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리자마다 공항 픽업을 기다렸다. 나 말고도 다양한 사람들이 차에 타고 있었고 다들 종착지가 달랐다. 픽업해 주시는 분이 캐나다에 왔으면 팀 홀튼 아이스 캡을 꼭 마셔 봐야 한다며 우리를 팀 홀튼에 데리고 가서 아이스 캡을 사주셨다. 차에는 여자 4분이 타있었고 그중 공항에서 숙소의 거리가 내가 가장 가까워서 첫 번째로 내리게 되는 행운을 잡았다. 장시간 비행에 지쳐있었는데 처음 마셔본 아이스 캡의 달달함과 함께 그렇게 나는 빌마의 하우스에 도착했다.
나의 첫 홈스테이 마더(홈만)의 이름은 빌마 필리핀 사람이다.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와이파이 번호가 적힌 카드와 열쇠를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캐나다는 우리처럼 도어록이 아니고 현관문을 열쇠로 여닫는다. 도어록이 얼마나 편리한지 이때 새삼 깨달았다
나의 첫 홈스테이 내방 '행운의 마스터룸 사용'
나는 아직도 빌마의 하우스에 도착한 첫날을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꼬박 3일 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코로나 검사받은 결과지를 이메일로 받게 되는데 Negative 받아야지만 나는 외출이 가능했다.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 갓 도착한 내가 영어로 되어있는 서류들로 진땀을 뺐고 가까스로 시도하였으나 마지막에 확인 서류가 열람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공항에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넘게 흘러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이때 처음으로 캐나다의 일 처리 방식이 어떠한지 알게 되었다. 느리다. 매우 매우 느리다. 나같이 성질 급한 사람은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할 것이다. 전화보다는 이메일 답변이 그나마 빠른 나라, 모든 일 처리를 거의 이메일로 하는 나라 신선하면서도 불편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어떤 남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아직 귀가 트이지 않은 시기라 리스닝이 안 돼서 곤욕을 치렀다. 그리고 여기서 살다 보니 또 하나 깨 닭은 점이 있는데 캐나다는 다민족 국가라는 것이었다.
삼십 년 넘게 단일 민족국가에 있다가 처음으로 다민족국가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서 사는 이민자의 땅. 그래서 영어를 사용하더라도 나라별로 고유의 억양이 있다는 사실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전화는 받았는데 말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 공항 직원분도 처음에는 답답해하면서 화를 내다가 내가 Sorry 하자마자 갑자기 목소리가 친절하게 바뀌었고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이때 또 느꼈다 아, 이 나라는 Sorry와 Thank you 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통화를 종료하고 난 울어버렸다. 그렇게 이메일을 다시 받았고 다행히도 Negative 가 떴다 드디어 나는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나의 빅 에피소드는 바로 집세, 나는 분명 950불로 알고 왔고 도착하자마자 현금으로 집세를 지불했는데 그녀는 갑자기 나에게 1000불을 요구하였다. 50불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아서 그냥 지불했는데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근데 한 달 후 집세를 1300불로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한 달 만에 집세를 올려 그리고 더 어이가 없던 것은 내가 지금 사용하는 2층 마스터룸을 1300불로 옮기는 게 아니라 1층 진짜 작은방으로 옮기고 그 방의 집세를 1300불로 받겠다고 해서 너무 충격적이었다. 방을 맘대로 옮기는 것도 모자라서 더 작은방으로 가는데 집세는 300불을 더 받겠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심보란 말인가. 다행히 유학원 담당자분이 합의를 해주셨는데 방은 내가 나가기 전까지 옮기지 않는 대신에 집세를 1200불로 받겠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캐나다에 온 지 한 달 밖에 안 돼서 생활하는 것과 학교도 적응하느라 이때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이제 막 적응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가게 되면 또다시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고 지금 있는 집이 다운타운과 거리가 가까워서 그냥 합의했다. 빌마는 처음엔 매우 계산적이고 현실적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서로 친해지고 정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별 탈 없이 쭉 잘 살았고 나중에는 둘이 일식당도 가고 코스트코도 가고 웨스트 밴쿠버 (부자동네)에 수영장이 딸린 초호화 주택에서 열리는 가족 파티에 나를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홈스테이를 떠날 때 향수도 선물 받았다. 여러 가지로 그녀에게 너무 고마웠다. 지나고 보니 코로나라는 악조건 덕분에 나는 밴쿠버 다운타운과 메트로 타운 사이에 있는 집에서 그것도 화장실 혼자 독차지하고 침대도 널찍한 마스터룸에서 아주 편하고 저렴하게 홈스테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환율이 1050원에서 1100원 사이였는데 지금 환율이 1300이 넘었으니.
그녀의 가족 파티에 초대 받아서 행복한 디너와 추억을 먹은 모습
나는 홈스테이를 구할 때 아이가 있는 집인지(노키즈존) 애완견 유무, 흡연, 마약, 파티, 등등 꼼꼼히 체크하고 구했는데 그러길 잘했다. 한 일본인 친구는 갓난아이 있는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데 아이들이 밤마다 시끄럽게 울어서 소음 때문에 매우 스트레스받아했다. 또 캐나다는 마리화나가 합법이라 곳곳에서 이 냄새를 길거리에서 맡을 수 있는데 그래서 꼭 마약금지와 비흡연 구역을 체크했다.
그리고 캐나다는 정말 반려견을 키우는 집이 많아서 알레르기나 애완동물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 부분도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보통 워홀로 온 다른 나라 친구들은 온라인으로 스스로 집을 서치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일본인 친구가 온라인 채팅으로만 소통하고 집은 보지도 않고 계약했는데 사기를 당해서 경찰에 연락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룸렌트 사기도 많으니 집 구할 때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우리에 소중한 돈이 걸렸으니 피 같은 돈을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앞서 단점을 얘기했으니 이제 홈스테이의 장점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내가 살았던 홈스테이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바로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이 많았다.
홈스테이는 아무래도 같이 자고 먹고 하기 때문에 식사시간마다 서로 마주하면서 밥을 먹어서 그런지 그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한국인 2명, 싱가포르, 이란, 인도네시아, 일본, 멕시코 친구를 홈스테이 하면서 만났는데 그들에게 도움과 정보를 정말 많이 받았고 종종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인 남매 두 친구는 정이 많았고 나에게 스케이트보드를 알려주었으며 이란 친구는 예뻤지만 시간과 약속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실망했고 인도네시아 친구는 내가 본 사람 중에 세상 순수했으며 일본인 친구는 귀여웠고 멕시코 친구는 정말 열정적이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리고 나를 많이 좋아해 주었다. 그리고 싱가포르 친구는 나의 영어 공부를 도와주고 다양한 축제와 행사 그리고 밴쿠버 명문대 UBC 친구들의 모임에 나를 데려가 줘서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많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좋은 경험을 이 친구 덕분에 많이 해서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좋은 사람들이 나의 첫 홈스테이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내가 캐나다 생활을 완벽하게 적응했을 무렵 홈스테이 생활도 많이 즐거웠다. 그래서 나는 홈스테이를 적극 추천한다. 물론 어딜 가나 장단점은 있고 집 떠나면 고생할 각오는 해야 한다. 보통 홈스테이로 시작해서 룸 렌트로 가는 루트도 많으니 잘 고려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