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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May 29. 2022

햇살아래 해방을 꿈꾸며 ..

여름을 준비하다.


7년간 꾸준히 글을 올리다 근래 두달간 글을 안 올리니 근황을 궁금해 하는 독자분들이 가끔 안부를 물어 온다. 근황이래 봤자 별거없다. 적막한 시골 새소리와 햇살아래 매트릭스 모든것에 대한 해방을 꿈꾸며.. 대부분 짐은 아파트 어머니 집에 놔두고 거실에서 하루종일 울리는 어머니 TV 소리가 불편해 근거리에서 정기적으로 장봐 드리면서 따로 산골에 나와 산다. 요양원 입소하신 아버지도 그렇고 연로하신 부모님 두분다 작년보다 건강을 되찾아 그나마 한숨 돌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 기간동안 사람 만나러 카페나 술집 나가기 보다는 집에서 주로 혼술하는 습관이 생겼고 혼자 커피나 와인을 즐기는것에 있어서  바리스타나 소물리에 근접한 지식도 자연스례 생겼다. 작년처럼 가끔 벗들이 놀러와 고기도 구워먹고 담소 나누기에 운치있고 공기도 맑다. 몇년간 코로나 사태로 미세먼지 사태가 잠잠해지고 맑은 공기가 돌아온것 보면 시대 변화란 것이 단순히 인간에게 좋고 나쁘고의 문제만은 아니란것을 알게된다.



삶에는 각자의 역활이 정해져 있고 타인의 아픔을 대신 할수는 없다. 사는것도 죽는것도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영역이며 오로지 본인이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 감당 해야할 에고 각자의 몫임은 분명하다. 


나는 벼랑끝에서 삶과 죽음 양단간 줄다리기를 해야하는 환자들의 심리를 알기에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방법을 필요한 분들과 공유하려 하공감하는 분들중 이 닿는 분들과는 실제적으로 교류해 간다.


구세대 인간의 한계를 인지하면서 을 항상 생각하고 고찰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대부분 준비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래서 에고는 죽음이 살짝 면전에서 기웃거리기 시작하면 당황할수 밖에 없고 여기저기 불확실한 정보를 찾아 다니며 혼란에 빠진다. (지푸라기 라도 잡고싶은 심정을 이용한 종교, 무속, 건강제품, 사칭 등등..  온갖 사기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오직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실체를 (지식이 아닌) 체감으로 아는것 외엔 없다. 조언을 하자니 의식과 육체와의 관계설정에 있어 각자 처해있는 상황이 다른 개개인들에게 개념부터 이해 시키려 해도 유치원 아이들 의식속에 갑자기 양자 물리학을 설명해야 하는것 같은 단계적 어려움을 해소할 마땅한 시간적 공간적 방법 (메뉴얼)을 찾지못해 고민중이다. 나에겐 지극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현상도 상대는 이해 못할수 있다는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각자 살아온 괘적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다. 아는것을 설명하려 해도 짧은 만남에선 마땅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발견했다. (조언에는 각자 처한 상황과 서로를 아는것이 우선이다.)


가족 지인들이야 같이 오랜시간 생활속에서 치고받고 대화도 주고 받고 하면서 따로 신경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변화를 끌어낼수 있지만 서로 교류가 없고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제각각인 타인들을 일일히 한명한명 오래 사귀어 가며 의견을 맞춰 볼수는 없다. 6월달엔 가장 효율적인 대중적(?) 소통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본격적으로 해보려 한다.


그저 당장은 해왔던대로 연이 닿는 분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에고가 무장하고 있는  '지식' 과 '생각'이라는 장벽을 해체하고  '공감' 이라는 의식대 영역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는것이 가장 무난한 방식 같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다 보면 차츰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배부르게 먹지 않아도 마음이 담긴 판타스틱 샐러드를 함께한 그 시간의 만남이 감사하고 즐겁다.


삶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마음속으로 가져 가는것 역시나 모든 생물체 들에게 주어진 본능이자 권리이다.


사람 끼리의 교류에 음식은 빼놓을수 없는 매개체가 된다. 식구라 함은 항상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 집단을 말한다. 음식을 매개체로 사람간 교류가 일어날때는 멋진음식이 멋진 만남을 기록하게 만든다는것을 알수있다. 위장이 없는 나에게 있어 교류의 매개체로 음식을 대함은 양을 우선하는 포만감 대신 마음이 담긴 정갈한 음식을 통해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 행복감을 나누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50대는 남여 관계나 친구들 사회 전반적으로 낄수있는 자리가 한정지어 진다. 특히나 솔로일 경우는 더 심하다. 


나의 경우는 한창이고 철(?)없 40 중반에 덜컥 병마에 걸려 중년을 준비 해야할 시간들이 죽음과 노닥 거리느라 홀랑 날라가 버렸다. 7년간의 공백을 지나 갑자기 준비없이 맞게된 50중반 솔로의 삶을 능숙하게 적응해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쉽지는 않다. 여름엔 174/ 50키로 라는 마른 몸매를 감출수도 없다.


그나마 사람들과 교류를 안하고 혼자 놀기 시작하면 고독사 분위기를 내기 시작하는 나이가 50중반 솔로들이다. 주소록에 형식상 친구는 많을지라도 낄 자리가 없어지고 맘터놀 상대가 없고 외로워 지는건 어쩔수 없다. 여행을 같이다닐 사람도 없고 맛집을 찾아다닐 친구도 생기기 쉽지않다. 함께 나눌 사람이 없으면 모든 문화생활에서 소외 당하기 쉽상이다. 그것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가정위주 커플위주의 문화고 사회다. 그래서 자식들이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기위해 예전 어른들이 그렇게들 나이차면 기를 쓰고 강제로라도 짝을 맺어주려 했었다는다는 것을 중년 솔로가 되봐야 깨닫는다.


중년의 솔로는 이성끼리 만나도 늙어 호르몬의 마력이 작동을 멈춘 상태로 서로 매력을 못 느껴 상대방 재력과 외부적 가진 조건만을 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여자 솔로들에게 있어 내가 처해있는 조건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PASS'  라는것 잘 알고 있기에 남에 있어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나를 대하는 만큼에 맞추어 상대를 대한다. 푸쉬도 없고 끌림도 없다. (젊을때부터 천성이 그래모든 여자들에게 쿨하다는 평을 듣고 연애는 못했던것 같다.)


나이가 있는지라 대부분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은 당연히 가정들이 있다. 가정이 있고 짝이 있는 경우는 자리에 배석하지 않아도 배우자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자기 배우자가 이성친구가 있거나 만나는것 자체를 허용할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모태솔로이자 천성적으로 철벽남 스타일이라 그런것은 절대 아니다. 대다수는 자리에 동석하지 않아도 배우자 라는 투명 인물이 함께한다고 생각하고 대화해야 오해나 실수가 생기지 않는다. 가정이 있는 경우는  남자들 끼리 술자리를 가져집에서 기다릴 와이프 눈치를 보고 허락을 구해야 마음이 편하다.


복잡한 인과 관계들을 잘 정리해서 남 부끄럽지 않는 깔끔한 사회적 교류를 형성 하려면 50대는 인품이 필수로  따라 주어야 한다. 젊을때처럼 모여서 부어라 마셔라 하다간 추하게 막가는 인생으로 접어들 확률이 농후해진다. 원숭이 흉내를 내라고 주장하는 사회를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한다 라며 무작정 따라 다녀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콘트롤 하지 못하고 멋대로 자유를 주창하는 원숭이 종족에게 연애를 빙자한 온갖 지저분한 치정 사건들이 발생하고 '원숭이 두창' 같은것이 유행 하는건 당연하다.


https://news.v.daum.net/v/20220529124541829


원숭이 두창의 확산 원인으로 유럽 국가들에서 벌어진 대규모 난잡파티가 지목되고 있다. 무기력한 현실속에서 자유와 해방은 무작정 부귀와 쾌락을 쫒는 방종을 의미 하는것이 아니다. 대부분 원숭이 종족이 부르짖는 쾌락과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망가지려 발광 하는것이다. 애초 방향 설정이 잘못되면 어김없이 망하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같이 망하자고 끌고 들어가려는 물귀신 행렬에 애초부터 끼지 말아야 한다.


외롭다고 사람만나 지지고 볶고 술과 분위기에취해 막가자고 원숭이 종족에서 우기는것을 사는것이고 연애라 우기느니  홀로됨이 차라리 낫다고 본다. 중년은 어떤 실수를 해도 낭만이고 용납되는 짝짓기 시즌 구간의 청춘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넷플릭스 <나의 해방일지> 를 재미나게 보고있다. 매일 똑같은 일상속에 갖혀 무기력해진 청춘들 심리를 잘 묘사해 한국사회 현대인들의 공감대를 끌어낸다. 사람들은 똑같은 일상의 반복속에서 무엇에 갖힌지도 모르고 무엇으로 부터 해방되야 할지도 모른다. 청춘들은 사랑을 꿈꾸지만 그런것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도 정답이 없다. 시청자들은 그저 우울증에 함몰된 등장 인물들의 정답없는 연애를 열심히 응원하고 '추앙' 하게 된다. 전작 <나의 아저씨>도 그렇고 대사를 보면 작가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꽤나 깊다는것을 알수있다.



작년 여름에 바람을 감당못해 파라솔을 두개나 부러뜨려 먹었다. 파라솔로는 시골 바람이 감당이 안된다는것을 알기에 올 여름엔 캐노피 천막을 설치 하느라 노가다를 했다. 젊은 시절 나의 애장품 전문 산악인용 텐트인 슈퍼라이트3 십몇년만에 마당에 꺼내 놨으며 냉장고 하나에 와인을 잔뜩 사서 쟁겨놨다. (이틀에 한병씩 까먹는지라) 올 여름 햇살은 전부 내것인양 마음껏 일광욕과 와인을 즐길 준비가 됐다. 


https://news.v.daum.net/v/20220530131111446


나만의 해방일지에 6월이 어떻게 흘러 갈지를 지켜 보도록 한다. 올해 여름도 작년처럼 태평하게 일광욕하며 태닝을 시도할지는 올해 태양이 어떨지에 달렸다. 기후변화가 심상치 않고 지구가 작년과 또 달리 보다 심각한 이상 구간에 본격 접어 들었다는걸 왼만하면 눈치챌수 있다. 코로나에 이어 원숭이 두창, 급성간염등 온갖 전염병이 유행 하는것을 보면서 인류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적 마무리 시간이 눈앞에 실체로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Gardel: El Día Que Me Quieras:

https://youtu.be/b-cM-vjZ7h8

https://youtu.be/Zk44RibwM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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