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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un 04. 2017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강행군

고생이 삶의 행복인 아이들 키우기..


며칠동안 어린 조카들과 난장판을 벌이며 매일같이 외출하고 놀아주고 있는데 아이들을 하루종일 돌보려면 왼만한 성인들도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엄마들은 그런것을 기꺼이 감수한다. 동생이 왜 앞길이 보장돼 있던 자신의 모든 사회적 성공과 포지션을 포기하고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했는지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돌본다는것보다 아이들을 키우는 행복과 즐거움에 몇년간 모든 시간을 쏟는다는것은 겉으로는 정말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마음속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꽉차있어서 하루종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눈을 감으면 눈에 밟힌다는것이 무슨말인지 비로서 알것같다.


어제는 낮에는 파주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에 가서 쇼핑을 하고 저녁때는 고등학생인 큰 조카와 함께 심야영화로 '원더우먼' 을 보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다.



주책맞게 동생은 연예인인 박보검이 싸인회를 한다고 벅적대는 장소를 기웃거리느라 아이들을 내팽개(?)치는 바람에 내가 혼자 아이들을 케어하기도 했고 다행히 아이들이 놀만한 시설들이 여러개 있어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저녁때 큰 조카들이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니 정말 오래간만에 삼형제가 한자리에 다 모여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자장면 짬뽕 군만두 두세트 시켜서 맥주한잔 나눌수 있었다. 작은 오빠가 곧 죽는다고 생각해 한국을 힘들게 방문한 동생에게 내가 농담으로 물어본다.


"야, 내가 만약 죽는다면 너 와있는 동안에 동안에 죽는게 낫지 않냐? 너 나 죽었다 소리들으면 오기 힘들거 아냐.. 너 온김에 죽으면 따로 안나와도 돼니 서로 편하지 않을까.?" 편리를 추구한다면 그게 더 합리적인것 같은데..


" 오빠 맘대로 하세요..나 가고나서 죽어도 난 못오지.."


어차피 자기는 못오니 죽으려면 내가 원할때 아무때나 죽으란 말이다. 죽던 살던 한국에는 당분간 못오는걸로 합의봤으니 깔끔하고 된것같다. 식구들이 마음의 준비까지 작년에 미리 다 해둔 상태인지라 집에서 내가 죽던살던 크게 영향받을 친척이나 식구는 이제 아무도 없다. 주변에다 모두 죽은사람 인증받고 유령처럼 사는 자유로운 시간들은 앞으로도 계속 될듯...지금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시간들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들고 좋다. 먹는것에도 자유롭고 몸도 가볍고 행복이란 감정도 요즘와서 알게된듯 하다.


형과 큰 조카들이 와서 동생 조카들이랑 전부 아버지를 찾아뵙고 오리배를 타기위해 허니랜드를 갔으므로 오늘은 처음으로 맞는 고요한 자유시간 이다.


내일도 나 없이도 동생이 아이들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친구를 만나러 종로를 나가기로 했단다. 아이들이 한국오면 추추트레인(지하철)을 타러가자고 노래를 하므로 지하철 구경을 꼭 시켜줘야 한단다..실제로 집에서도 눈만뜨면 매일 추추트레인 타령을 한다. 어른들은 타는거 자체가 짜증나는 지하철이 아이들에겐 가장 타보고싶은 놀이기구(?) 인 셈이다.


동생말로는 며칠동안 디즈니랜드 관광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어떤게 가장 재밌었냐고 물으니 디즈니랜드 안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의 작은 놀이기구라고 하더란다..아이들이 재밋고 하고싶어 하는거랑 어른들이 생각하는거랑은 왼전히 다르다는것을 알수있다.



그렇게 이틀동안 자유로운 고요한 시간을 책을 보며 지내기로 한다. 20대때 저술했다는 켄윌버의 초장기 베스트셀러인 '무경계' 라는 책의 선전문구가 하두 끌려서 일단 빌려왔고 복수를 위해 흑마술을 배웠지만 복수를 마친후 미음을 고쳐 깨달음을 얻고 성자가 된 드라마틱한 사연을 지닌 '밀라레빠' 의 전기 두권이 이번에 보려고 빌려온 책이다.


나는 한국의 대부분 어른들이 기특해 하는 아이들이 일찌감치 '철이든다' 라는 현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겐 그것이 성숙하다는 느낌 보다는 아이들 마음속의 '어둠' 으로 느껴지는데 한국에서 자란 이번에 초등학교 졸업반이 된 조카에게서 그런 사춘기적 어둠을 느낀다.. 초등학생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갑자기 키가 너무 커져서 자기 엄마보다도 큰거같다. 어린애 같지않게 쭉 빠져 늘씬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동생들 조카들처럼 내가 놀이동산을 즐겁게 데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런걸 달가와 하지 않는다. 학원을 다니느라 부모들 하고도 대화를 잘 하지 않고 큰애는 하루종일 스마트폰에만 매달려 있는것처럼 보인다. 올해 어린이날도 삼촌으로서 용돈을 주는것으로 퉁쳤다. 말하는거로 보아 남자인 큰애와 달리 소녀로서 예민한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느낄수 있는데 삼촌이 뭘해주면 의무적으로 뱉는 ' 감사합니다'  란 예의바른것도 싫고 나이와 맞지않게 모범적으로 행동하는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기계적으로 뱉는 '감사합니다.' 란 말에는 거리감이 있다. 가족이라고 인정하는 범위에서 내가 벗어났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한마디로 조숙하다는 말은 그만큼 빨리 사회 시스템을 눈치채고 적응하려고 한다는 말이다..여자아이들은 그런것이 빠르다..


내가 그랬고 대부분의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듯 나이에 맞지않게 철이들고 조숙하게 되는 근본원인은 아이가 입는 마음속의 상처로 인한 어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가 뭔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이들이 그것에 대해 자기 보호본능을 발동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사춘기때 그런것들을 잘 케어하지 못하면 심령체에 우울한 어둠의 흔적을 남기게 되고 평생을 따라다니게 된다..


한국에서 크고 자란 형 조카 아이들과 이번에 미국에서 온 동생 조카들과 같은 나이때를 내가 다 지켜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사춘기로 커가고 사회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한눈에 보이는것 같다. 아이들 마음속에 어둠이 자리잡지 않게 성인이 될때까지 정상으로 클수있는 사회 시스템은 과연 가능할까..돈이 많아도 문제가 되고 없어도 문제가 된다. 요즘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정유라를 보면 부유한것이 꼭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환경은 아님을 알수있다. 결국은 현명함의 문제이고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크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집단적으로 받는 상처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시스템이 아직 그러하니 어찌하리..사회를 바꿀만큼 무지함에서 벗어나야할 인간들의 의식은 아직 갈길이 멀게만 느껴진다..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성인이 될때까지 정상적으로 커갈수있는 사회...지금 인간의 의식수준에서는 막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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