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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ug 16. 2020

50년전 청춘이던 노인들이 꿈꾸는 세상.

젊은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나와같은 현재 50대에 접어든 연령대가 지나왔던 80,90년대의 감성을 다루는 근래 만들어진 한국 로멘스 영화들이 더러있다. 내용과 품질 상관없이 그 시대를 통한 사람들은 마냥 흐믓하게 분위기에 빠져들고 그 시대를 모르는 세대들은 냉철하게 영화적 관점에서만 보는지라 재미의 호불호가 갈린다.


[클래식] [건축학 개론] [피끓는 청춘] 얼마전 개봉한[유열의 음악앨범]등이 대표적으로 8-90년대의 추억의 연애 감성을 건드리는 영화들이다.



80년대 당시의 청춘들은 핸드폰이 보급되기 이전이라 대부분 지역적 테두리 안에서 서로 우연히 만난다. [응답하라 1988]이 한 골목에 모여살던 청춘들의 이야기 이듯, 학교 주변을 중심으로 만나 쪽지로 서로 약속을 정하고 전화통화를 하려면 부모님들의 감시하에 '누구 집에 있나요? 좀 바꿔 주세요' 집안 검열을 거쳐야만 했다. 


인터넷과 핸드폰의 보급은 '연애편지' 란 것을 써본적이 있는 세대와 없는 세대를 뚝 잘라 가르게 만들었다. 이메일도 답답하고 실시간 카톡으로 메세지를 날리는 시대에 편지로 서로 마음을 떠보고 약속을 정하는 아날로그 원시적 연애방식을 요즘 세대들은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다.


편지를 써서 동생 손에 쥐어주거나 팬레터 보내듯 정성들여 써서 보낸후 반응이 올때까지 애태우는 심정. 해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다. 요즘은 온라인에서 만남 앱 등을 통해  만나는 경우도 많아서 그 자리에서 간을 떠보고 아니면 바로 다른곳으로 타겟을 바꾸는것이 순식간이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1회용 인스턴트식 연애가 쉽게 이루어진다.


영화 '클래식' 한 장면

그 시대 그렇게 이쁘고 순수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50대 주변에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인간이 나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외모적으로 어떻게 변해가는지 서로를 보면서 알게된다.


노인이 된 부모님 세대를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도 예측이 가능하다. 혁명 투사급이 되서 코로나 방역같은것 상관없이 얼씨구나 선동에 휘말려 광장에 나오는 모습들이 자신들과 확연히 다른 세대를 사는 젊은층 들에게 어떻게 비춰 지는지는 전혀 신경쓰려 하지 않는다. 


지금 교회가 주축이 돼서 광장에 나서는 그 노인들이 지나온 청춘은 어떠했을까.. 시대적 아픔을 돌아보면 그들이 하는 행동들이 왜 그런것인지 그 뿌리와 카르마를 알게된다.


그 이전 70년대를 다룬 영화들은 시대적 배경이 군사정권 하에서 청춘들이 투쟁하고 투옥되던 시절이라 순수 로멘스물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수애와 이병헌 주연의 [그해 여름]이 그 시대 청춘들의 아픔을 대변하는듯 하다. 그 시대는 그랬다. 


대학생 자원봉사단으로 농촌으로 간 주인공 (이병헌) 이 시골처녀(수애)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서울에 같이 손잡고 올라왔지만 데모진압에 휘말려 고문을 당하고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사이로 부정해야 살게되는 비극적 시대 상황을 그리고 있다.


내가 이 영화보면서 울었던가?? 수애 팬이라 재밌게는 본거 같음..


70년대 80년대 초반은 군사정권의 기득권 옹호세력과 민주화 운동세력이 두패로 갈리워 내전상태 마냥 거리가 온통 최류탄 화염속에서 백골단과 학생들 간에 거리 전쟁이 일상화 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면서 상황이 역전, 그 당시 기득권 수호층이 몰락한 과거를 그리워 하면서 시대를 역행하고 싶어 과거 추억에 함몰된 노인들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70년대 청춘이던 군사독재 그 시절이 좋았다' 이다. 70년대 항거하던 세력은 거의가 대학생들 위주로 소수 지식인 층이었고 기득권에 순종하던 계층은 대부분 무식하고 힘없는 대다수 서민들이거나 독재의 혜택을 입어 민중을 지배하던 지배계층이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를 서로 애국이라 믿고 상대를 적이라 여겼다. 그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어 70년대 기득권을 옹호했던 측은 현재 나라를 적에게 빼았겼다고 착각한다. (특히나 경상도 와 전라도로 구분되는 지역 패권논리에 빠져서 더 그렇다.)


그 당시 학생운동 하면서 독재에 항거하던 청년도 시대가 바뀌고 반대로 지배계층이 되면서 완장 하나 찼다고 똑같은 짓거리들을 하기도 한다.서로 주거니 받거니 시대가 낳은 아직 유되지 못한 카르마의 상처들이다.


요 며칠사이 쉴세없이 중대본에서 확진자 알림 동선공개 비상 문자 메세지가 끊임없이 날라든다. 그동안 청정지역이라 생각했던 파주 지역에서도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https://news.v.daum.net/v/20200816134751657


'고싶어서 환장한다.' 란 말이 그냥 하는말이 아닌것 같다. 예전에 핸드폰 강화유리 사이를 일부러 뚫고 들어가 힘들게 죽은 개미를 보면서  일부러 죽음을 향해 기를 쓰고 가는지 납득이 가지 않던적이 있다. 지금 세상속 인간들 행동들 보면 이 개미가 계속 오버랩 된다.


https://brunch.co.kr/@yemaya/589


인간의식이 원숭이 수준으로 퇴화 하면서 일부러 죽으려고 기를 쓰는 어리석음은 집단 카르마의 끌림이나 귀신장난 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일부러 마약을 찾아 죽음으로 달음질 하는것을 보면 안다.


세계적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도 그나마 선방한게 못마땅해 일부러 감염을 전파하려고 방역지침과 반대로 가는 행동들을 보면 '죽고싶어 기를 쓴다' 라는 말이 딱이다. 죽음의 길로 알면서도 무조건 향해 가는것은 어리석음 일까 본능일까..


https://news.v.daum.net/v/20200816144828629


말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죽고 싶다고 같이 죽읍시다 물귀신처럼 외쳐대는 모습이 이미 돌이킬수 없는 시간대임을 말해준다. 국가 전복을 위해 죽어도 좋다고 일부러 질병을 전파 하겠다는데 감염과 유행을 무슨수로 막겠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란 말이 딱 어울린다. 유행을 막을수 없다면 비 하는것이 낫다.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과 결정들에 스스로 책임질수 있고 아무런 후회가 없다면 그것으로 된거다. 


Love Is Stronger Far Than We - Astrud Gilberto (1…:

https://youtu.be/0hx-f01M1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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