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Ah Apr 09. 2017

무엇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의식 '슈퍼에고'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기 위해 복닥거림에 매달리다 보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점점 본성을 잃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자신의 영혼을 끌고 가기가 쉽다.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의 삶이란것이 그런식으로 운명이란것에 휘둘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가장 독보적인 서양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트는 인간의식의 본질을 이드와 에고 그리고 슈퍼에고 세가지로 분류한다. 프로이트가 서양 심리학 역사에서 세운 불멸의 업적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에게 슈퍼에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시킨 것만으로도 프로이트의 천재성을 알수있다.


이드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이기적인 성질이 특징이며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성질이다. 어린아이가 곤충을 가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괴롭히는것은 이드의 원초적 본성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이다.


인간이 타 생명을 먹이로 삼아 육식을 즐기는것 자체가 이드의 동물적 성질을 벗어날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것이다. 인간의 감추어진 본성이 동물적인 이드라는 학설은 잘 알려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 라는 소설을 탄생시키게 되는 근간이 된다.


에고는 우리가 인간이라 말하는 바로 그 의식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성질이 강해 자존심, 독선등을 주로 하면서 갖가지 개성을 뽐내게 되는데 우리가 사는 사회생활이 바로 에고들이 서로 어우러져 치고받는 난장판을 벌이는 사회라는 것이다.


슈퍼에고는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 지닌 '신성을 향한 양심'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기심이 아닌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심이 강할수록 인간의 본성은 점점 슈퍼에고로 진화하게 되며 원숭이가 아닌 신적인 존재에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프로이트가 분류한 이 세가지 인간의식은 현재까지도 심리학의 기둥으로서 쓰여지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인간 의식은 그 세가지 분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에고는 언제나 매순간, 동물적인 이드와 신성인 수퍼에고 두가지 길의 선택권을 가지고 하나를 선택해 자신을 끌고가게 된다. 이드가 판치는 세상은 온갖 범죄에 서로를 물고뜯는 지옥에 가까워지고 슈퍼에고쪽을 선택하는 에고가 많아질수록 인간세상은 성숙한 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낙원에 가깝게 된다.



우리는 인간이 슈퍼에고를 발현시켜 얼마나 위대할수 있는지를 역사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데 그런 위대한 인물들을 실생활에서 만나보기란 극히 희박한 확율로 내 경험으로는 동시대에서 아직까지 가끔 들어는 보지만 만나본적은 없다. 왜 인간은 얼마던지 위대할수 있는 자유의지가 각자에게 전부 부여돼 있음에도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꺼리는걸까..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에고의 두려움과 이기심이 위대해 지는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더라도 위대한 인물들의 인생은 타인을 위해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스스로를 내던져 불행과 고통으로 그 끝을 맺는 경우가 많기에 에고 입장에서는 그 불행의 두려움을 감당하기가 벅차다고 느낀다. 자신만 손해볼수 없다는 이기심이 나만 당하면 억울하다는 보호본능으로 작동하며 대부분 선택의 기로에서 타인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하는 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나하나 내 가족들 먹여 살리는것도 힘든 세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남보다 더 잘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속에 물질적 성공에 몰두하는것이  일반 에고들이 지닌 의식의 한계이다.


이순신 장군 같은 인물, 예수같은 인물, 역사적으로 기록된 위대한 인물들의 의식엔 그런 평범한 에고들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다. 성서에 기록된 예수라는 인물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던진 행위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인간역사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뜨거운 인류애가 가진 거대한 에너지 앞에서 위대하다는 찬양이 안나올수가 없다.


온갖 모략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전장에 바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 처럼 내던진 안중근 윤봉길 의사 이야기..그야말로 프로이트가 말한 슈퍼에고 의식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비록 그들의 개인적 운명은 비극이라 할수 있겠지만, 그들이 느낀 위대함에 대한 성취감과 자부심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감정일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삶이 실패자의 삶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평범한 에고들은 자신이 잘먹고 잘사는것에 모든 초점이 가 있기에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슈퍼에고의 위대함을 아무런 가치없는 행위라고 여기게 된다. 점이나 사주팔자를 보러가서도 관심은 온통 언제 돈을 버는가 언제 짝을 만나는가 이런 타령뿐이다. 그런 에고들에게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같은 사주는 돈버는건 고사하고 비명횡사할 끔찍한 악사주라고 여길뿐이다. 누구도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인간이 위대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이런 위대함의 가치를 에고들이 거부하는 특성때문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가 가지게 되는 의식성장과 영혼의 보상을 쓸데없는 짓거리라 평가절하 하고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에고는 아무리 똑똑해져도 원숭이의 틀을 벗어나기가 힘들게 된다.



지금의 인간세상을 보자면 에고가 수퍼에고로 향해 위대함을 추구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드로 추락하는 것만 줄여나가도 인간세상은 한결 나아질수 있다. 뉴스를 보면 사회적인 인간의 영혼과 의식은 점점 이드화가 심화 되가는것이 기정사실화 하는듯 보인다. 남보다 잘살기위해 돈을 벌어야 된다는 온통 이기적인 의식에 사로잡혀 이드로 향하도록 사회가 부추기는 형국이다.


에고는 성공한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들 이라는 착각속에 그들을 우러러보는 성향이 있어 실제 타인을 위한 위대한 사람들의 희생은 가치없다고 외면하거나 탄압하고 무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이 겪는 시련들이 대부분 비슷한데 에고는 슈퍼에고를 지닌 위대한 사람을 잘난척 한다고 비웃고 질투하고 손가락질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남과 다른것을 배척하는 에고라는 원숭이들의 집단 기질이 그렇다.


종교 영성인들 조차 스스로 타인보다 자신이 의식이 진보했다는 착각속에 이기심만 더 키우는 경우를 너무도 흔하게 접하게 되는데 이드의 성질에 당위성까지 부여하는 뻔뻔함을 보고있자면 가히 혼탁의 세상이라는 말이 실감날수 밖에 없다. 과연 인간은 이기심에 근거하지 않은 순수하고 거대한 희생과 사랑을 택할 용기가 없는 생물체인지.. 그만큼 위대해진다는것이 에고에겐 힘든길 이기에 인간은 계속 역사적 지나간 위인들에게 찬양을 보낼수 밖에 없나보다.


아프리카에서 의술을 펼치다 생을 마감한 고 이태석 신부 이야기가 근래들어 내가 접한 가장 위대한 인간의 스토리 이다. 우리는 그런 희생정신을 지닌 위대한 인간들의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는다.


동시대에서 성공으로 우러러보는 존경보다 진짜 위대한 사랑을 지닌 이태석 신부 같은 위인을 한명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바램이 든다. 더불어 나의 에고는 얼마나 큰 수퍼에고 의식을 지니고 얼마만큼 위대해 질수 있을까...깊은 화두속에 잠긴다. 나에게 주어진 내가 풀어야할 숙제라는 생각이다..


Flávio Venturini   Minha Estrela 2009:

https://youtu.be/WnPw0s0yJJY


매거진의 이전글 '나' 님은 먼곳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