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모든 것이 행운이었다

by 예민아씨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그동안 많은 운이 따랐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내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며 시니컬한 농담에 웃을 수 있었던 인지적 자원과 신체 기능,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일이 낯설지 않을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인프라 경험, 부모의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거나 우울에 관한 글을 스스로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언어적 표현력, 그리고 타인의 무례함을 인식하고 불쾌해할 수 있는 도덕적 수준 같은 것들은, 물론 당신이 노력해서 성취한 부분도 있겠지만 운에 기대어 얻게 된 부분이 더 큽니다.


우연에서 비롯한 유전적인 조합들,

우연히 함께하게 된 가족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우연한 기회의 학습 경험들이

당신의 많은 부분을 결정해왔습니다.


높은 지능이 우울과 불안을 불러온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이, 창의성이 높을수록 우울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이, 그리고 누군가의 취약성이나 결함이 드러날 때 그에 대한 호감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이, 당신을 절망하게 했고 당신이 저주했던 어떤 요인은 당신이 간과한 당신 행운의 일부였습니다.


무심코 지나치거나 쉽게만 보았던 당신의 행운들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그때, 그 정도의 행운마저 (우연히) 주어지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을 언젠가는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中 -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급변한 환경에 갑작스러운 퇴사를 하게 되며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그간 스마트하고 인성 좋은 팀원들과 즐겁게 일했었고, 저마다 성향과 방법은 달랐지만 나를 존중해주는 상사들과 함께 했으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회사에서 일했다는 점에서 느낀 감사함였다.


모든 게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던 이곳이었지만, 그걸 다 상쇄할 만큼 플러스가 된 나의 동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고자 이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얘기할 용기를 낼 수 있었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 치유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계기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회사지만, 인복이 많아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나의 새로운 시작과 끝에 늘 응원으로 함께 해준 인생의 친구들을 얻었다는 생각에 이제 이곳에 온 게 하나의 축복으로 여겨진다.


"당신을 절망하게 했고 당신이 저주했던 어떤 요인은 당신이 간과한 당신 행운의 일부였습니다."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빴던 모든 것들이 내 행운이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곳을 정리하며.

이제 나는 이곳에서의 고된 기억들이 선입견으로 파고들어 색안경 끼는 일이 없도록, 내 마음을 잘 돌보고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숙제를 마치고자 한다.

keyword
이전 15화나의 퇴사 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