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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30. 2020

오지랖 안부 인사

관계 이야기

가끔 아파트 근처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노부부가 있었다. 곱게 화장을 하고 모자를 눌러쓴 할머니의 모습과 다르게, 할아버지는 중풍을 앓으셨는지 한쪽 다리를 절면서 걸으셨다. 그래서인지 노부부는 늘 손을 잡고 걸었다. 퇴근길에 산책을 갔다 오거나 산책을 나가는 모습을 종종 볼 때가 있었는데, 혹시나 할아버지가 넘어질 까 봐 손을 꼭 잡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느릿느릿 호흡을 맞추면서 걸어가는 두 분의 모습에서 부모님 뒷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으니까.    

  

언제부터였는지 두 분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가끔 엘리베이터를 타는 할머니를 마주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 모습을 본 지는 꽤 오래된 듯했다. 시원찮은 기억력을 쥐어짜 보니 서너 달은 족히 넘은 듯했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1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할머니에게 불쑥 모자가 잘 어울린다며 말을 걸었다. 하아... 이놈의 오지랖 하고는 여하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거니 할머니는 약간 당황한 듯 쳐다보셨다. 나는 할머니를 기억하지만 할머니는 나를 처음 볼 테니 당연하지. 흉악범으로는 보이지 않았는지 이내 편하게 대답하셨다.  

    

『젊은 시절부터 모자를 즐겨 썼더니 이제는 한 몸같이 느껴져요. 머리는 매일 감아요.』   

  

혹여나 생길 수 있는 의심까지 사전에 차단하셨다. 깔끔한 겉모습만큼 성격도 깔끔하시네. 게다가 센스까지 있는 분이셨어.      


묻고 싶은 건 할아버지 안부였지만, 목구멍에서 말이 삐져나오지 않았다. ‘집에 있어요. 거동이 좀 불편해서.’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건만, 오지랖을 부릴 때의 호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입안에서만 맴돈 그 말을 끝내 뱉지 못하고, 엘리베이터를 내린 할머니의 뒷모습만 오래 쳐다봤다. 짐작하는 그 말이 나올까 봐 두렵기도 했고, 혹시나 할머니가 눈물이라도 왈칵 쏟으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았으니까.   

   

엄마도 그랬다. 걱정해서 건넨 말에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고 불편하다며 아무도 말을 안 걸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어보는 사람은 한 번이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하고, 힘든 상황을 계속 떠올려야 하니까. 어느 날은 펑펑 울기도 했다. 어쭙잖은 위로의 말에 엄마는 상처를 받은 것이겠지.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말은 걱정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슬픔에 왕창 소금 뿌리는, 못돼 쳐 먹은 심보를 가진 사람들.     


다음에 스쳐 지나가게 되면 모자는 어디서 샀는지 물어봐야겠다. 내가 본 것만도 대여섯 개는 되어 보였으니까. 딱 한 번만 더 오지랖을 피우고 그만둬야지. 두 사람 모두에게 안부 인사를 할 수 없으니 한 사람에게 이 정도 오지랖 인사는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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