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건 다름아닌 가방지퍼
프랑스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반년의 교환학생 경험을 가지고 여행으로 겉핥기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느냐며 프랑스를 다 아는 양 행동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파리에게 보기 좋게 한방 먹었다.
물론, 7년 전의 그 도시는 파리가 아닌 학생들이 주인 소도시였고 어울리는 무리도 지금처럼 프랑스인이 대부분이 아닌 외국인이 대부분이어서 그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지난 1년간 느낀 것은 도시의 차이가 아닌 전방위적 생활방식, 사고방식의 거대한 차이이다. 스무 살의 내가 느끼기엔 따분하고 복잡했을 테다.
일상생활의 다른점을 발견하고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다가 이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적기 시작한 리스트가 족히 수페이지를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문화라는 것은 음식, 예술에도 있지만 사람들의 생활방식에도 녹아있는 것이고 어찌보면 그것이 이 모든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점만 늘어놓는다고 파리가 싫은 것은 아니다.
파리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이며 지금은 팽팽한 Love & Hate에 가깝다. 먼저 와서 터를 잡은 한국인들도 같은 것을 느꼈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이십 대 후반의 직장인 - 즉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적인 관습에 신물이 났으며 적당히 안정적인 사회 구성원 - 으로 지내다 프랑스 사회에 유학생 및 외국인 노동자로 편입되며 느끼게 된 온도 차이는 개인적으로 너무 충격적이고 흥미로웠기에 이를 집중적으로 말해보고자 한다.
지난 일 년간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내게 당연한 것이 상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였으니까.
그중 오늘은 보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2015년을 기점으로 파리의 명성엔 '테러'가 추가되었는데 연이은 테러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실로 우려할만한 것이었다. '16년 상반기 기준으로 파리지역 관광객이 전년대비 100만명 감소하였고, 특히 아시아, 미국 쪽 관광객이 급감하였다. 관광객이 수입의 반인 공연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이러한 수치가 꽤나 걱정이 되지만 정작 파리지앵들은 테러에 대한 위험에 담담하다. '그래도 살아야지 뭐, 어쩔 수 있겠어?' 라며 더욱 열심히 테라스를 이용하고 야외활동을 한다. 거리가 텅 비었던 한국의 메르스 사태를 기억하는 난 이를 프랑스인의 혈관에 흐르는 저항의 피라고 농담삼아 지칭하였고, 대단하다고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다. 사실 이들은 자국의 테러보다 북한의 위협을 더욱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하며 나를 걱정해주곤 한다.
국가보안 차원에서는 개인이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작 파리는 테러고 나발이고 개인 소지품 보안이 훠얼씬 중요하다.
파리에 도착한 후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시는 파리엄마에게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서울처럼 소지품 아무 데나 두지마"였다. 참고로 작년에 한국에서 몇개월 생활한 그녀는 한국과 프랑스의 소지품 관리 의식의 차이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지내다 보니 이 곳은 서울과 소지품 관리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페
그 말인즉, 서울처럼 카페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면 안 되고 의자에 가방을 거는 것도 안되며 가방을 올려놓은 채로 화장실을 가는 것은 더더욱 안된다는 말이다. 특히 테라스 자리는 더더욱 주의해야한다. 나도 모르는 새에 사라져 있을 수 있다.
대중교통
파리의 소매치기는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데 그러한 이유로 일부 관광객들은 복대를 두르고 카메라와 핸드폰에 스프링을 달고 다닌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튀어서 더 타겟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도 노린다. 내 주변에만 지난 일 년간 다섯 명가량 핸드폰 및 지갑 소매치기를 당하였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들고온 쇼퍼백은 한번도 들지 못하고 한국으로 도로 돌려보냈었다. 그래서 파리에 놀러 오는 지인들에게는 특히 핸드폰 간수를 누누이 강조하지만 습관이란 것이 쉽게 바뀌지 않는지 내 기준엔 다소 무방비하게 핸드폰을 사용하는 지인들 때문에 어찌나 가슴이 조마조마하던지...
도서관 & 학교
한국에서는 도서관에 자리를 맡고 하루 종일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도 소지품이 없어지는 일은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리는 화장실을 갈 때도 모든 소지품을 챙겨서 가거나 옆사람에게 간수를 부탁한다. 수업 쉬는 시간에도 가방을 챙겨 내려오는 이도 있다.
해변
물놀이하며 소지품 걱정을 해본 적이 없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해변에서도 소지품을 신경 써야 한다. 그래서 가방을 돗자리 아래 놓거나 심지어 모래에 파묻기도 한다. 해수욕을 하다 맥주 한잔 하러 갈 때도 돗자리만 펼쳐놓고 모든 짐을 챙겨서 갔었다. 최근에 모래에 소지품을 뭍을 수 있는 아이템이 페이스북에서 한창 인기였는데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비행기
기내에서 화장실을 갈 때 가방을 들고 다니는 프랑스 인도 봤다. 습관이란.
습관이 되면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신경쓸 필요가 없던것을 새롭게 신경쓰려니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주변에서 하도 흉흉한 소리만 들어서 약간은 편집증적으로 소지품을 철저히 챙기게 된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런덕인지 지금까지 그 어떤 것도 도난당한 적은 없으니 기뻐해야할까. 한국을 방문한 지인 중 한명은 화장실에 놓고 나온 핸드폰이 다시 돌아갔어도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 여기는 들고있는 것도 뺏어가는데 :) 그런면에서는 이런 사소한 것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한국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