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VIVA KORE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Ah May 23. 2019

힘없는 계층을 쥐어짜 공돈을 만들던 사회

일한만큼 정당한 분배로 공정한 사회를..


현재 이 나라 최저 임금제로 '갑론을박'경제위기가 최저임금 때문이다 아니다 한동안 정치공방이 한참 거셌다.


10여년전 내 경험으로 따져보면 이 나라는 대기업서 부터 최종 마지막 실제 작업을 하는 노동계급까지 피라미드 왜곡구조가 샹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좀 달라진것 같지만 큰 틀은 쉽게 바뀌기 힘들것이다. 그동안 발전 도상국 이었던 시절부터 이 나라 경제 생태계가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일 밑을 쥐어짜 공짜로 불로소득 이익을 만드는 그런 불합리를 당연시 여기는 기성 세대들이 많았다. 이명박식 경제 논리가 딱 그랬다.가장 밑의 계층을 희생시켜 불로소득 큰 돈을 벌어보자란 마인드로 본인이 그것을 실천으로 잘 보여줬다.


디지털 문화가 갑자기 밀려 오면서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모하던 시절을 우리는 겪었다. 486컴퓨터를 쓰다가 자고 일어나면 팬티엄이 나와있고 컴퓨터를 신형이라고 할부로 구입하면 몇달 안가 또 신형이 나와 중고가가 반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계속 치뤄왔다. 노래방 기기들 소프트웨어도 하드웨어에 맞게 시기마다 업그래이드 해야 했는데 16비트 반주가 32비트로 바뀌던 시기.. 일본 노래방 기기에 들어있는 3만여곡에 대한 교체 작업의뢰 하청을 맡은적 있다. 당시는 일본 작업자들 인건비가 워낙 비싸서 한국에 하청할 업체를 알아보는데 당시로서 그런 대규모 작업을 행할수 있는 업체는 국내에 우리가 유일했다. 수많은 음악 작업자들을 통솔하며 관리감독 해야 하는데 개성이 강하고 낮밤을 다르게 사는 뮤지션들을 일괄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일반인은 불가능 하다. 1차 분량이 3만곡이고 작업이 끝나면 향후 16만곡이 있다는 거대 미끼가 탐이나 경험도 없이 덜컥 계약을 맺은게 실책 이었다.


나의 경우 수백개의 기업들 프로젝트를 맡아 전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지만 유일하게 실패하고 포기한 단 하나의 프로젝트가 바로 이 일본 노래방 프로젝트 이다. 전세계 누구나 아는 유명기업 인지라 결제가 펑크날 위험은 없었지만 모든것을 계산기로만 두들겨 이익을 산출한것이 화근이었다. 그 안에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 내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 있음을 미처 고려치 못했던 것이다. 사회 시스템의 구조를 한방에 알게된 매우 소중한 실패의 경험이다.  



우선, 가장 문제는 제작 비용 산출에서 갑측의 무리한 요구를 물량으로 이익을 때울수 있을거라 판단했다. 즉, 안정된 물량을 미끼로 나 역시 그 가격으로 최저로 작업할수 있는 작업자들을 모은것이다. 당시 일반 작업 비용보다 곡당 2만원 정도를 적게 책정할수 밖에 없었는데 물량이 워낙 많으니 지원자는 쉽게 몰렸다. 경험있는 50명 정도와 외주 계약을해서 각 팀별로 팀장들에게 맡겨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려는데 문제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책정된 제작비 대비 퀄리티 요구가 생각보다 엄청 까다로웟다. 납품하고 나면 일본측에서 수정 요구가 계속돼고 작업이 완료돼야 돈이 나오는데 나는 돈을 못 받고 임금은 지불을 해야 일이 진행되는 상황이 됐다. 왜 그렇게 OK 가 까다로운가 나중에 일본 원 발청측에 라인을 통해 알아보니 원래 원발주 대기업에서 책정한 금액의 5분의1 가격에 어리석게 내가 계약을 맺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을 들인만큼 퀄리티는 올라가게 되는것인데 원 발주 측에서는 내가 맡은 가격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퀄리티를 요구했다.


한 마디로 내가 그 바닥 경험이 없어 중간 업체의 농간에 걸려 들었다는걸 뒤늦게 알게 됐는데 원발주와 중계업체가 본과 한국 두군데가 중간에 끼고 그 밑에 또 소개자가 끼어있는 모양새다. 당연히 그 연결 고리마다 리베이트 받는 자들도 끼어있을 것이다. 워낙 규모자체가 큰 프로젝트 인지라 온갖 사기꾼이 한일 양국에 몰려 있는것을 모른채 피라미드 가장 밑 작업을 덜컥 맡았다는걸 알았다. 한마디로 경험 부족.. 작업자들은 돈을 안 주면 더이상 수정작업을 거부하고 일본 에서는 완료가 돼야 돈을 주겠다 하고 나는 그야말로 중간에 찌부가 돼서 시달려야 했다.결제가 늦어지자 작업자들이 CEO인 내 전번을 알아내 직접 항의 전화가 오기도 했다. 당연하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노동계급에서 매주 수당 지급이 안되면 버티기가 힘들다. 항의 달래느라 사무실 전체가 다른 업무를 할수가 없었다. 뒤늦게 실수를 인정하고 가까스레 을 끌어 마련해 1차분 작업이 끝난후 프로젝트 자체를 중단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후 그런 종류의 하청이나 단순 노동 작업 프로젝트는 전부 사양했다. 


대기업의 프로젝트에 밤잠 안자가며 일하는 실제 작업자들 보다 대기업 라인으로 아무일 안하는 중간의 소개책들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비 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원청 비용의 절반만 됐어도 그렇게 들지 않고 모두가 해피할수 있는 구조였는데 중간 소개상들의 농간과 욕심이 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일본 작업자 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책정된 이유가 국내 작업자들의 경쟁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가격에도 할 사람들이 있으니 가격이 그렇게 형성돼고 중간에서 그걸 가로챌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결국 한단계 내려올때 마다 절반씩 깍이니까 우리나라 실제 작업할 하청업체는 5분의1 가격으로 실제는 고 퀄리티를 맞춰야 하는 지옥같은 억눌림을 감당해야 하는것이다. 20만원에 100만원 작업자 노동 수준을 해내야 하는 것인데 물량이 많은건 도리어 함정이 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은 그런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 사람이 하는 작업은 물량이 많을수록 피로와 리스크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그 당시 건설분야 대부분이 나와같은 경우가 많다는걸 알게됐다. 그렇게 가장 밑 계층을 최저 임금으로 희생시켜 그 중간에 흥청망청 하는 계층이 그것을 정상적인 비지니스라고 관행처럼 행해왔던 것이다. 결국 앉아서 돈 버는건 중간상 들이고 몸버리고 적은 비용으로 노동을 착취 당해 남는것이 하나도 없는건 가장 밑바닥 작업자 들이다.(지금은 아마도 상황이 역전돼서 우리나라 음악 직업자들이 일본 보다 훨씬 고급 인력으로 대접 받고 있을것이다.당시 대중가요도 대부분 일본 노래 카피하던 시절에서 그만큼 빠른 시간내 비약적으로 한국 음악계가 발전했다. )


그런 구조가 10여년 전까진 일반적으로 통용됐었다. 모든 관공서, 대기업들 프로젝트 진행과정에 단계마다 리베이트 10 프로+는 기본 이었고 노무현 정부가 고질적 관습인 리베이트를 없애겠다고 해서 관공서와 대기업 리베이트로 놀고먹던 계층들 불만들이 엄청 났었다. 가장 힘없는 제일 밑바닥 계층을 쥐어짜 그 돈으로 관계자들 매일같이 룸싸롱 다니고 흥청망청 했지만 원래는 작업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비용이다. 지금은 이런 관행들이 얼마나 고쳐졌는지 모르겠으나  이명박 정권이 다시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그들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는데 그런 과거의 악습적 관행들이 다시 일반화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지나고 나서 보니 노무현 정부가 당시 나를 포함, 사업하는 사람들 에게는 노동자 편을 들어 엄청 욕을 먹었지만 그동안 관행으로 행해지던 리베이트 관행에 제동을 건것은 사회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온것이 사실이다. 리베이트로 공돈을 챙기던 이명박 같은 부류에선 그것 하나만으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도로 싫어하고 미워할수 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리베이트만 사라져도 뒷거래가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향상됐을 것이다. 


일한만큼의 정당한 분배는 공정한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틀이다. 노무현은 그것을 이루려 했던 한국 최초의 대통령 이었다.그 댓가로 본인은 비극을 당했고 그의 본심을 알게된 나는 그동안 기득권 친구들과 울려 같이 욕 한것을 반성하며 노란 풍선을 들고 추모 행렬에 가담할수 밖에 없었다.


Salvatore Licitra & Marcelo Alvarez     Oltre la …:

https://youtu.be/PhsnJXTNXGE

Over the Rainbow:

https://youtu.be/5hF-D0T1vP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