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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ug 03. 2018

무의식을 기록하다..

존재함을 인식하기..


꿈을 꿀때마다 최대한 수기로 기록해 보기로 한다.. 글씨를 직접 손으로 써본지가 거의 30년은 된것같다. 20대 중반에 유럽에서 뻔질나게 연애편지를 왕례하던게 마지막 이었으니 25년 정도..? 얼마나 글씨를 안썼으면...필체를 알아볼수도 없을만큼 생각보다 엄청 못나게 쓴다는걸 알게된다.


꿈을 기록하면 근래 자신의 의식이 어떤 상태에 붙잡혀 있는지 객관적으로 관찰이 가능하다. 그 어떤 상상력도 꿈의 자유분방함에는 당해낼수가 없다.. 이성의 고삐를 놓아버린 무의식은 잠시도 쉴세없이 멋대로 기괴망측한 세계를 창조해 낸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날때.. 인간의 의식은 그것을 보통 바로 잊어버리게 되는데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무의식을 해매다 바로 망각해버렸을 뿐이다.. 나 역시 루시드 드림이 아닌경우는 잠에서 깨어 바로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보통 십여분 후면 잊어버리게 된다. 그건 꿈들이 단순히 의식의 배설작용으로 기억에 남길만큼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의식은 이성의 고삐를 놓았을때도 분명 어떤 흐름이 존재한다. 잠들기전 보았던 뉴스도 끼어들고 근래 의식을 자극할만한 사람들과 사건들이 등장한다.


근래들어 꿈에 계속 형제들이 등장하고 예전 친구들이 단골 출연하면서 요즘의 내 의식이 어떤 흐름에 붙잡혀 있는지를 알게해준다. 그 흐름을 받아들이면 무의식은 앞으로 벌어질 예지몽까지도 유추해 낸다. 무의식 이라는 용어가 어떤것을 지칭하는지는 각자 나름이지만 일단은 에고가 꾸미는 가짜 의식이 아닌 에고가 모르는 근본 원래의 의식이라고 규정지어본다.


인간의 성격, 행동, 에고와 자아가 벌이는 모든 생각과 행동에는 무의식이라는 깊은 덩어리가 핵심으로 존재하고 있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규정하는것도 바로 이 내면에 감춰진 무의식이다. 에고가 남보기 겉으로는 유식하고 고상한 척 해도 속으로 얼마나 저렴하고 유치한 존재인지 내면은 숨길수가 없다.자신이라고 생각하는 포장과 껍데기를 다 까버리고 실체를 바라본다는 측면에서도 꿈을 괸찰하는것은 의미가 있다.



정말 위대한 의식이 어떤것인지 무의식에서 그 실체를 느낄수가 있다. 무의식이 위대한 사람은 분명히 그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 꼭 남보기 큰일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식에 따른 종의 분류라고나 할까... 고양이와 인간이 같은 수준의 생각을 할수는 없다. 원숭이가 아무리 위대해도 이순신같은 인간의 위대한 생각을 할수는 없다. 요즘은 하도 짐승만도 못한 의식을 가진 인간이 많은지라 인간 의식의 스팩트럼이 얼마나 폭이 크며 자유로운지를 알수 있다. 짐승보다도 못할수도 있고 신과 동급으로 갈수도 있고 의식의 자유는 지구상 생물체중에선 오직 인간만이 지닌 특권이랄수도 있다..


육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의식이 가능할까..? 몸이 하두 불편하다보니 요즘 그것이 나에겐 절실한 화두가 되어 버렸다. 일반적으로 몸이 괴로우면 에고의 의식은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병들었음을 한탄하고 돈이 없으면 가난이라는 의식을 뒤집어 마음까지 칙칙하게 물들어 버린다. 늙고 병들어 의지할곳을 원하는 부모님들을 보면 그것이 어떤것인지 확실하게 알수가 있다. 마음같아선 편안하게 그런 소소한 걱정꺼리들 없애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지금의 내 처지에 화가 난다.


폭염때문인지 생명력이 약한 노인들은 요새 버티기가 쉽지 않은듯 한달동안 집안에서 부고가 세번이나 들려온다.. 또 장례식을 가봐야하나 망설여진다..



나 역시 요즘 생명력이 바닥난지라 어제 병원에서 CT 를 찍기위해 조영제와 부작용 방지 약물, 채혈등을 하는데 주사바늘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내 육체를 보면서 오호라 신기하네... 했다. 몸에 아무런 저항력이 없으면 주사바늘이 들어와도 남의 몸뚱아리 인양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걸 처음 겪어본다. 며칠 굶다보니 흐물흐물 살이 너무 없어서 그런걸지도.. 내 육체의 탱탱한 젊음이 사라졌다는 확실한 증거.. 주사바늘에 저항하려는 세포들의 움찔거림이 따끔이라도 하게 만드는데 주사바늘이 마구 찔러대도 세포들이 무의식적인 저항을 하지 않는다.. 반은 시체가 된듯..


얼굴이 하얗게 된것을 보고 남들은 피부가 생기가 돈다고 다들 건강한것 같다고 말들 하는데 사실은 정 반대다.. 비장이 없음 피를 거르질 못해서 보통 검게 변한다 하는데 나같은 경우는 그 반대 현상이다. 얼굴이 하얗게 되건 검게 되건 둘다 몸에 피가 원활하게 돌고있는 정상은 아니란 말이다.


오늘은 CT 결과를 놓고 의사를 만나 상당하러 뙤약볕에 또 외출을 해야 하는데 재수없으면 재발 기미가 보여 항암치료를 어쩔수 없이 또 시작할수도 있다. 그러면 진짜 숨쉬기 연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생의 마무리 시간들을 맞게 될수도 있을테지..


어쨌든, 육체가 가진 한계로 인해 폭염속에서 집안에만 틀어박혀 찬물에 샤워하고 인터넷 라디오 Kong 으로 93.1 클래식 들으면서 발가벗고 만화책 잔뜩 주문해서 탐닉 하는게 요즘의 내 유일한 취미생활 인데 꿈들을 기록해 보면 다행히 무의식의 세계는 내 몸뚱아리의 건강 같은건 전혀 안중에 없고 어두컴컴한 세계를 비치지도 않는다. 내 에고 의식 또한 몸의 상태나 병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만화책과 나른한 음악 감상에 빠져 있으니 당연하다..



금전이 얼마나 있던지 상관없이 자신의 행복과 앞가림에만 힘겹게 매달리는 나약한 에고들과 실생활은 다를바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의식만큼은 나약하지도 가난하지도 않다.. 주어진 만큼의 자유의 한계를 탐구한다고나 할까.. 에고가 느낄수 있는 의식의 위대함은 그 한계가 어디까지 일까.. 실험을 해보는것도 용기있는 자만이 할수있는 특권일수 있겠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인간의 다양한 의식의 진열장을 보는듯 하다. 보통 인간이 나약한건 겁이 많아서 라고 할수 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하는데 안중근 유관순 열사같은 의식은 그 무의식에도 그만한 용기가 있기 때문일듯.. 가난을 두려워 하고 죽음을 두려워 하고 불행을 못견뎌하는 나약한 에고 의식들을 보통 소시민적 보통사람 이라고 하는데 안전망이 있을 경우에 에고들은 현실에서 최대한 남보기 위대한척 포장을 두루고 산다. 그러는 자체가 실체가 나약하고 저렴한 의식이라는것을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는데 꿈이라는 무의식은 여지없이 자신의 실체를 보여주게 된다. 그 저렴한 실체를 대면하기 보다는 바로바로 잊어버리는게 더 낫다고 에고는 판단한다.. 그래서 그런 가식적인 포장이 가능하다.


자신의 감춰진 위대한 의식을 탐구하는것은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무의식의 실체가 위대한 사람을 찾아내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반대로 고상한척 거만떠는 에고들의 저렴한 실체를 보면 기분이 언잖아 피하고 싶어진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가식적으로 상대할만큼 내 육체 에너지의 여유분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침이 됐으니 이제 샤워하고 병원갈 준비, 그리고 홍대들러 담배 액상을 받고 알라딘에서 만화책 몇권 사갖고 빵집들러 귀가..이렇게 정해진 스케줄 시작이다..


기록적인 폭염속에서도 위 아래 긴팔입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에어콘 사이사이로 다녀야 한다. 찌는 더위임에도 긴팔 입는 이유는 아주 단순한 이유인데 너무 말라서 옷으로 감추지 않으면 뼈다귀가 걸어다니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아프리카 난민같은 뼈만 남은 사람이 한국에서 걸어다니는것을 본적 있는가... 반팔입으면 내가 그렇다.. 장례식때 정장을 입으니 모자와 콧수염만 붙이면 누가봐도 찰리채플린 코스프레가 된다. ㅋ 끈있는 옥스퍼드형 정장구두를 끈을 끝까지 동여매도 헐렁거려서 그냥 슬립온을 질질 끄는게 더 편하다. 요즘 의류들 기술들이 발전해서 최대한 가볍고 안더운 재질로 옷들을 만들어서 비취용은 긴팔도 그다지 덥지않고 오히려 더 시원하다.


무의식에 즐겁고 행복한 기운이 흐르면 실생활에도 비슷한 생각과 기운들이 이어진다. 분명 오늘도 기분좋은 일들이 줄줄이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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