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혐오의 흔적

타인을 통해 비춰본 나 자신의 흉터

by 예민

문득, 타인의 얼굴 속에서 혐오의 감정이 피어나는 날들이 있다.


출근길 지하철, 옆자리 앉은 사람의 숨소리가 유독 거슬리고, 키오스크 앞에서 카드를 찾느라 시간 끌던 사람이 증오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상 속에서도 오늘은 모든 것이 거슬리는 날이다. 하루가 끝나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져도, 머릿속엔 여전히 낯선 타인들의 얼굴이 맴돈다. 어쩌면 그들도 나를 똑같이 미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실 이 감정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느껴온 감정들의 집합체. 가면을 쓰고 걸어가는 회사원들, 서로의 눈빛조차 피하며 살아가는 도시인들. 모두가 각자의 세계 속에 갇혀, 타인에 대한 공감은 사치가 된 시대다. 회의실에서 웃으며 내 의견을 깎아내리던 동료, SNS에서 드러내놓고 헐뜯는 익명의 사람들, 인사만 나누는 이웃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이 모든 관계가 얇은 종이처럼 쉽게 찢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이미 인간혐오의 문턱을 넘어섰다.


식사 자리에서 가족과 함께 있지만, 마음은 이미 멀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이제 백색소음이 되었고, 아버지의 충고는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들의 말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건.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는 실종된 지 오래다. 명절 때마다 의무감으로 웃고, 형식적인 안부를 묻는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밧줄이 되어 때론 나를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 타인과 가족에 대한 혐오까지 느끼다 보니, 결국 그 화살은 나를 향하게 되었다. 요 근래 아침에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이 싫어졌다. 내가 한 말들, 내가 보인 반응들, 내가 느낀 감정들마저 혐오스러워졌다. 타인을 증오하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워지는 아이러니.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 굴레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깊은 자기혐오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날이 갈수록 증폭되는 이 감정들 속에서, 내가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비를 피해 어떤 건물로 뛰어들어간 어느 날, 우산을 빌려준 낯선 이의 친절에 당혹감을 느꼈다. 그저 낯선 사람의 당연하고 작은 배려였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어쩌면 이 작은 친절이 내게는 상상도 못 한 과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그날 밤, 나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나의 혐오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나의 생각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나는 깨달았다. 내가 혐오하는 것은 사실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연결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이 깨달음은 작은 불씨가 되어 내 안의 어둠을 조금씩 밝히기 시작했다. 혐오는 결국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는 두려움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타인을, 가족을, 나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그저 판단만 했던 것이 아닐까. 오늘도 여전히 거리에선 낯선 이들이 스쳐 지나가고, 가족과의 대화는 어색하며, 거울 속 내 모습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모두가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자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 세상을 바꾸기보다, 내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일부터 시작하려 한다. 혐오가 아닌, 이해와 공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하나씩 배워가는 여정. 그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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