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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Jun 28. 2023

예민한 - 년(年)

예민-하다: 무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다.


2023초, 올해 사주를 보았다. 그냥 새해맞이 의례, 의식 같은 거랄까? 때는 인천의 한 상업지구에서 대학 동기들과 새해 파티를 한 날이다. 서울, 수원에서 온 친구들은 막차를 타러 떠나고, 함께 남은 다른 친구와 나는 사주를 보러 갔다.


처음에는 안 보려 했으나, 친구가 하는 걸 옆에서 보니 나도 내 사주가 궁금해졌다. 이름,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을 밝히면 술술 들리는 올해 나의 사주. 아저씨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 "예민해." 아저씨는 내게 올해가 아주 예민한 해라 하셨다. 7월부터 일이 풀린다며, 그전엔 시험이든 뭐든 잘 안되니 너무 열심히 하다가 자책하지 말라 하셨다. 그냥 지나가는 대로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나는 용띠라서 삼재인가 보다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다. 10분가량 들리는 나의 이야기를 몇 자 끄적이고, 그 메모장은 그대로 다시 열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잊고 살 무렵,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임을 깨닫게 해 준 3월의 어느 날. 눈에 띄게 내면의 예민함이 내비쳐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작은 유해함에도 심적인 경보시스템이 울리듯 불편함을 드러냈다. 한순간 갑작스럽게 문드러진 몸 상태. 그리고 서서히 곯아지는 마음까지. 삼재 맞네.


쉽게 웃지 못하는 마음. 어딘가 불만 가득해 보이는 표정. 예전과 같지 않은 기력. 따스함에 애처로움을 겸비한 주변의 관심.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심신 상태. 이 모든 게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믿었다. 예민해야만 하는 사람. 사실, 이 생각 자체가 증표였던 것. 내가 예민했다는 증거.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과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것들에 유독 신경이 빠짝 서는 기분(약간 더러운 기분)을 처음 느껴봤다.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눈썹을 모으곤 뒤늦게 인지했다. 나 인상 찌푸려졌네. 내가 이상한 것만 같았다. 더하면 잘못된 모습이라는 생각까지 닿았다. 불편한 말들과 행동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극을 받는 게 힘들다. 두 눈과 귀에 편안한 것들만 담고 싶다.


내게 난 가시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마치 고슴도치가 본인의 포근한 살 속에 얼굴을 파묻고는 가시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몰라라 하듯. 가시를 내리면 쉽고 빠르게 편안 해질 텐데. 항상 반복되는 의문이다. 너무나도 편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타인이 무례했던 건지. 그 반응이 당연했던 건지. 특히 어느 부분에서 예민한 건지. 사실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계속해서 나를 알기 위한 고뇌를 벅차했다. 우연히 메모장에 적힌 세 글자(메모장에 적힌 세 글자: 예민해)를 발견하기 전까진.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 "예민한 게 꼭 나쁜가?"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거지. 이렇게 느끼고 분석하며 성장하는 거지. 빠르게 판단을 해보자.


"그냥, 예민한 년(年)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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