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랄도 풍년이다 -
남존-여비(男尊女卑)
「명사」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우대하고 존중하는 일.
- 예문 -
· 한국 남자들이 남존여비의 고정관념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 그 세대에는 남존여비의 전근대적 관념이 뿌리 깊게 잔재해 있다
·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남존여비의 전근대적 관념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앞서 여자 경력직이 당하는 불합리한 근로계약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이번에는 들어와서 겪게 되는 '남존여비' 실태를 적어보겠다.
[Ep.1 어느 팀의 점심 회식]
A팀의 팀장은 영업 본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 약 1년 전 마케팅 본부로 이동해 온 부장으로, 뇌 깊숙이 남존여비 사상을 탑재한 분이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여자는 잡스러운 일만 하는 무능력자'로 인식하는 이곳의 대표적인 남녀차별자 중 하나로, 담당업무와 관계없이 '남자 직원'에게만 말을 거는 무시무시한 '여자 스킵' 능력을 지닌 분이다. 그러나, A팀은 워낙 출중한 여자 팀원분들이 업무를 이끌어 가는 편인지라, 이 곳에 와서 A팀장의 남존여비 사상은 다소 꺾이는 듯했는데..
때는 올해 설 연휴 전날였다. 명절 전날 같이 점심을 먹자며 A팀장은 팀원들에게 점심 회식을 청했고, 맞은편에 앉은 나는 우르르 나가던 그들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같이 밥 먹나 보다. 우리 팀장보단 낫네' 하며 씁쓸해했던 기억과 함께^^
그리고 점심시간 후 들은 충격적인 소식.
"A팀장이 남자 테이블만 계산했대."
(나) "네???? 네??????????????"
믿을 수 없어 A팀원 한 분에게 물어보니 사실이란다. 어쩌다 남자와 여자 팀원들이 테이블을 나눠 앉게 되었는데, 먼저 나간 A팀장이 남자 테이블만 계산하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남아있던 여자 테이블은 황당한 표정으로 '팀 점심'을 마무리했고, 이 '사건'은 어처구니없는 남존여비 실태를 알리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에피소드가 되었다.
[Ep.2 대대손손 길이길이 잔존할 문화]
몇 천명의 임직원이 일하는 이 곳에서 한동안_그리고 나 홀로_기능 중심 패키지 업무를 담당한 절친 동료분이 있다. 이 분은 나보다 약 3년 먼저 이곳에 경력직으로 입사하였고, 전 직장부터 패키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셜리스트 개념이 없는 이곳에서 남존여비 사상을 온몸으로 겪은 산 증인이다. 이분이 충격받은 에피소드 중 하나는, 패키지 관련 아젠다가 있던 회장님 주재 회의체 후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만난 회장님이 건넨 인사는,
"아, 포장하는 아가씨 구만!"였다.
과연 몇 천명이 일하는 기업의 오너이자 수장이 할 말인지.. 이곳의 남존여비 문화가 '저어~기 위에서부터 대대로 내려온' 쉬이 바뀔 수 없는 하나의 문화임을 깨달은 일화다.
[Ep.3 공지 메일링 담당이 있는 곳]
특히나 영업에서, 남성 우월주의가 드러나는 하나의 문화가 있다. 바로 '팀을 대표해 유관부서에 보내는 메일링'의 담당자는 업무와 관계없이 '남자'여야 한다는 것.
앞서 A팀장의 '여자 스킵' 기능에 연장선으로, '여자'직원은 (직급과 관계없이)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로 공지/안내 메일을 보내지 못한다. 심지어, 영업의 한 팀에 새로 발령받아 온 여자 직원분이 공지 메일을 유관부서에 보냈을 때 해당 팀장이 다급하게 메일 회수 지시를 내렸고, 그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동일한 직급의 남자 직원이 똑같은 메일 내용으로 다시 메일링을 하게 했다. 이것은 일회성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팀에서 지속되는 이곳의 관행이다.
이 외에도,
- (오너이신) 회장님 집무실에는 여자 직원이 들어갈 수 없다
- 몇몇 남자 팀장들은 여자 팀원들과 겸상하지 않는다
등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0년대 배경 영화 '삼진 그룹 영어토익반'에 나올법한 남존여비의 말과 행동들이 이곳엔 숨 쉬듯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이런 남녀차별 언행을 별거 아니라고 아니, 아무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부 임직원들이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르는 그 무지함을 겪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말조차 섞기 싫은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봤고, 그런 매일이 반복되면서 헛웃음이 나오다, 결국 이 곳에 더 있다가 나도 이 불합리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까 봐 무서워졌다.
내 전 직장에서는 전사가 여성 임원 양성에 주력해, 일부 남직원들이 역차별을 운운할 정도였다. 또한, 업무와 언행에서 상사/동료에게 남녀차별이라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게 2010년부터 직장생활을 했던 내게 당연한 문화였다.
이곳에 온 후, 내가 일했던 곳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는 한편, 당연한 것을 감사하게 느낄 정도로 이곳의 문화가 얼마나 뒤떨어졌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곳에서 느끼는 남녀차별에 대해 더 많은 기록을 남기지 못함이 한(恨)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