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담임을 할 때 일이다.
체육 시간에 운동화 끈이 풀린 채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정수야, 운동화 끈 풀렸다. 묶고 나서 하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 저 운동화 끈 못 묶어요. 묶어주세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현장체험학습을 가서 돌아다닐 때에도, 캠프나 수련 활동 같은 곳에 와서도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운동화 끈을 묶어주었다. 많은 아이들이 운동화 끈을 묶지 못하는 아이들은 정말 많았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나는 아이들에게 운동화 끈을 묶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한 아이가 운동화 끈을 묶어달라고 또 왔다.
“선생님이 가르쳐줄 테니까 직접 한 번 묶어볼래?”
하지만 아이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저 못해요. 그냥 선생님이 묶어주세요.”
나는 결국 다시 쪼그리고 앉아서 운동화 끈을 묶어주었다. 그 대신 묶어주면서, 아이에게 묶는 과정을 같이 보면서 설명해주었다.
“이거 봐봐. 한쪽을 이렇게 동그랗게 잡고 이쪽을 한 번 돌려서 동그랗게 잡아서 넣어준 다음 당겨주면 돼. 됐지?”
아이는 운동화 끈이 다 묶이자 아무 대답 없이 그냥 뛰어가 버렸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 충분히 아이들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잘 못한다. 아니, 처음부터 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는 경험이 진짜 교육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나 선생님이 해줘버릇하는 습관이 들어버리고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잘 배우려하지 않는다. 운동화 끈을 묶는 것처럼, 자기에게 필요치 않아 보이는 것들은 더욱 배울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아이들에게 직접 운동화 끈을 묶게 하고,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하고 싶다.”는 동기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스스로 하고 나서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동기는 욕구에서 온다. 욕구는 기대하는 것에 비해 현재 상황에서 느끼는 부족함의 감정이다. 이 욕구를 엄마나 선생님이 계속 채워줘 버리면 아이는 스스로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4학년이었던 희영이는 자꾸 손이 가는 키도 작고 여린 아이었다. 준비물도 집에 놓고 오는 일이 빈번하고, 학교에서는 자주 아팠다. 수련회에 갔을 때에도 아이가 갑자기 열이 많이 올라서 아이를 등에 업고 인근 보건소까지 뛰어가서 해열제를 먹여야 할 정도로 약했다. 아이가 약하고 여려서 그런지 몰라도 희영이 엄마는 아이가 할 일을 많이 대신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다가 희영이와 대화할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엄마가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혼자서도 밥을 잘 먹는 아이었다. 물론 젓가락으로 끄적거리며 조금씩 먹기는 했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 항상 밥을 늦게까지 먹었다. 아마, 엄마도 밥을 잘 먹지 않는 희영이가 답답하기도 하고,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떠먹여 주었던 것 같다. 나는 매일 희영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급식을 치우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때까지 먹었지만, 그래도 기다려주자 거의 다 먹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거나 운동화 끈을 묶어주고, 옷을 입혀주는 것들은 답답하기도 하고 기다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초등학생 정도면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정도는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아이들도 수련회나 청소년단체 같은 외부 활동에 가면, 정말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잘 한다. 물론, 지도자들의 엄격한 분위기도 한 몫 하겠지만, 아이들은 숙소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쓰레기도 분리수거해서 버리며 옷도 스스로 잘 입고 밥도 잘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교관처럼 아이들에게 명령해서는 안 된다. 일방적인 명령은 언젠가 반발이 생기기 때문이다. 명령보다는 아이들이 작은 일부터 하나씩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여유를 주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옷 입고, 학교 갈 준비를 하려면 정신이 없다. 특히 직장 맘이면 더욱 바쁘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네가 모두 스스로 해라. 난 밥만 차려줄거다.”라고 말한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차근차근 한 가지씩 아이가 혼자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늦거나 미숙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짧게 한 마디만 해주면 된다.
학교에서도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면, 3월 한 달 동안은 생활지도를 우선으로 한다. 하루는 책상서랍 정리하기, 하루는 겉옷 정리하기, 하루는 청소하기 등 1학년이든 6학년이든 생활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계속 반복한다.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 들도록 아이들에게 “어제 배운 대로 책상 정리를 해보자.”라고 짧게 이야기해준다. 사람이 한 가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최소 7일씩 3주인 21일이 걸리고, 습관이 정착되기 시작하려면 66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집에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소 21일 동안 한 가지씩 혼자 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아이는 스스로 하게 된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밥을 늦게 먹어도 좋고, 운동화 끈을 서툴게 묶어도 좋다. 다만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희영이는 지금 6학년이 되었다. 지나가다 만났는데 키도 제법 크고 건강해졌다. 지금은 스스로 밥을 잘 먹는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유아교육 전문가인 몬테소리는 “아이가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방법을 배우게 하라. 아이가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은 인간 존엄의 발현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은 독립 정신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이는 아직 어리고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이 크다. 그리고 항상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까지 의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아이가 한 살 한 살 커가면 더 이상 엄마가 간섭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이 때 엄마가 계속 아이의 할 일을 대신 해주려고 한다면 아이의 독립심은 무너진다. 엄마는 사랑과 관심을 주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놓아주는 어찌 보면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무엇을 간섭하지 않기 바라고, 어떤 것을 의존하고 싶은지는 아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아이와의 관계가 나쁘거나 아이와의 대화가 없고 엄마가 의지할 만한 곳이 되어주지 않으면, 엄마는 아이가 어떤 것을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이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엄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