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나의 어른
10월, 남들 봄에 예쁘게 나올 때 피지 않던 코스모스가 혼자 피는 계절.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기로 한 그날. 약속한 시간에 잘 맞춰 도착했것만 그는 나를 꽤나 기다린 모양이었다. 엄청 크게 반겨주더라고. 기분이 묘하더라.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달까. 당시 그의 표정이 크게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나를 바라보는 표정과 별반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 더하면 더했을지 몰라도. 이미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처음 이전부터.
우리가 만난 세월 동안 그는 매일 같이 연락해서 내 안부를 물었다. 잘 잤냐고.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아픈 곳은 없느냐고. 밥 꼭 챙겨 먹으라고.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은 기본이다. 아프기라도 하면 대신 아파주고 싶다며 하루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힌 단다. 필요한 건 없는지.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며 주저 없이 해주고. 맛있는 걸 사주기도 하고 좋은 곳에 데려가기도 한다. 마치 나를 위해 사는 것처럼 모든 걸 쏟는 그. 이렇게 한결같은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최근, 큰 병으로 인해 크게 좌절하고 힘들어했다. 씩씩하게 이겨내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귀신 같이 알아채곤 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똑같이 예쁘다고 문제없다고 무조건 나을 거라고 말해주던 그. 내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다네. 그러면서 나보다 더 속상해하던 그 표정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누구보다 들키기 싫은 사람이었는데. 분명 혼자 걱정할게 뻔해서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내가 있는 곳 어디든 달려와주더니, 이번에도 달려오더라. 나를 위해.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귀찮지 않으냐고. 그는 답했다. 일상이 귀찮겠냐고. 당연하다는 듯 답하던 그였다. 밥 한 끼라도 함께 하기 위해 시간 내서 와주는 사람. 그의 일상에 물들어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나를 주의할 것. 이 마음만은 지키려 노력했다. 늘 감사하고 싶었다.
사랑을 주는 법을 알고 관계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베푸는 여유와 따뜻한 성품을 갖춘 사람. 그를 통해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못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관계를 지극히 소중하게 여기며, 해야 할 것의 도리를 다하는 그가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세상과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점점 그를 이해하고 있다. 나 또한 이미 그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는 나의 유일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너무 큰 사랑을 받았고 배웠다. 그 사랑은 너무나도 두텁고 깊어 감히 다시 찾아볼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유일무이한 것. 나도 그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랑 고백도 따뜻한 포옹도 한 번 못해봤다. 그게 뭐라고 그리 어렵던지. 선명해진 세월이 나를 더 재촉하고 있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어서 이 마음을 전해보자.
"사랑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