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나융 Dec 04. 2016

불어에 관한 고찰 (2)

외국어를 배울 때에는 당연히 뼈대가 되는 문법과 언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 언어가 사용되는 곳의 문화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문법이 스케치라면 문화적 함의를 파악하는 것이 채색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를 빙산에 비유한 브룩스 피터슨의 말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수면 아래의 거대한 빙산을 파악하는 과정에는 특히 문화가 빠질 수 없다. 그것은 모국어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대다수의 성인이 한글로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음에도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 모르는 단어 투성이인 것과 같을 것이다. 그 회사 안에서만 공유되는 어휘, 소위 업계 용어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TO가 어딘가에선 공석으로, 어딘가에선 여행사 오퍼레이터로 통하듯)


그런 면에서 이번 편은 프랑스에 한정되니 불어에 관한 고찰이라기 보단 프랑스어에 관한 고찰이 더 맞겠다.


어서와, 프랑스 젊은이는 처음이지

파리에 와서 학교에 간 첫날이 생생하다.   

가게에서 물건도 문제없이 사고, 식당에서 주문도 곧잘 하고, 행정절차도 문제없이 밟고 학교 수업도 들리긴 하는데, 정작 이 어린 프랑스 애들과는 생각만큼 말이 통하지 않았다. 프랑스 문화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얘네와의 공통 주제가 음식밖에 없었다. 프랑스 학생들의 문화를 잘 모르다 보니 대화 주제를 따라가는 것도 어려웠고 또 사전에 없는 말들은 왜 그렇게들 많이 쓰는 건지!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서 배운 교재들의 ‘프랑스 문화’ 부분은  초판본을 우리고 우려 부모 세대 정도의 문화가 프랑스 문화랍시고 소개돼 있던 것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Indochine! (81년도에 결성된 프랑스 락그룹이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이문세, 조영남, 이선희 정도?) 그래, 생각해보니 등장인물들 이름도 후졌어...  Sylvie라니! (60년대 인기 이름으로 한국으로 치면 미숙,  혜숙,  영자 등과 궤를 같이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프랑스 국내가 아닌 해외에 소개되는 프랑스 문화(주로 영화) 등은 팔릴 만한 극히 일부의 스테레오 타입의 콘텐츠들만 들여오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노래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오드리 또뚜’는 우리로 따지면 ‘두유 노우 강남스타일?’급이고,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마리옹 꼬띠아르’, ‘레아 세이두’는 정작 싫어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 수출향이었다는 사실. 


물론 예술학교다 보니 다들 음악, 영화,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일반 프랑스인들도 모를 작품들을 더 많이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쉬는 시간에 하는 대화는 주로 자기가 본 영화, 연극, 티비, 전시 등에 관한 것들이니까. 그리고 나는 연극과 티비 분야로 주제가 넘어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우리나라 버전으로 말하면, ‘삼시세끼’, ‘우리 결혼했어요’,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 이야기를 열성적으로 하는데 난 ‘가족오락관’밖에 모르는 것이고, ‘빈지노’, ‘산이’ 이야기하는데 ‘HOT’ 혹은 '소방차'밖에 모르는 격이다.


그래서 대화를 따라가고자 공부를 해서 조금 알은체 하려 하면 이제는 또 ‘추억의 노래/프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도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면 지구용사 썬가드 목청 쓰며 부르고 밀레니엄 요정 세대 아이돌들 노래 메들리로 부르는 것 좋아한다. 그래도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아는 주제가 나와서 할만하다. 추억의 노래에는 셀린 디옹도 나오고 옐도 나오고 내가 아는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꿀이득.


무궁무진한 속어의 세계

그리고 어디나 그렇듯 교과서에 존재하지 않은 속어가 존재하는데 이 역시 첫 체류 때는 몰랐던 것이었다.  이래서 어학연수는 반년 가지고 안되나 보다.  불어에는 대표적으로 Verlan이 있는데 음절을 뒤에서부터 말하는 젊은 층 속어이다. 한글로 표현을 하면 안녕이 녕안이 되는 느낌? 그렇다고 모든 단어를 다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일부 표현에 적용된다. (한글 속어로 표현하자면 꼬시다, 깔 정도의 어휘에 적용되며 그 정도의 어감이다)  벨기에 가수인 Stromae도 Maestro의 Verlan을 활동명으로 택한 케이스이다. 지금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시시각각 생기고 사라지는 유행어들 보다는 가짓수가 적은 것 같다. 


비즈니스 불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는데, 프랑스의 비즈니스 불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전화를 받는 방법도 다양하고,  점심 뭐 먹냐는 질문도 무한 변주가 가능하며 주간회의에서 하는 모든 말들도 같은 듯 다르다.  그래서 업무 수첩 한켠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부지런히 받아 적기 바빴다. 덕분에 다양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  회사는 오히려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한 대화가 많이 오고 가서 학교와 같은 컬처쇼크는 없었으나 매끄러운 보고 말투, 어디나 존재하는 꼰대 상사의 농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받아치기 등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고급 스킬을 처음엔 알지 못해 굉장히 전통적이고 소심하고 단아한 첫인상을 주었었다.  또 서류 작성 시 사전을 참고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와 실제 쓰이는 단어에 무한한 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요(요약)는 줄여서 Récap이라고 하는데 Récapitulatif를 불한사전에 치면 '요점 일람표' 정도로 나온다. 이 용어를 어딘가는 쓰는 곳이 있겠지...  그래서 처음에 상사가 Récap  좀 만들어달라 했을 땐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일정도 Emploi du temps  같은 사전에 있는 단어가 아닌 planning을 사용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Emploi du temps을 찾았을 땐 원하는 자료를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참고로 이건 한불/불한사전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불한으로 찾으면 나오는 단어들이 한불로 찾으면  나오지 않는다. 호환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충격과 공포의 필기체

마지막으로 아무리 해도 모르겠는 건 이들의 필기체이다.  

빅토르 위고의 필체. 못 읽겠다.

나도 한국에서는 한 악필이었는데 여기에선 가장 예쁘게 쓴다. 주변 프랑스인에게 물어봐도 서로 모른다. 내가 상상한 필기체의 차원을 넘어서  혼란스러울 따름이지만 뭐 매번 물어봐야지 별 수 있나 싶다. 


7과의 싸움

그  외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것으로는 이들의 숫자 쓰는 방식이 있다.

한국과는 1과 7을 쓰는 방식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한국식으로 7을 쓰면 프랑스 인들은 1인 줄 안다는 것이다. 가로선을 그어주지 않으면 7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7이 들어가는 우리 집 주소를 손으로 써서 회신했던 나는 끝끝내 학교 서류를 받지 못했고 건강보험증도 2번의 주소 오류로 9개월 만에 받았었다.


또 금액을 적을 때도 한국과 차이가 있는데 천 단위를 반점으로 끊고 소수점을 온점으로 쓰는 한국에 반해 프랑스는 천 단위는 한 칸 띄어쓰기를 하고 소수점은 반점으로 쓴다.  엑셀도 같은 원리로 작동하여 처음에는 상당히 당황스러웠었다. 이런 중요한걸 왜 난 이제 알았지 싶다가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며 위로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어에 관한 고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