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
"나한테 감동받았던 적이 있어?"
나는 사소한 순간과 감정, 느낌을 묻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그 사람을 알아간다 생각하니까. 그러나, 이렇게 사소한 질문들이 쌓이면 타인을 지치게 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 한두 번 답하고 보면 귀찮을 때가 분명 오겠지. 그렇게 떠난 사람도 많았다. 믿고 싶었다. 단지 대화의 깊이와 결이 맞지 않았던 걸로. 분명 모든 질문에 정성껏 답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 간절함이 언제 닿았는지. 지금은 끝도 없는 생각과 질문을 꺼내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질문을 던지고 특별한 답을 받았다.
오늘의 답에 되려 내가 당황했다. 마음 한 켠으론 아쉽기도 했지. 그 답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감동을 가지고 고마워할 줄 아는 당신에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 당연함을 느끼게 해주지 못했다는 거. 그게 너무 아쉽더라.
당신이 말했다. 출출한 새벽에 함께 손잡고 나가서 맛있는 주전부리 사 오는 거. 손잡고 함께 나가는 그게 그렇게나 좋았다고. 감동이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그 눈빛이 어찌나 맑게 빛나던지.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재미였을 뿐이었는데 말이지.
가벼운 잠옷 차림에 슬리퍼 질질 끌고, 마주 잡은 두 손을 앞뒤로 가볍게 흔들며, 촉촉한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소중한 찰나. 그게 얼마나 재밌고 당연한 일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고. 누려야 마땅한 거. 그거 정말 당연한 거라고.
"당신도 감동받았던 적이 있어?"
그가 나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질문에 관한 내 기억을 말하자, 당신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더라. 그거 정말 당연한 거라고. 누려야 마땅한 거라고.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일부라고.
인턴 생활할 때나 학교 근로장학생으로 일을 할 때. 근처 버스정류장이 됐건, 10분 거리의 학교 건물이 됐건, 3년간 혼자 아침 출근을 해왔다. 누군가 일하러 가는 나를 데려다줄 거라는 기대도 생각도 안 했다. 그저 나는 일찍 나가는 사람에 불과했고. 나를 위해 아침잠을 희생하리라곤 생각지도 바라지도 않았지. 오히려 자는 사람 깰라 조심스럽게 아침을 맞이하기에 바빴으니까. 그들에게 잠은 지극히 소중했거든.
그래서일까. 아침을 함께 맞이해 주는 사람. 이른 아침부터 함께 인사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나를 데려다주는 사람. 그 사람 자체가 감동이던데. 누군가는 웃으면서 당연한 일상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냥, 나는 감사했다. 당연한 일상을 나에게 함께해 줘서. 그 당연한 게 처음이라. 감동이던데.
아, 당신도 이 마음이었겠구나.
그게 얼마나 재밌고 당연한 일인지 알려줘서 고마워.
우리가 수다쟁이가 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꼭 똑같은 질문을 해서 상대의 생각도 묻는다는 거야. 묻고 물으니 대화의 빈틈이 없었지. 물론 가끔 정적도 깔리긴 하지. 당연하게도.
그런데, 그마저도 난 편하고 당연하더라. 앞서 말한 대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정적이 편한 사람. 존재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런 사람이 있구나. 그저 대화만 잘 맞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이것도 당연한 건가. 대화가 잘 맞으면 정적도 편한 거. 암튼. 이렇게 당연해지는 거구나. 서로에게.
당연한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