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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Dec 15. 2021

대립에 '이윤' 남는것이 없다.


한 인간의 개체성은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의 각기 다유전자를 결합해 이루어진다. 한쪽의 유전자 개성이 몰려 엄마나 아빠 둘중 한명을 더 닮을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음양 성질을 결합해 인간은 하나의 새로운 창조적 DNA 개체를 이룬다. 원본 유전자 복제 (Copy) 를 통한 종족 보존과는 다른, 배우자가 누구냐에 따라 자손이 예측불가 새로운 창조적 존재가 될수 있는 이유이다.


불교와 기독교 각기 사고방식이 다른 뿌리깊은 두 집안이 결합했을때 어떤 파탄이 일어 나는지는 우리 부모님을 통해 확실히 알수있다.  결과 나는 일찌감치 모든 종교에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무교다.


갈라져 침몰중인 배를 거미줄 잡고 버티는 '스파이더 맨'..


현재 한국은 절대 화합할수 없어 보이고 양보하거나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각기 다른 두개의 에너지가 갈라져 부딫치고 있다. 이씨와 윤씨가 대권을 앞에두고 다투고 있는데 국민들이 휩쓸려 그야말로 편갈라 강vs강 '물'과 '불' 대립하있어 누가되건 진영간 싸움이 끝날것 같지않고 지금처럼 발목잡기로 국가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침몰할것만 같은 분위기다.


DNA 안에는 씨와 유서깊은 두 가문의 카르마가 얽혀있다. 부모님 모두 전쟁같은 삶을 제각각 치루고 말년에 초라한 회한만을 남기고 계신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탓만 하다 삶을 보내고 나서 남는것이 무엇인가..


결론은 서로 상대가 잘못했다 비난하다 양측 집안 다 망했고 집안은 제사지낼 사람마저 사라져 부모님 돌아가시면 모일 형제 친척도 없이 나홀로 덩그라니 남는다. 말그대로 이윤이 싸워 이윤 남는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아버지의 무책임하고 규율없이 일방적인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 받기도 싫고 어머니의 잘못 굳어진 기독교식 도덕적 규율과 정의를 그대로 이어 받기도 싫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누구편도 들수가 없다. 현재 노년이 되어 차라리 자식말을 들어라 하니 집안이 평안해 진다. 오직 두분의 인자를 동시에 지닌 자식만이 두분 입장을 제각각 이해하고 장단점을 알아 중재를 행할수 있다.



삶은 축복일까 고행일까 노인들 사는 모습을 보면 '(苦)'의 굴레에서 벗어날길이 없어 보인다. 아버지는 요양원 입소후 안정을 찾아 가시는듯 한데, 어머니의 경우, 치과에 당뇨, 병원 행보가 끝없이 이어진다. 부모님의 노환을 마주한 중년이 돼면 대부분 겪어야 하는 삶의 과정들이다. 이번엔 백내장 눈수술을 하기위해 도우미 아주머니와 나 이모까지 3인이 한달을 보호자로 병원 다니느라 일상이 계속 매여 있어야 한다. 수술하기전 보호자까지 코로나 검사도 계속 해야만 해서 요즘 병원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병간호 3년에 효자 없다는 말은 직접 겪어보면 안다. 한사람이 거동을 혼자 못하면 다른 가족들의 시간과 삶이 그대로 엮여다. 의료보험 체계와 노인복지가 이루어 졌기에 망정이지 몇십년전 같으면 서민들은 매달 수백만원 요양 비용이 감당안돼 노인 병수발로 온 가족이 지옥같은 생활을 겪던지 이미 돌아 가셨을 것이다. 거동에 누군가의 보살핌이 항상 필요하고 자력으로 생활이 불가능해 지는경우, 인간에겐 행복을 논할 여력이 없어진다. 보호자가 없는 암환자였던 내가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다.


그래도 내말에 어느정도 수긍을 하는 지인은 병원 의사말 보다는 나의 자율적 치유 방식에 귀를 기울여 스스로 몸을 통제해 나가는듯 한데 이미 고정 방식에 의식이 굳어있는 부모님들에겐 의사말 외에는 어떤말도 먹히지 않는다. 자식이라 해도 선천 무지의 테두리가 가로막아 도와 줄수가 없다. 자식이 죽음을 옆에끼고 텅빈몸으로 보호자 역활을 함에도 그냥 기도로 생긴 기적이라 생각할 뿐인지라 논리적으로 납득 시키는것이 불가하다. 


자식 입장에선 양측 부모님 다 그저 지나온 한들 없애고 지금처럼 화목하게 웃으며 가족끼리 (코로나 사태로 요양원 면회가 안돼 전화로나마) 대화하고 맛있는것 드시면서 무탈하게 오래 살아 계시기만 바랄뿐이다. 그 정도는 자식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리 어렵지 않다. 전화로 서로 따뜻한 말 한마디씩 나누는것 만으로도 가능하다.



 대부분 에고가 옳다고 믿는것이 옳은것이 아니다. 어떤 짓을 해도 예외없이 그들은 늙고 병들고 아프고 결국엔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향해 질주 하는것을 삶이라고 믿는한 쇠멸을 피할수 없다. 나름 현명하게 산다고 잔머리 굴리며 인생 살아도 이윤 남는것 없는 짓을 대를 물려가며 되풀이 한다. 무지와 아집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눈으로 직접 보고 겪고 있는중이다. 


https://news.v.daum.net/v/20211102205645215


바뀌어야 한다. 깨어나야 한다. 수십년 떠들기만 하던 사이, 이미 계몽할 시간은 다 지났고 종말 시계는 이제 자정 울리기 전이다. 죽음으로  몰아가는 거대한 정리의 흐름에 최대한 휩쓸리지 않아야 그나마 버티고 터널을 통과해 나갈수 있다. 관성의 법칙대로 살아가는 무지한 대다수 현 인류에겐 후손들 위해 최대한 카르마의 한들 풀고 편안한 엔딩을 기원해주는 수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 지금 인류가 행하는 못난짓들 역시 훗날 인간종 미개의 역사 한 페이지기록 되리라. 


Nacho Cano - Al encuentro del alma (Instrumental):

https://youtu.be/LpmkG50cK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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