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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Dec 01. 2016

불어에 관한 고찰 (1)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불어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불어는 그다지 낯선 언어가 아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모나미, 몽셸통통, 뚜레쥬르, 베테랑, 에뛰드, 마리오네트, 미장센 등의 단어가 불어이다.

불어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 2.7억 명가량의 인구가 모국어로 구사 중이다. 또한 국제기구에서 2번째 공식 언어, 인터넷에서 4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다.  


공부한 지 10년이 넘어가는 불어는 그래도 남들보다는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파리의 레알 불어를 만난 후 내 생각이 많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배운 '회화 수업'의 불어는 식당에서 주문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친구를 제대로 사귀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불어였다는 말이다. 문법적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파리에서 살아있는 불어를 접하며 든 생각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정말 ‘문어’ 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이다. 또한 돌이켜보면 프랑스에 오기 전까진 나의 불어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할 기회가 없기도 했다. 언어 실력이란 각자의 목표치가 다르고 평가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다섯 마디만 주고받아도 잘한다고 할 수 있고 한 시간을 토론해도 못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또 시험 점수가 높다고 언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건 토익과 오픽 경험이 있는 이들 모두가 알 것이고. 나의 경우는 특히 내 주변에 포진한 언어 특기생들 덕에 그들만큼 완벽하게 불어를 하는 것이 늘 가장 큰 목표였다. (그 말은 사실 다시 태어나라는 말과 같아서 애초에 그냥 마음을 편히 먹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 됐든 회사에 다닐 때도 감을 잃지 않고자 매년 한, 두 번씩 불어 시험을 보았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배운 것을 그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뭐, 불어 잘한다고 회사에서 알아주는 것은 그다지 없었지만 ㅎㅎ. (회사에서는 철저히 언어가 ‘수단’ 일 뿐이어서 언어를 장기로 내세우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그룹장님이 누누이 말하셨다.)



모국어를 구사하는 것과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모국어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문 조차가 지지 않는 것들을 외국어에서 (쓸데없이)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왜 열 시 열다섯 분이 아니고 열 시 십오 분이지?
왜 한 명, 두 명이라고 하면서 일 인분, 이인분이라고 하지?



그래서 개인적으로 '새롭다'라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불어 속의 불어

그런 면에서 언어를 구사에 녹아든 사회, 문화적 차이도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특히 한국어에서는 지역별 차이(사투리)는 존재해도 사회계층별 언어 차이는 인식해본 적이 없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참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굳이 분류를 하자면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평창동 ㅇㅇ입니다’ 류의 사모님 말투와 일부 정치인들의 유체이탈 화법이 있겠지만 그 외에 기업 총수가 구사하는 말과 일반 직장인이 구사하는 언어가 구별될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차이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반면 이 곳은 뼛속까지 다문화 사회인 것을 인증하듯 인종, 사회계층별 판이하게 다른 억양과 슬랭 및 TPO에 따른 어휘까지 너무나 다양한 불어가 존재하고 있다. 흔히 영국의 Posh와 Cockney로 말미암은 차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사투리도 남한보다 36배 넓은 땅덩이를 증명하듯 아예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지역도 많다.


학교의 아이들도 3명 빼고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는 지역에 따라 말투가 참 다르다. 파리 북쪽에서 사는 애들은 아랍인 억양을 섞어서 쓰고 남쪽(Rive gauche)에 사는 애들은 늘 점잖게 고상한 말투로 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기본개념으로 탑재되어있어 보편적으로 상류층을 선망하고 지향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사회적 성공에 집착 안 하는 여기 아이들은 고상한 말투 쓰면 부르쥬아라고 재수 없다 하고 북쪽 사면 양아치라고 하며 서로 잘 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하철에 타면 온갖 종류의 불어를 들을 수 있는데 하다못해 구걸하는 걸인들도 억양이 다 달라서 신기하다. 한 번은 만원 지하철에서 두 백인 아주머니가 시비가 붙었는데 싸움도 영화에서 보던 말투로 참 차근차근하게 해서 신선했다.


욕쟁이 프렌치

그리고 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욕을 굉장히 자주 한다.

물론 욕에도 종류가 있는데, 남을 모욕하기 위한 욕이 있고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욕이 있다. 사무실에서도 후자의 욕을 모두가 거리낌 없이 사용해서 한국의 욕보다는 사실 가벼운 느낌이다. 욕이긴 한데 ‘어머!’ ‘대박!’ ‘헐!’ 정도의 느낌이랄까. 물론 상스러운 욕도 존재하지만 당연히 회사에선 듣지 못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학교 때 교환학생 갔다 온 아이들이 으스대며 프랑스의 욕이라고 알려줬던 M word, P word는 사실 욕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내가 가장 먼저 마스터한 분야는 '불평하기'이다. 어찌나 다양한 불평의 표현들이 난무하는지! 불평만큼은 원어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미식의 표현들

프랑스는 또한 미식의 나라답게 음식을 이용한 표현들이 참 많은데, ‘Man on wire’라는 영화에선 프랑스에 무려 547가지가 넘는 치즈 관련 표현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사실 여부는 밝히지 못했다)

어찌 됐든, 가장 자주 듣는 표현으론 Crème de crème (알짜), cerise sur le gâteau (대미를 장식하는 것) 등이 있고 연인들의 애칭으로 자주 쓰이는 단어에는 양배추(Chou)가 있다. 바보는 피클(cornichon)이거나 당나귀(âne)이다.


그런데 한국도 참 음식 관련 표현이 많다.

미역국을 먹다, 누워서 떡먹기, 국수 먹는 날, 파김치가 되다, 김칫국부터 마시다, 굴러들어 온 호박, 식은 죽 먹기, 진국, 남의 떡이 커 보인다 등 문득 헤아려보니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먹기 위해 사는 곳이니까! 사실 안 알려져서 그렇지 프랑스보다 더한 미식의 나라인걸! (파리에 간장게장이 없는 게 천추의 한)

심지어 학교 친구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웃긴 한국 속담들을 찾아서 읽어줬는데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표현이 너무 웃기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떡은 프랑스의 '바게트'라고 하니까 남의 바게트가 더 커 보인다는 것은 자칫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모호한 존댓말

불어에도 존댓말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국처럼 나이에 따라 칼같이 사용하기보단 정말 높은 사람(사장 등)이나 초면에 사용한다. 부장과 사원이어도 반말을 한다. 하지만 반말이라고 한국의 반말처럼 ‘손아래’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친근함의 느낌이다. 이 언어적 특성 덕에 부담 없이 서른 살 차이 나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내가 어떻게 60대 할머니랑 영화를 보러 다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강박적인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한국의 언어습관에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 역시도 여기서 한국인들을 만나고 존댓말을 쓸 땐 나도 모르게 말투가 변하는 걸 느낀다.


그리고 울랄라!

프랑스엔 아주 다양한 감탄사와 제스처들이 있어서 배우는 재미가 더욱 크다.

제스처가 거의 없는 우리와는 달리 얘네는 말 대신 눈짓, 몸짓으로 참 많은걸 표현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들이 (남,녀 모두) 공감과 동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왼쪽 눈을 찡긋하곤 하는데 이는 참 매력적이다. 그런데 내가 사용하기엔 어느 상황에 써야 할지도 애매하고 또 한국에서 눈 찡긋은 유혹의 의미 외엔 1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여 어색하기만 하다.

또 택도 없는 것을 표현할 때 콧방귀 대신 입방귀(뿍!)를 끼는데 적재적소에 사용하면 참 맛깔나서 애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길가다 신호를 지키지 않는 차량 등 무례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만나면 손바닥을 하늘로 하고 상대를 향해 가열차게 올려붙인다. 감자나 먹어라와 같은 느낌이다. 이외 Air quote, hash tag 등 손가락으로 하는 여러 가지 제스처가 있는데 얘넨 프랑스산이 아니니...


마찬가지로 연령에 관계없이 의태어나 감탄사를 참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나에겐 영화 지시문을 읽는 기분이다. 아이유의 '아이코'가 아니고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한글로 적으면 ‘잇차, 잇차’ ‘영차, 영차’일 것들을 참 자주 말한다. 흔히 물건을 놓을 때 놓으면서 ‘딱’ ‘딱’ 혹은 ‘Hop-là (옵ㅃ-라)'라고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하며, 영어의 Blah blah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냔냔냐를 참 많이 쓰는데 수업시간에 교수가 헛소리를 한다 싶으면 애들이 너도나도 냐냐냐 거린다. 아, 그리고 한글과 마찬가지로 감탄사는 주로 욕이 대체한다.


무궁무진한 불어의 세계는 평생을 공부해도 다 모르겠지만, 파리에 와서 진짜 불어를 만나고 한층 더 성장한 기분이다. 달리 말하면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는 말! 그리고 실제로 매일 새롭다. 책에서 배운것과 실제 사용되는 구어는 이토록 천지차이인 것! 나는 그동안 무엇을 배웠나. 사실 불어 '고급 회화' 수업은 대게 철학적인 주제를 던지고 몇시간동안 토론하는 형식이 많아서 이런 일상생활의 불어를 배울 일은 사실 없긴 했다.

지금이라도 알게되었으니 절대 까먹지 말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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