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사건들은 지나고나면 각자 마음속에 흔적들을 남기게 된다. 그것을 기억 이라고 하는데 기억이란 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던지 왜곡이 가능하다. 지난번 응급실 실려가서 수술 받았을때 열흘 가량 왜곡된 기억속에서 지낸 경험이 있기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의 기억들은 전혀 믿을바 못된다는걸 알게됐다. 분명 마취주사 맞기전인데도 수술실에 실려갈때부터 전혀 사실과는 다른 엉뚱한 것만 보고있었으니..
분명 내 기억으로는 수술한다고 어두컴컴한 지하실 같은데로 끌고가서 아줌마가 마취합니다 하고 수술 시작한다고 하는걸 똑똑히 기억하는데 현실에서 절대 그럴일은 있을수 없다. 내가 눈으로 보는걸 믿을수 없으니 당시 기억들 모두가 전부 믿을수 없는게 당연하다.여성스러운 내면이 있음직한 의사선생님을 내 눈에서는 아줌마로 왜곡시킨듯 하고 죽음을 대면한 불안한 내 의식이 밝은 수술실을 어두운 지하창고로 둔갑시켜 버렸다고 추측해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오래된 기억일수록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을 왜곡시킨다. 노인들이 하는 옛날 이야기나 증언들이 큰 뼈대는 맞을지라도 세세한 부분에서는 그다지 신빙성 없는 이유가 기억들을 멋대로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연로한 부모님과 지난 옛이야기를 나눠보면 확실히 알수있다. 가족끼리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의 기억이 제각각 다 틀리다. 내가 어려서 기억을 못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본 부모들의 불화들 전부 기억하고 있다.
어린시절 부모님 사이에 벌어졌던 불화와 다툼을 객관적으로 다 지켜보고 또렷히 기억하고 있는데 두분다 자기에게 유리하게끔 기억들을 만들어내서 옛날 이야기라고 “그때 니네 아빠가 그랬단다..” “니네 엄마가 그때 그랬었어..” 두분다 핵심은 외면한채 상대방이 잘못했고 자신들의 정당성만 각자 기억하고 계신다. 젊은시절 부부간 불화로 가정이 엉망이 된것이 자신이 잘못한게 아니라는 위안을 가지기위해 각자 마음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만드나 보다.
내 나이때 세대를 보면 주변에서 이혼하는 부부들을 정말 흔하게 보게된다. 쭉 가는 부부보다 이혼이 더 많은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 들어보면 불화로 이혼한 대부분이 자기에게 불리한 기억은 본능이 후다닥 지워버리고 다들 자신이 가해자가 아닌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진짜로 생각한다. 한쪽말만 들으면 상대방이 진짜 나쁘다고 오인할수 밖에 없게된다. 하지만, 중간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쌍방이 다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억이 왜곡될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이용하면 장점도 있다. 남에게 피해 준것이 아닌이상에는 이미 지나간 사건들에 대한 안좋은 피해의식 기억을 품고있는것 보다는 차라리 아름답게 왜곡해서 미화된 기억을 갖고있는것이 정신건강상 훨씬 낫다. 누구도 피해자가 없는 사건들 자기가 어리석어 실수하고 창피했던 기억들 같은건 죽고싶어 !! 비명 지르고 이불 걷어차고 발광할게 아니라 자기도 웃고마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다.
아픈 상처들은 최대한 아름답고 좋게 지우개로 지우고 꾸미고 그렇게 심령체에 남겨진 오염들을 청소하고 치유한다.. 무거운 기억들을 덜어내기 위한 청소 작업들을 하느라 이틀 내리 자고 하루 쉬고 또 이틀 내리자고.. 그렇게 지냈다. 심령체에 새겨진 오래전 기억에서 오는 오염을 청소하는데 잠만큼 좋은게 없다. 꿈을 이용할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기를 당했거나 배신을 당했거나 실제 피해를 입고 불행을 경험할때 남을 원망하는 감정 같은것이 잘 지워지지도 않는 최대의 골칫거리 오염체가 된다. 대부분이 이게 가장 걸림돌인데 어린시절 부모에 대한 사무친 원망을 중년이 넘어서 까지 지우지 못하고 가진 사람도 봤다. 수십년 도를 닦아도 어린시절 청소년 시절 부모에게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청소하기가 그렇게 어렵나 보다. 그나마 문제나 오염이 커서 겉으로도 보이는 경우는 청소하기가 맘만 먹으면 쉽다고 하겟는데 진짜 문제는 자신도 잊어버린채 내면에 꽁꽁 감춰진 자잘한 상처들이 찾기도 쉽지않고 보이질 않기에 청소도 쉽지가 않다.
이틀 내리 잠자면서 지나온 시절들을 하나하나 들춰내 왜곡된 기억들이 있는지 검토해보고 상처로 남은 기억들은 적당히 꾸미고 지우개로 오염부분을 찾아내 지우는 작업을 한다.
상상으로 눈앞에 거대한 캠프파이어 장작들을 쌓아 불길을 만든다.. 안 좋은 기억들은 그 속에다 하나하나 내던져 태워 버린다.. 망가뜨린 내 육체에 대한 미안함도 불길속에 던져 버린다.. 이미 지나간 사건들은 기억이라는 데이터 라는것외에 그다지 써먹을데도 없고 중요하지가 않다. 나에게 벌어졌던 소소한 지난 역사를 누가 기억할 것인가.기억이란 오로지 내 머리속에 남겨진 삶의 잔재들이다.. 지나온 과거들을 되돌아 보면서 사랑에 인색했던 아쉬움들을 사랑이 충만한 기억으로 왜곡시키고 꾸미는 작업을 한다. 쓸데없는 자존심 차리느라 단한번도 사람에게 사랑합니다 란 말을 뱉어본적이 없다.. 가장 아쉬우면서도 후회스러운 부분이다.
공포영화 ‘곡성’ 에서 나온 대사중 “뭐가 중한디?” 라는 말이 한때 유행어가 됐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인간에게 있어서 뭐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가? 결국 추억이라는 데이터에서 남는건 오로지 사랑한다 라는 감정밖에는 중요하지가 않음을 알게된다. 나에게 다시 청춘의 삶을 쥐어준다면 무엇을 할것인가.. 대부분 그 나이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느라 이것저것 공부하고 성공하기 위해 사다리 타기와 줄잘서기 등 사회적 관계 쌓기에 노력할테지만 그런것 보다도 사랑할수 있는 나이에 충분히 넘칠만큼 사랑을 아낌없이 배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십대 사회 초년생들에게 사회는 이력서 라는걸 요구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그 나이때의 이력서는 학력과 사회경력들을 채울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을 지나가보면 인생 이력서에서 채워야 할 가장 중요한것은 ‘사랑’ 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항목에서 채울게 없어 허전하거나 나처럼 실패한 전적만 있다면 기억들을 만들어내서라도 채워넣어야 마음이 푸근해지고 아쉬움이 남지않게 된다. 중요한것은 지난 사건들의 기억들 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신안에 얼마나 충만한가 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없다고 대상이 없다고 사랑하는 마음마저 없다는건 핑계일뿐이다..구름을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 라는 포근한 마음을 갖는것이 핵심이다..
상처되는 기억들은 모두 태워버리고 텅빈 마음에 사랑이란 연분홍빛 에너지로 기억을 대체한다..어린시절도 사랑스럽고 지금까지 내 인생이 사랑으로 채워졌음을 만끽해본다. 사실이 아니면 어떠하리 ... 중요한건 이미 지나버려 만질수도 없는 먼지같은 사건이 아니라 남겨진 마음이 핵심인걸.. 젊은시절 만났던 사람들에게 표현을 못했고 안했기에 사건도 당연히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모두를 사랑할수도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고 나는 그 모두를 사랑했었노라 왜곡하기 상상을 해본다.그리고 인간으로 할수 있는 최고의 체험과 경험은 사랑 이었노라 결론을 내려본다.
연애란것에서 실제로는 미안한 일들이 참 많다.. 대부분의 후회는 연애할줄도 모르면서 상대에게 상처만 줬던 흔적들이다. 이기적으로 사랑을 받기만 하면서 상대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준 죄책감은 쉽게 씻겨지지 않는다.. 피해의식 보다 가해의식의 죄책감이 더 씻어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죄는 짓지 말고 살아야함을 뼈저리게 깨우친다.가해의식은 혼자서 지우고 싶어도 잘 지워지지가 않는다..고맙고 미안하고.. 나 참 나빴어.. 계속해서 상대를 축복해주고 반성하는수 밖에..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육체에게도 그동안 잘 썻노라 고마움도 느끼고.. 망가뜨려서 미안.. 토닥이기도 하고.. 앞으로 한두달은 계속 쓰잘데기 없는 기억들 불꽃속에 내던지고 기억들 청소하기 위해 잠을 잘듯 싶다..정말 식물인간처럼 한두달은 오직 잠자는것에 열중.. 푹 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