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엄마 집은 같은 평수의 다른 집보다 넓어 보인다. 다른 아파트는 보통 침실 공간을 3개 넣는데, 엄마 집은 방을 하나 줄이고 거실을 넓게 쓰는 구조로 되어 있다. 베란다 확장 공사까지 해서 거실 공간은 더 넓다. 남향집이어서 햇빛도 잘 들고 길가에 위치해 있어 통풍도 잘 되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지금 엄마 집은 몇 년 전과 달리 넓고 밝고 따뜻하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아파트 공간에 햇빛이 내리쬐고 바람이 불었을 텐데 집안 분위기는 지금과 달리 어둡고 탁했다. 방이 2개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어느 방에서도 자지 않고, 거실에서 웅크리고 주무셨다. 답답하고 갑갑해서 방에서 잘 수가 없다고 했다. 가끔 내가 내려가거나 동생네가 오면 각각 방에서 나눠 잤을 뿐, 엄마의 침실은 여전히 거실이었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어느 날, 엄마는 작은 방으로 이부자리를 옮겼다. 이제 거실이 춥단다. 거실이 춥다고 느껴야 정상인 계절이긴 하다. 엄마가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큰방으로 옮기지 않고 작은 방으로 옮긴 이유를 물었을 때, 엄마는 보일러 얘기만 했다. 겨울에 보일러를 조금만 켜놔도 작은 방은 금방 따뜻해진다며, 방이 작아서 편하고 따뜻하다는 논리다. 방에는 1인용 돌침대와 TV가 들어왔고, 작은 방은 엄마의 잡동사니 물건으로 채워졌다. 작은 방보다 조금 넓은 큰방은 여전히 빈 방으로 남았다. 아니네. 빈 방이 아니었다. 장롱, 삼층장, 문갑, 화장대 등 엄마와 아빠가 같이 쓰던 오래된 가구가 오래된 기억으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환갑 때 찍은 아빠 사진, 제기, 병풍, 제사상 등 큰방은 아빠 물건으로 차츰 채워져 갔다. 빈 방 같아 보였지만 빈 방이 아니었다. 엄마 맘속에 큰 방은 아빠 방이었다. 철없던 나는 한참 후에 그걸 깨달았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바람이 내 몸을 그대로 통과하는지 몸속까지 추위가 느껴진다. 점점 제시간에 일어나기가 귀찮아지고, 이불속에 좀 더 누워있고 싶다. 게으름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안 되겠군. 몸속의 오장육부에게 부탁해서 빈 방을 하나 달라고 해야겠다. 바람을 몽땅 잡아서 빈 방에 가둬놔야겠다. 철없는 행동을 할 때,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게을러질 때 그 방을 찾아야지. 모아놨던 차가운 바람을 실컷 두들겨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빈 방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 지금처럼 차가운 바람 말고 따뜻하고 밝은 것으로만 채울 수 있는 방을 말이다. 엄마가 만든 빈 방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비어 있지 않은 큰방 같은 방을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