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맑은날도 좋아한다. 눈오는 날도 좋고 우울한 날씨도 좋아한다.결론은 모든 날씨를 다 좋아한다는 말.. 모든 날씨는 그에 맞는 낭만이 있는법이다.
비오는 날은 왠지 술맛이 더 좋다는걸 경험으로 안다. 맑은날엔 맥주가 땡긴다면 비오는 날엔 소주와 부침개가 땡기고 깨끗하고 정갈한 모던 술집보다는 지저분한 시장판의 선술집이 그리워 진다.술을 끊은 지금은 그저 커피,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혼자서 지새는밤..추억이란 녀석이 방문 하는것을 맞는다...
응답하라 1988
아무리 가슴 아프고 슬프더라도 추억이 항상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지난 일이고 미숙했지만 순수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젊음은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아련해 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진이 이전에 히트친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일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한다. 나의 시대는 '응답하라 1988' 이다. 한창 유행일때는 TV 나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고 이제서야넷플에서한달에 걸쳐 겨우 간신히 다 봤다.우리 세대를 타겟층으로 삼은 드라마 이니만큼 보는 내내 나의 1988을 계속 소환하게 된다.
추억이란 정말로 소중하고 옳고 그르건간에 가감없이 그대로 기록되는 냉철한 삶의 데이터 라는것을 깨닫는 나이가 됐다.30년이 넘어 이미 그 녀석의 모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정신과 추억은 고스란히 지금의 늙은 해골 몸안에 남아있다.87학번이면서 기타 치겠다고 바로 휴학한후 1년뒤에 1학년으로 88학번들과 같이 대학 생활을 시작했으므로 등장인물중 덕선의 언니 보라와 같은 시대를 보냈다.
같은 동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세대들은 작가가 세밀하게 짜 넣은 극중 개그와 광고 흉내내는 장면이나 드라마 각 장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가 힘들다.아마 시대적 공감대가 없으면 재미도 많이 못 느낄것이다. (응답하라 1994,1997 은 내가 한국에 없었던 시절인지라 공감대가 별로라 안 땡겨서 안 본다.)
우리 세대는 누구나 중고등시절 조다쉬 청바지에 서지오 바렌테, 나이키를 신기 원했다.전 국민이 TV가 주도하는 한가지의 유행어에 휩쓸리는 것이 당시의 시대 분위기 였고 히트하는 가요는 전국민송이 되던 시절이다. 어딜가도 이문세 노래가 나왔고 동물원과 유재하를 다 좋아했다.
삐삐 와 시티폰 PCS 로 넘어가는 동안 옛날에는 그런 통신없이 사람들은 어떻게 약속해 만나고 연애 했을까 막 지나온 시간들을 낮설어 했던 경험들.. 정말 눈뜨면 정신없이 세상이 변해가서 나중엔 세상물정을 따라가기 포기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아직도 011, 016, 017, 018, 019 번호를 고집하는 사람들 심리를 아주 잘 이해한다.
인터넷이란것이 막 퍼지기 시작하고.. 전화선 모뎀으로 채팅 문자나 전송하던 가정용 PC 컴퓨터가 지금의 스마트폰으로 진화하기 까지 걸린 시간은 채 20년이 안 걸렸다.지금은 어딜가나 지하철 안에서도 가족들이 모여도 각자 스마트폰 들여다 보기 바빠서 대화조차 안하게 된다. 미래의 모습이라고 지금의 스마트폰에 모든것을 의존하는 생활 모습을 과거 사람들이 본다면 충격을 받을것이다.
니꼴도 많이 변했다 .키도 크드만
세월은 모든것을 변하게 한다. 1988 에 청춘을 지나온세대는 지금 당시 부모님의 모습으로 본인이 다들 변해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지금 다들 연로하시고 누구는 이미 돌아가시고.. 젊었던 그 시절에 대고 응답하라고 외쳐보면 돌아오는 현실이 세월의 가진 위력을 보여주게 된다.
삶의 흔적은 가감없이 그대로 기록으로 남아있어..
지나온 세월 기록에서 뭔가가 부족하다 싶을때 이제는 남은 인생 추억으로 채워야 할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할 나이다. 당장 눈앞의 댓가보다 평생 내면에 채우는 자부심 이란 추억을 쌓아가는것이 비할수 없는 이익이고 삶이 남겨주는 현명함 이란것은 1988 로 부터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 그만큼 살아봐야만 비로서 알게된다.
'그 정도면 후회없이 잘 살았어.. ' 지난 삶에 대한 위안은 금전 부분인 부유함, 타인의 인정이나 사회적 성공들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정말 젊은 시절부터 불운은 지독히도 나를 쫒아다니며 내 앞길을 방해했지만 인생산전수전 막장까지 다 겪고 죽음앞에 몇년동안 서 있어본 경험자가 하는말이니 쉽게 생각하지 말라.
성공했던 좋은기억, 실패했던 나쁜 기억, 경험치는 삶속의 지혜를 기르게 되고 기억은 남아있지 않아도 항상 양심이 옳다고 믿는바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자신의 영혼을 강하게 만들고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인격이 돼어 따라 다닌다.
당시엔 바보같았고 멍청한 손해를 보는 행동 같았어도 양심에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그것에 대한 가치는 가슴속에 영원히 자부심이란 보상으로적립되고 점점 스스로를 가치있게 만든다. 인간의 품격과 합당한자존심이란그런것이다.
타인과 자신의.추억에서 얻는 무한대로 끝나지 않는 감사만큼 큰 보상은 없다.삶을살아오면서얼만큼보석들을 쌓아놨고 얼마나 상처 받았는가 이제는가슴속 메모리 데이터 박스를 열어보고 자신을 되돌아볼 나이인것 같다.주로잘못했던 아픈 기억들, 실수해서 부끄러운 순간들을 돌아보게 되지만 뒤지다보면 그것을 상쇄시키는 잘했던 경험 추억들도 튀어 나온다.
고등학생시절, 폭설속에서 길거리에 술취해 쓰러진 노숙자 같은 사람을 어린 나이에도 야심한 새벽에 몇시간을 개고생을 해가며먼 집을 찾아 가족들에게 인도했고 가족들이 고맙다고 돈 주는것을 안 받았다.. 독서실에서 집에 오는중 이었고 폭설이 쌓이는 새벽 길거리에서 얼어죽을것이 확실한 만취자를 보고 그냥 지나칠수는 없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다.그 당시 핸드폰이 있었다면 경찰에 신고하고 말았겠지.
야심한 새벽에 폭설속에서 몇시간 동안 땀에 흠뻑 젖은채 나보다 덩치큰 어른을 엎다시피 정신도 멀쩡하지 않은 노숙자 같은 사람을술깨워가며 수킬로 되는 다른동네 여동생 집을 걸어서 찾아가기 까지 내가 먼저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당시에 돈을 안 받길 정말 잘 했다.
지금껏 내가 한일중 가장 뿌듯하고 평생 남길 멋진 선행 추억이 단돈 얼마짜리 단발성거래로 끝난다는것은 정말로 손해보는 어리석은 일이다.(당시엔 긴 시간 너무 고생한지라 화가나서 돈도 뿌리치고 그냥 집안에 시체 던지듯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불평하고 나온것 같다. 좀 있음 잠도 못자고 기진맥진한채 학교에 가야 하니까 화가 날만도 했다. )
사람을 살리고 돈을 받는다면 당장의 이익은 될지라도 이미 얼마짜리 보상으로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거래로 끝난것이 되지만 댓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돕고 그것에 대한 물질적 댓가를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사람을 살렸다 라는 '선행' 으로 남아 인생을 살아가는것에 있어누군가의 감사와 자신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추억으로 평생 적립되어 간직하게 된다.
학창 시절에도 어려운 친구들 고민 도와주려고 발벗고 나선적이 여러번 있다.가정 문제로 자살하려는 친구( 나는 꼴찌에 가까웠지만 전교 1등 학생회장 이었나?) 를 설득하기 위해 상담 센터를 연결하러 뛰어다녓고 초등학교 때는 신문 돌리는 반 아이를 발견하고 같이 신문 돌리러 돌아다닌적도 있다. 흠... 과거를 되돌이 보면 잘못한 과거에 가슴 아프고 괴로워 하는것이 대부분인데 구석구석 뒤져보니 선행에 대한 추억도 꽤 되는데..
나 자신도 힘없는 약자였음에도 어린시절 부터 놀이터에서 꼬마 아이들 괴롭히는 상급생들에게 맞섰던 기억도 있고 대학생 때는 술 취해폭도로 변한 운동하던 녀석들에게 집단 폭행 당한 후배들을 위해 한 과를 상대로 부딫쳐 교수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고 가해자 십여명 전부 휴학하고군대로도망가게 만들었던 기억도 있다.확실히 어리고 젋었던 나는 불의를 보면 내 처지나 이해득실 고려 하지 않고 뛰어들만큼겁이 없었던것 같다.
살아온 삶의 기록들은 좋은것이건 싫은것이건 기억이 나견 안나건, 그 사람을 죽어서도 졸졸 따라 다니게 된다. 기억이 나면 추억이라 말하고 기억에 없다면 무의식에 물어보면 그 녀석은 다 알고있다.가장 두려워 해야 할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안에 모든것을 기록하고 있는 블랙박스 '무의식' 이란 감찰관으로 어떤 경우에도 속일수가 없다. 카르마 업장이란것은 그런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영혼의 관점에선 모든 상처들은 피해자 보다 가해자에게 더 큰 카르마로 또렷히 기록 되는 되는법이다. 기도하고 수련하고 기억속에서 망각했다고 지난 카르마가 무조건 사라지고 덮어 지는것은 아니다.
인디언 주술사 돈 후앙의 가르침 이라는 '초인수업' 책을 보면 돈 후앙이 치유되어야 할 상처들을 살피며 저자의 머리에 손을 대고 어린 아이가 울고 있다는 말을 계속 한다.
저자의 기억속엔 전혀 그런 아이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돈 후앙이 뭔가 착각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단추 코' 라는 단어에 자신이 어린시절, 장난치다 실수로 단추 코를 가진 가난한 아이의 쇄골뼈를 부쉈던 기억을 비로서 떠올리고 한탄에 빠진다.그 피해자 아이가 가난으로 치료도 제대로 못받을것을당시 어린 저자가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면 기억에선 지워졌지만 그 어린시절의 죄의식과 상처를 저자의 무의식은 기억하고 있는것이고 그것이 영혼에 깊은 상처로 새겨져 남아 있는것이다.
젊었던 시절에 연애 지식이 전무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을 안하무인으로 가슴아프게 만든 일들은 나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자신이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는 비교적 쉽다. 자신이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면 되니까.. 그러나 자신이 타인에게 행한 상처는 자신의 영역이 아니게 되므로 뉘우친들 손쓸수가 없어 더 후회스러운 법이다.
아픈 모든 추억은 치유 받아야할 상처들이다.남여관계나 사회에서 나보다 약자인 을에 대해 모르고 행했던 갑질,비록 무지의 소산이라 하나 남 마음 아프게 한것이 나에게도 잘못을깨닫고 난후 긴 시간 죄책감이란 올가미로 남는것을 보면 정말 세상은 남에게 상처주지 말고 살아야 함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된다.(그럼에도 내가 잘해준적 한번도 없이 못되게 굴고 야단만 쳐서 나에게 크게 상처 받았다는 후배들이 도리어 내가 죽음앞에 서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조건없이누구보다 발벗고 나서서 챙겨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스스로의 행적을 돌아볼줄 모르고 늙어서도 지나온 삶의 데이터가 얼마나 무서운 카르마의 잣대로 작용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 라는것은 뉴스를 보면 안다.마치 원숭이들의 난장판을 보는듯 하다.무지앞엔 답이 없는법이다.
부디 좋은 선행의 추억들이 안겨주는 자부심과 떳떳함으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채워 나가길.. 어떤 악 상황과 불운 에서도 스스로와하늘앞에 떳떳한결백Memory 데이터들을 내보이길 스스로에게 기도한다.그것이 인간을 신들과운명앞에 주눅들지 않고 강하게 만든다.
받아들여야 하는 시련은 기꺼이 순응하고 받아 들이지만 죽음의 신이 이유없이 나를 건드릴때 "나의 아무런 가치도 없는삶과원하지 않는 개죽음에 대해 책임 질수 있는가?" 따지고 당당하게 'No' 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 (죄 지으면서도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뻔뻔한 에고들의 교만을 말하는것이 아니다.)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나의죽음과 지나온 삶이 최소한의 품격과 가치는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무조건 모든 인간은 신앞에 죄인이니 참회 하라고 다짜고짜 우겨대는 납득되지 않는 무지를 아무에게나 들이대면 곤란하다. 본인이 죄인 이라고 스스로 알았다면 남에게 자신의 죄책감을 덤탱이 씌우는 더 이상의 죄는 짓지 말아야..
내가 몰랐던 죽을만한 이유를 댄다면야 아차 어쩔수 없겠지만.. 아무리 추억들을 뒤지고 살펴봐도 한창 나이에 죽을만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죽음이라는 협박앞에서 잘못했으니 살려달라고 빌기보다는 결백을 주장할수 있게된다. 자연의 도리를 따르는 신이라면 이유없는 억울한 카르마를 만들지는 않을테니까.. 그간의 고생들도 그렇고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이 우주는 언뜻보면 랜덤으로 돌아가는것 같지만 정교한 인과법칙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신에대한 믿음이란것은 에고의 교만과 변명이 아닌'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말하던 시인처럼 스스로의 신성앞에 떳떳한 그런 종류가 아닐까.( 젊은 시절부터 육체를 돌보지 않고 무절제한 음주 흡연 식탐 생활에 대한 부분은 깊이 반성한다. 육체를 괴롭히고 소홀히 했던 잘못에 대해 인정하기에 몇년간 고통받고 내장 다 내주고 됐지? 퉁 쳤다고 생각한다.)
많이 힘들고 아프고 했지만 그래도 고생고생어리버리잘살아냈어..굿바이 1988젊은날의물루.. 앞으론 좋은날만 찾아와라 이얍!
응답하라 1988-1998 시절의 꽃미남 물루 지금은 물루업따.그 녀석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