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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dy Aug 17. 2020

마음이 꿉꿉할 때 이 영화를 보세요.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 추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일과 사람에 치여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다시 책을 펴고 혹은 노트북을 켜고 나만의 취미 활동에 집중했던 시간들은 먼 과거처럼 여겨지고, 저녁을 먹고 소파에 기대 앉아 가벼운 책 한 권조차 들기 힘들 만큼 무기력한 시간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잠만 자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무엇도 할 수 있는 힘과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 나의 상태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은 이제 익숙해질 만큼 충분히 해서 어렵다는 느낌이 없는데, 아마도 사람이 문제였구나 싶었다. 마음과 정신을 둘 곳이 없으니, 배가 고프지 않은 데도 습관처럼 입에 음식을 넣는 날이 이어졌다.


나의 소울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이럴 때는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조차 짐이 된다. 오래 전 읽었다가 좋았던 기억이 있었던 소설집을 꺼내들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비유하자면 체력과 마음의 위안까지 한 번에 가져다주는 소울푸드(Soul Food)를 다시 꺼내야 한달까. 그렇게 다시 꺼내 본 나의 소울푸드, 아니 소울영화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Visages Villages)>이었다.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 안타깝게도 2019년 세상을 떠났다. (이미치 출처 : Time Magazine)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프랑스 영화 중에 괜찮은 영화를 하나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늘 추천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스 영화는 철학적이고 난해하다'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타파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누구나 한 번 보면 정말 행복해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다큐멘터리 장르로, 프랑스 현대영화의 한 축을 그은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 감독과 33살의 젊은 사진작가 겸 거리예술가인 'JR'이 프랑스의 전역을 누비벼 각 도시와 마을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전시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거리예술가 JR의 작품 (이미지 출처 : bluecanvas.com)
거리예술가 JR의 작품 (이미지 출처 : www.dezeen.com)


평범한 일상과 잊혀진 역사를 예술로 치환하는 영화

흑백사진을 즉석에서 큰 종이로 인쇄할 수 있는 포토트럭을 타고 이 두 명의 아티스트는 프랑스의 크고 작은 마을들을 거치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의 지나 온 시간들을 거대한 사진예술로 풀어낸다. 더 이상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 없어질 위기에 처한 탄광촌을 지키는 노동자의 후손들, 동료 없이 넓은 농장과 커다란 창고를 홀로 지키며 일하는 농부,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보다는 염소의 뿔을 자르지 않고 지키며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아는 염소농장의 주인들, 그리고 정유회사에서 2교대로 일하는 유쾌한 노동자들은 바르다와 JR의 포토트럭을 만나 거리예술의 일부가 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영화가 멋진 이유는 아름다운 대사와 복잡한 연출 없이도, 바르다와 JR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가지는 애정과 존경을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생생하게 전해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얼굴과 유쾌한 몸동작을 거대한 사진으로 인화해 예술로 치환하는 장면들은 백 마디 대사보다 더 큰 힘을 보탠다. 더불어, 영화 촬영 당시 88세의 노감독 바르다와 33살인 젊은 아티스트 JR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며 영화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누벨바그의 거장이자 산 증인인 바르다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젊고 세련된 감각과 소녀다운 감성을 영화 곳곳에서 보여준다. JR은 이 거장 감독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때로는 바르다의 동네 친구처럼, 때로는 말 안 듣는 손주 같은 모습을 보이며 바르다의 훌륭한 파트너로서 영화를 완성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누구를 만날 때마다 그게 늘 마지막 같아'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영화의 말미다. 바르다가 영화를 시작한 시절부터 오랜 친구로 지냈던 '장 뤽 고다르'의 집을 찾아가는데, 고다르는 약속과는 달리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답게 바르다와 JR을 바람 맞힌다. 이 장면은 잘 짜여진 시나리오처럼 순항 중이던 바르다와 JR의 잔잔한 영화에 작은 조약돌을 던지는 것 같다. 고다르에게 바람 맞고 서운한 감정을 좀처럼 숨기지 못하는 바르다를 위로하며 JR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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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고다르는 당신의 영화적 서사를 깨뜨리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내 영화가 아니야. '우리'의 영화지."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람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일상의 평범한 순간에서 소중한 것들을 포착해 다시 조명하는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통해 꿉꿉한 마음 속 장마를 걷어내보길 바란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네이버영화에서 시청할 수 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예고편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watch?v=6bCFiczfp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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