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에게 책임전가(責任轉嫁)를 해버렸다."
'느낌'과 '확신'. 강력한 의문을 불러오는 이 두 단어. 우리가 실제로 마주 보며 대화를 하고 함께 웃었던 시간을 계산해 보면 얼마나 될까. 하루는 넘길까?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며 '확신'이 들었다던 네 말이 싫었다. 무슨 느낌? 어떻게 그렇게 확신이 쉽지? 처음인데 어떤 근거로 긍정적인 느낌인지 알 수 있었고, 확신으로까지 이어졌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부러웠다. 그럴 수 있는 네가.
우리가 무얼 그렇게 함께 했고, 언제 그렇게 웃었고, 얼마나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어디서 느끼고 확신까지 들었을까. 저 두 단어만 들으면 이렇게나 반감이 든다. 하지만, 어느새 같은 확신을 느껴보고 싶어서 그 바람을 계속 전달하고 있는 나다. 그래서 주겠다더라. 그 확신.
당신을 못 믿는 게 아니다. 노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고맙게 생각했고 아직도 고맙다. 한두 번 본 나에게 '느낌'과 '확신'이라는 묵직한 말까지 사용하며 매력 있고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니까. 그저 무(無)책임한 시작이 아니길 바랐을 뿐이다. 끊음의 무게만큼 맺음의 무게도 알고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파도가 넘실거려도 그 위에서 늘 빛나야 하는 윤슬처럼 우리의 파도에도 은은한 책임이 남아 있어 주길 바랐다. 연인으로서의 책임을 서로 다 하길 바랐다. 근데, 우리 파도는 조금 셌는지 무(無)책임한 대화와 상황이 자주 오가게 됐네.
관계를 끊는 건, 그 사이에 있던 시간의 무게를 견디겠다는 건데. 다시는 우리의 시간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도 감당해야 하는 과정이다. 어떤 관계든 간에 거칠 수밖에 없는 순간인데.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되네. 맺을 땐 둘이 함께인데 끝은 각자 감당해야 한다. 과연 그 끝의 무게가 같을지 누가 더 클지는 모르겠다. 서로가 본인 무게만 생각하며 더 무겁고 아픈 쪽이 나라고 생각할 테니까. 근데 하나 확실한 건, 끊음을 먼저 내뱉은 사람이 더 아프다.
그래서 먼저 끊기 싫었다. 시작을 책임지고 싶었다. 아닐 땐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확실하게 맺고 끊어야 한다는데, 맺음을 책임지는 법을 경험하고 배우기도 바쁜데. 언제쯤 알 수 있을까. 지혜롭게 관계를 맺고 끊는 법. 어렵다.
내 끝의 원인과 과정을 곱씹어 보고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 스스로를 피드백하는 게 습관 됐는데, 그게 또 강박을 만들더라.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려던 게 감히 상대방을 바꾸려 들었던 것 같다. 맺음의 책임에 네 비중이 컸다면 끊음의 책임에는 내 비중이 컸던 것 같아. 이번엔 이게 내 피드백.
"오늘도 나에게 책임전가(責任轉嫁)를 해버렸다."
"항상 상처를 받는 건 내 쪽이면서도, 내가 잘못한 게 없는지, 혹시 오해한 게 없는지, 곱씹어가며 나를 상처 주고는 내 탓인 것처럼 그래왔어요." - The Holiday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