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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May 02. 2023

착한 '어른' 상이 없는 이유

착한 사람의 기준


착한 '어린이' 상


어린 시절, '착한 어린이 상'이라고 한 번씩 들어보고 받아봤을 종이 조각이 있다. 지금은 방 어딘가에 박혀 있거나 다른 곳에 쓰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작은 조각이다. 종이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어른들의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그런 '착한 어린이'라는 타이틀이 좋았다. 상을 받으면 괜히 친구를 도와주려 힘쓰고 선생님의 일을 도와드리려 애썼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고 싶었다.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고 싶었다. 어렸을 땐.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은 "착하다"라는 말이 별로 좋게 들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이 통용하고 있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사용하는 상황과 그 순간의 태도와 생각은 사람마다 너무나도 다양하고 다르기에 정확히 어떤 형태의 사람에게 내뱉는 말이라고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감히 예측할 수 있는 건 먹는 숫자가 클수록 칭찬은 아니라는 점. 지니고 있는 숫자가 큰 '착한' 대상일수록 100% 좋은 말로만 들을 수는 없다는 점.  


착한 '어린이' 상인 이유를 지금에서야 생각해 본다.




서울에서 연인과 만나기로 한 날, 약속 장소에 30분가량 일찍 도착했다. 시간을 때울 겸 백화점 지하 푸드코너를 혼자 돌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배회하던 도중 내 눈에 들어온 과일 찹쌀떡. 그는 딸기를 좋아해서 딸기가 들어간 찹쌀떡을 잘 먹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3개를 살지 4개를 살지 고민하던 중 가격도 가격인지라 3개를 구매하기로 했다. 직원 아주머니께서는 정성스럽게 찹쌀떡 3개를 예쁜 토끼 모양 비닐로 포장하고 손잡이 박스에 넣어 주셨다. 박스를 받고 가던 길에 확인차 열어보니 4개용 포장박스라 그런지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 생각해서 주는 선물이라 가득 찬 느낌이 좋을 것 같았다. 가던 길을 돌아섰다. 나는 아주머니께 다가가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을 건넸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 한 개만 더 구매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아주머니께서는 웃으시면서 똑같은 토끼 모양 비닐로 포장된 떡을 박스에 넣어주시고, 찹쌀떡 한 개 값을 계산해 주셨다. 그리곤 내게 말씀하셨다.


"뭐가 그리 죄송해. 고객이 하나 더 사주면 나야 좋지.

죄송하다는 말 그렇게 쉽게 쓰는 거 아니야.

그렇게 착해도 못 써."


나는 한순간에 세상이 말하는 '착한 사람'으로 전락했다.



착한 사람의 기준


착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는 주제의 굴레.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요즘이다.


누군가 나에게 착하다고 했다. 나를 좋게 봐줬던 '그(HE)'들도 내가 착해서 좋다고 했다. "왜?"라고 물었을 땐, 내가 상대방을 잘 맞춰준다고 했다. 말을 예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오만하게도 착한 사람 되기 참 쉽다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잘 맞춰주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살갑게 인사하고, 잘 웃어주고, 의견을 들어주고, 상대가 좋아하는 거 챙겨주고 싫어하는 거 하지 않고. 한 마디로, 모나지 않은 돌이 되는 것. 그러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딱히 그런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 행동들이 아닌데.


그렇게 해서 얻은 '착한 사람' 타이틀은 꽤나 별로였다.


언제부턴가 착하다는 말이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의미로 전달되고 있다. "착하다." 꽤나 다양하게 내뱉었고 들어온 말이다. 이제는 가볍게 듣고 뱉지 않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물론 곱고 따뜻한 내면까지 인정받고 들을 수 있는 말이면 참 다행인 삶이겠지만 그게 쉽진 않더라. 이제는 내가 추구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삶을 살아가는 방향, 관계를 생각하는 마음이 사회가 말하는 착함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삶을 살아가는 방향, 관계를 생각하는 마음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편안한 일상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서로 이익을 바라지 않고 대하는 그런 관계를 원한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좋은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그들을 위해 내 세상을 예쁘게 가꾸고 있는 중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켜야 할 내 세상의 예(禮)를 지켰을 뿐. 단순히 착한 '어른'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니다.


착한 '어른' 상이 없는 이유: 과연 그게 상((賞)일까.



분명 자책할 사람들이 다수일 것이기에. 착하다는 말을 들어도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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