해를 못한다면 인간은 끝없이 사회적 갈등과 분란만 일삼다 자멸을 반복하는 그저 그런 지능 부족한 존재들일 뿐이다.


인간들에게 사회적 행복이 왜 그리 멀리만 있는지, 점점 테크놀로지는 발전하고 수치상으로 나라는 부자가 되어가는데 사람들은 윤리와 도덕 인간성을 잃어가다들 불행하다고 공멸을 향해 가는지 대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답이다. 맞는가? 틀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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