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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ug 25. 2017

주는대로 감사히 먹기

나를 살리는 소중한 한끼식사


근 한달간을 제대로 식사를 못하고 빵과자 라면 자장면등 밀가루로만 연명하다 상태가 좀 안정되는듯 해서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람몸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라 하루 한끼먹는것이 일상화돼면 한끼 먹을 시간이 돼야만 슬슬 배가 고픈듯 그렇게 세팅이 된다. 나같은 경우 어제 처음 밥한공기를 아침에 먹었더니 24시간이 지나도 배가 고픈줄 모른다. 이틀에 한끼 먹는게 정상인것처럼 몸이 세팅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저께 까지 하루는 통증으로 굶고 하루는 빵이나 라면 하나먹고 하다보니 그렇게 몸이 인식해버린 것인데 이틀에 한끼 먹어도 전혀 영양에 지장만 없다면야 별 문제 없을테지만 제대로 된 컨디션을 되찾으려면 그런 패턴을 조금씩 정상패턴으로 바꿔야만 한다. 몸이 리미트를 모르고 계속 말라가는걸 저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175키에 50킬로 몸무게가 리미트인줄 알았는데 그 제한선도 무너지고 40킬로대로 진입하고 보니 아프리카 난민처럼 끔찍한 해골 몰골이 되어간다.



어제먹은 밥과 된장이 소화되는걸 지켜보고 감시하느라 밤새 잠을 제대로 못잤는데 음식물이 주먹만한 종양 부근으로 다가갈수록 긴장이 된다. 장의 연동 운동이 저지를 받을때마다 종양 근처에서 강한 압박과 통증으로 땡땡하게 부풀어 오르는데 마사지등을 해서 연동운동을 도와야 한다. 다행히 종양부위를 지날때 느끼는 가장 처참하고 끔찍한 통증이 없어 밤새 마사지를 하면서도 감사를 드린다. 창자속을 칼로 몇시간 긁는듯한 그 통증에 비하면 압박 통증쯤이야 애들 장난이다.


어쨌든 두세시간 자고 아침이 돼서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아서 아침을 먹으러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한다. 몸을 정상인들 처럼 하루 세끼 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일단 한끼 정도로 적응시키려면 억지로라도 최소 24시간 마다 음식을 먹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아침 드라이브를 나선다. 밤과 아침에 여우비가 내린 바람에 날씨가 너무나 상큼하다.



9시 되기전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운이 없게도 된장찌개 잘 끓이는 인간문화재 아주머니가 일찍 가셔서 안계신다. 알고보니 내가 오면 주는 된장은 모텔과 식당 주인 사모님이 직접끓인 된장이라서 하루에 먹을수있는 시간은 딱 두번 아침 8-9시 저녁 7시 정도로 정해져 있다. 자기가 끓인 된장이 사모가 끓인 된장맛이 안난다는걸 스스로 잘 아는 주방 아주머니가 어떡하냐고 다른식당 찾아보라고 하길래 아무거나 달라고 하니 오늘은 김치국을 내준다.


시골 식당의 특징대로 손님은 왕이 아니기 때문에 주는대로 먹거나 아니면 다른데를 가야 하는데 마땅히 갈만한 다른 식당이 없기에 주는대로 감사히 먹어야 한다. 어떤날은 청국장 먹으라 하고 어떤날은 김치찌개 먹으라 하고 메뉴판은 그저 단체손님이나 예약손님을 위한 것이고 뭐가 걸릴지는 랜덤이다. 다행히 김치국맛도 괜찮고 반만 먹고 남겨도 조금 덜 미안해진다. 잔돈이 없다길래 다음에 드릴께요 하고 외상까지 하고 왔다..비록 먹고싶은 된장찌개는 못 먹었지만 억지로 한공기를 다 먹고 과식으로 부담스러운것 보다 반공기만 먹으니 한결 몸도 기분도 가볍고 좋다. 조금 있다 낮에 대도시인 광주로 나갈 생각이므로 배가 고프면 광주에 나가 맛있는걸 사먹으면 된다.



오늘부터 이틀간 대도시인 광주에서 저녁때 월드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아마 비가와서 관계자들 심정이 조마조마 할것같다. 시에서 주최하는거라 어차피 상업적인 행사는 아닌지라 유명 뮤지션은 없고 아마도 길거리 공연단 정도 되는 세계민속 음악단들이 그런저런 공연을 펼칠테지만 그래서 제대로 된 공연이나 페스티벌을 볼 체력이 안되고 오랜시간 서있기 힘든 나같은 경우는 더 부담이 없다. 그냥 둘러보는 정도로 구경만 하다 올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사람구경이나 하다가 군것질 거리 있음 좀 하고 들어올 생각이다. 그전에 농수산물 시장에 들러 포도를 살 생각인데 광주에 있는 농수산물 센터는 그 규모도 놀랍지만 가격도 상당히 만족스러워 작년에도 포도 사러 광주까지 가곤 했다. 지금부터 9월달은 포도를 마음껏 먹을수 있는 포도의 계절이다.


길거리 트럭에서도 9월 중순만 돼면 포도 한박스에 7천원 정도로 가격이 떨어진다. 작년에 싸다고 보이는대로 박스를 사서 즙짜먹는다고 생난리를 치고 주변 나눠주고 처치곤란으로 초짜티를 냈는데 올해는 딱 내가 먹을 만큼만 살 생각이다. 작년 경험에 비추어 즙짜먹을 생각은 접었으므로 제대로 통통한 녀석들을 제가격주고 조금만 사는것이 더 낫다. 워낙 먹는양이 적어 하루 한송이면 하루 식사를 대용할 정도로 충분하다.


역시 비가 오고난후의 날씨가 가장 상큼하고 좋다. 광주라는 대도시에 나갈 생각을 하면 교통때문에 좀 짜증나기도 한데 거리와 상관없이 주변 숲길을 드라이브 다니는거랑은 확실히 다르다. 여우비가 어떻게 될지에 따라 광주에 나가느냐 마느냐..행사 관계자들도 조마조마 할테지..



시골에는 진짜 듣도보도 못했던 생물체들이 여기저기 산다. 어제는 툇마루 바닥에서 기어나오는 뱀도 보고 먼지로 위장한 생물체들은 정체가 뭔지 아직도 모른다. 먼지만한 거미도 있고 어떤 녀석은 기와 지붕에서 밑에 소나무까지 2미터가 넘는 공간을 가로질러 집을 짓는 엄청난 스케일을 보이기도 한다. 토퍼밑을 들춰보면 하루에도 먼지가 까맣게 보이는데 상식적으로 바닥에 깔아논 이불밑에 먼지가 쌓일리는 없고 전부 벌레들이다. 이 녀석은 도데체 뭘까...의자에 달라붙어있는 나뭇잎 비슷한 녀석을 보면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마치 의자헝겁처럼 위장을 했는데 어떻게 한것인지.. 소나무 잎처럼 생긴 거미도 그렇고.. 환경에 따라 자신들 모양을 만들어가는 곤충들의 위장술은 그야말로 대단한 능력이 아닐수 없다. 정말 신기해 신기해... 생명이란건 정말 신비로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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