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는 고통의 강도를 1에서 10으로 단계를 정해 환자에게 어느정도 인지를 묻는다. 생물체는 8-10 정도 고통을 멈출수만 있다면 본능적으로 무엇이라도 하려고 한다. 지푸라기 라도 잡으려 든다. 죽지도 않으면서 고통만 이어지는건 삶이 아니다. 말기암 환자들이 치사량을 생각하지 않고 마약류 진통제를 게걸스럽게 투입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나 또한 2년을 마약 진통제와 함께 버텼다.
육체가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때 최후의 탈출구가 바로 육체에서 벗어나는것, 곧 죽음이다. 그럴때 죽음의 유혹은 너무도 강렬한 은총이 된다.죽음의 고통앞에서 죽음을 승인하지 않기는 정말 힘들다. 수십번 반복해서 경험해본 그 고통의 느낌을 잊을수가 없다.치사량 따질것 없이 진통제를 기절할때 까지 계속 이어서 먹은적도 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죽음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큰 고통이 현실속에 있는지 아무 생각없이 육식을 하고 건강한 일반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할것이다. 죽음을 향한 고통은 대부분 일생에 단 한번, 자신들이 죽는 순간에나 경험해볼 뿐이니까.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수는 없으므로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넘기는것이 최선이다.
장이 뒤틀리고 멈추는 8-10레벨 장폐색의 고통 앞에선 그 어떤 철인도 살려 달라고애원하기 마련이다.살아날 방법이 없다면 고통을 버티는만큼 힘이 든다. 승인이 빠를수록 고통은 짧아진다. 이 세상 어떤 악인이라도 죽을때는 고통 스럽지 않게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죽음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삶을 되돌아 보고 반성할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다. 영혼 이나마 잘못을 뉘우칠테니까..
지성을 가진 인간은 피할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는 최대한 고통을 줄이는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잠들어 죽는 안락사가 죽음을 맞는 가장 편안한 방법이다. 안락사가 허용 됐다면 2년전 나는 안락사를 택했을 확율이 크다.집안에서도 그러길 원했고..
2년전 브런치에 올려놓은 사진. 온 몸이 이 지경 이었고 항암할때는 더 심해서 두꺼비 같이 됐었다..
내복 쫄쫄이 입고 두꺼비맨 코스프레 고민하던때
쨘~깨끗해졌다.
지난 고통속에서 죽어가던 몸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음이 피부로도 확인된다. 모든 지나온 세월들은 온몸과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 지금은 3년간 고통으로 이그러진 얼굴뼈와 주름들을 바로 잡는중이다.
누군가 사람은 40이 넘어가면 자기얼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을 들은것 같다. 살아온 흔적이 그대로 새겨지기 때문이리라.. 죽음의 골짜기를 3년간 헤메고 나온 내 몰골은 말해서 무엇하리. 고통이 일상화 된것이 양미간과 팔자주름에 그대로 새겨져 있고 얼굴뼈 까지 고통에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그 흔적들을 지우려 한다. 피부는 대충 화장품 발라주고 일그러진 얼굴 골격은 가끔씩 만져주기만 하면 된다.
완전히 망가지기 까지 3년이 걸렸는데 끝에서 다시 회복되는 기간은 얼마가 될지 어디까지 회복이 될지는 가봐야 안다. 무엇보다 먹는것의 유혹에서 결심이 잘 서질 않는다. (아줌마 시켜서) 먹을거 만들어 나 먹이는게 엄마의 유일한 취미라서 더 그렇다. 당연히 달라진 몸 구조로 일반 음식들을 소화 시키려면몸이 무겁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한다. 이건 아니야... 몸에서죽음의 냄새를 완전히 지우는날.. 먹는것 식탐에서 자유롭게 되는날, 나는 부활한다.
길고긴 여름이 끝나고 완연한 가을이다.더 이상 뭉개고 게으름 피면서 늘어져 있을수만은 없는 시간이 온것같다.다시 생체 에너지를 가동시키고 에너자이저로 움직일수 있는 몸을 만들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살아있다는건 동물들 처럼 몸뚱아리 떠 받들며 먹고 숨만 쉬는것을 의미 하는것이 아니다.내가 몸을 떠받드는것이 아닌 몸이 나를 서포팅해야 비로서 내가 살아 있다고 할수 있지않을까.일단 먼저 몸을 살리고 그 다음 내가 그 몸을가지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