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닿으면 끈적해서 불쾌감을 느끼는 날씨이다. 이런 날에 감 놔라 배 놔라 주제넘은 소리를 들으니 열이 올라 더 끈적해진다.
내 움직임에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늘. 왜들 그렇게 오지랖을 부릴까. 본인이 하는 말이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무슨 자신감이지? 답답함에 조여 오는 가슴을 부여잡는다. 책상 위에는 3주 치의 약 봉투들이 널려있다. 하루에 먹는 약 두 봉지, 두 봉지 안에 든 알약은 11개. 11개의 알약은 공황장애 약을 제외한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알약이다. 공황이 올 때 복용하는 필요시 알약은 2알인데 요즘 복용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약을 줄이려고도 해봤지만, 상처를 이겨낼 단단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 아직은 약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1개의 알약을 복용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나의 움직임에 사람들은 돌을 던지려 한다. 던져지는 돌이 쌓이다 보니 내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 자갈길도 모자라 바위와 절벽을 마주하기도 한다. 내가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해서 때로는 의욕이 상실하기도 하고, 속상하다. 하지만 정상에 도달했을 때 뒤 돌아보면 끝까지 간 나에게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성취감을 위해, 정상을 위해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려 오늘도 움직인다.
나도 내 미래를 모른다. 그저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을 뿐이다. 이런 내 이야기를 사람들은 제대로 듣지 않고 나에게 계속 질문한다. ‘꿈이 무엇인가요?’,’ 대학 안 나와도 취업할 수 있어요.’라고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내뱉는다. 나는 우울증의 늪에서 운명같이 내가 받아온 상장들을 보고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 꿈으로 인하여 아픔을 이겨내고 있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과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20대에 얻지 못한데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나에겐 대학이라는 추억과 졸업장이 없었다. 이왕이면 좋은 곳에서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 삼수를 결정하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욕심부리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학교에 갈 것이다. 나도 내 미래를 모르니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저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다. 나는 남들과 다른 시간을 보내왔다. 이제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단계이다. 이런 나에게 꼰대 같은 훈수는 넣어두길 바란다. 이 이야기도 몇 번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주 지겹다.
제발 당신들 생각을 나에게 주입시키지 마세요.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세요. 불만이면 안 보면 되지 굳이 거슬리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수 차례 말해도 반복되는 게 애꿎은 내 힘만 빼는 거 같네요.
처음 도전하는 일이니 나침반 없이 항해를 떠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쳐나가려고 하는 나에게 힘이 빠지는 말들을 던진다. 흐름을 타기 위해 돛을 펼쳐야 하는데 흐름이 끊어져서 망망대해에서 공허하다 못해 위험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날은 답답함이 터져 나와 울분을 토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해내려 했다. ‘대체 나한테 왜 그래!’라는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방 안에서 숨죽여 울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도 다양해졌다. 덕분에 내 속을 뭉그러트리는 상처들은 다채롭게 남아있다. 사소한 말 한마디도 생채기를 내는데 작정하고 내뱉은 말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니 속이 뒤틀릴 수밖에
오랜만에 붓에 물감을 적셨다. 무엇을 그릴지 계획하지 않고 무작정 색을 칠했다. 오랜만에 잡은 붓은 기분이 묘했다. 미술은 취미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오랜만에 붓을 잡았다. 실력은 여전히 서툴다. 밑그림도 그리지 않고 흰색을 녹색으로 덮었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서랍 속 글에 덧칠을 한다. 서랍 속 글은 항상 부족하다.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기에 많은 창작물을 뱉어냈다 생각했는데 결과물은 티끌만 하다. 티끌을 들여다보며 생각해보니 계속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느라 내 손가락이 바빴던 것이다. 그 움직임에 많이 썼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물감이 마르길 기다리면서 생각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무엇을 그릴지 생각하다가 고양이를 그릴지 생각해보았고 그러다 보니 고양이를 기르던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졌고 그 친구와 갔던 카페를 떠올리게 됐다. 그러다 문뜩 ‘나는 삼수생인데!’라며 자각을 하게 되었다. 자각을 한 뒤로는 영어 단어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영어 단어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쯤 물감이 말랐는지 만져 보았다. 물감을 두껍게 칠했는지 많은 생각을 했음에도 손가락에 녹색이 묻어났다.
오늘 안에 그림을 완성할 생각은 안 했다. 무작정 시작한 일이라 계획 없이 진행하고 마무리할 생각이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그림 앞에서 많은 생각을 글에 담아내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