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펜을 들다

나를 찾아 글쓰기로의 회귀

by 예민

내가 글을 쓰다 멈춘건. 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나 자신을 잃어버렸을 때부터이다.


회사에서의 업무,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역겨움, 그리고 달라질 것 없는 매일 반복된 일상 속에서 '나'는 회색빛으로 희석되어갔다. 어떠한 선택의 순간에도 더 이상 '나'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그저 관성적으로, 사회가 기울어진 방향으로 끌려다니며 영혼이 짓밟힌 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장에서 예전에 친했던 친구를 만났다. 아무 걱정없던 고등학교 시절, 내 글을 가장 재밌어 해주고 많이 읽어주던 그 친구는 내게 물었다.


"요즘은 글 안 써?"


질문이 나를 흔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있던 방의 문을 누군가 갑자기 열어젖힌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쳐왔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왜 살고있나? 무엇보다, 나를 나타내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나는 '글을 쓰는 행위'를 좋아했었다. 그것은 분명 '나'를 나타내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날 밤, 오랜만에 노트를 펼쳤다. 펜을 쥐는 손이 어색했다. 처음에는 단어 하나 적는 것조차 너무나도 어색했다. 내가 다시 이런 글을 쓰려는게 참 민망하고 낯 부끄러웠지만 천천히, 한 단어씩, 한 문장씩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멈추었던 그 행위. 다시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내가 다시 글을 쓴다는 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모른다. 아마 내 인생을 다른 길로 인도하는 방황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선택이 '나'를 조금이나마 안정시킬 수있는 걸음이라는 점이다.


나는 잠시 도망치고 싶었단, 잊고 있던 길을 다시 걸어나아갔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아니, 이미 달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 다시 피어오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 떠다닌다.




글을 쓰는 행위란 정말 고독하고 정말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때로는 한 문장을 위해 고요함과 적막감을 배경삼아 꼬박 밤을 새워야 할 때도 있고,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십 번을 고민하며 다시 써야 할 때도 많다. 모니터 앞에 앉아 빈 화면을 바라보며 첫 문장을 떠올리지 못해 몇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완벽한 표현을 찾아 헤매다 새벽이 오는 것을 느끼고, 결국 지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허무함이 밀려온다. 글 속에 나의 밤을 쏟아부었지만 다시 읽어보면 내가 전하고자 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어 좌절하기도 한다. 한 문단을 위해 열 개의 초안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때로는 내가 왜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고독과 고통 속에도 묘한 달콤함이 있다. 내 안의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글자로 정렬되어 의미를 가지게 될 때, 모호했던 감정이 명확한 문장으로 구체화될 때의 그 쾌감은 다른 어떤 도파민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내 생각이 글이 되어 눈앞에 펼쳐질 때,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한 문장, 한 단락, 한 페이지씩 나아가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서 진정한 '나'의 조각들을 발견해 나갈 것이다. 글쓰기의 고통 속에는 항상 자기 발견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내 안의 언어들을 정성스레 모아 별자리를 만들어간다. 때론 지워지고, 때론 빛나며, 불완전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의 우주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신이되어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글 쓰는 행위를 어떤 이슈로 멈추었다 해도, 결국 다시 펜을 들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글쓰기란 나를 완성해가는 여정이며,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조명하는 등불이 되어주리라. 어둠 속에서도 글이라는 빛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온전한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고독과 고통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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