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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Jul 29. 2021

어쩌다 베이글...샌드위치

   을 굽게 되었다. 연일 35도가 넘는 폭염의 나날, 이글대는 전기 오븐을 켜고 빵을 굽다니 제정신인가. 나는 매끼 밥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국수나 빵으로 주식을 대체하는 일은 드물다. 번거로운 을 싫어하기에 밀가루며 각종 도구를 꺼내 드는 일 되도록 벌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느 날 빵을 굽기 위해 반죽을 하고 있다면, 대개는 기후 기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비나 눈이 내리는 좀 쌀쌀한 날이거나, 빵을 굽고 있는 풍경 속에 있고 싶거나. 그러니까 내게 빵은 식욕이 아니라 정서의 영역에 있다.       


   비나 눈이 내리는 날도 아니고, 빵을 굽는 풍경 같은 건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삼복더위에 빵을 구웠다. 왜? 내 행동을 정상범위에서 벗어나게 하는 대부분의 요인은 동생이다. 삼일 연속 열대야로 잠을 설치더니 도무지 밥 생각이 없다 했다. 밥 대신 오미자 액만 하루 몇 차례씩 얼음 띄워 들이켰다. 오미자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얼마 전 내가 탄산수에 타 준 오미자를 마셔 보고는 이젠 오미자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한다. 두 해 전 지인이 방문하며 가져다준 오미자 진액. 2리터 병 하나 가득 남아 있던 게 이제 거의 바닥이다. 그걸 마시면 정신이 좀 난다 했다. 근데 얜 왜 이름이 오미자야. 들게시리. 한 잔 들이켠 뒤 웃지도 않고 횡설수설. 다섯 가지 맛이라 오미자잖아. 대꾸할 것도 없었다. 내가 보기엔 정신이 는 게 아니라 나가는 걸로 보였다. 날이 더워 오미자 진액이 발효되다 못해 술이 되었나. 어쨌든 오미자야 나쁠 것 없지만, 다른 걸 입에 대지 않으니 걱정스러웠다. 겨우 챙겨 먹는다는 게 대추야자와 아몬드 정도. 쪼만한 얼굴이 더 쪼만해졌다. 대가 높은 산골이라 웬만하면 밤엔 선선해질 법한데 도무지 열기가 식질 않았다. 나도 밤마다 잠을 설치고 낮엔 몽롱하지만 밥맛을 잃지는 않았다. 아니 그나마 밥 먹을 생각에 반짝 정신이 다.

 

  밭에는 무더위에 더욱 제맛이 든 신선한 먹을거리가 충분하다. 고추와 오이만 따서 된장을 찍어 먹어도 한 끼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다. 약간 색다른 것이 먹고 싶다면 바질과 고수를 딴다. 가위로 대충 잘라 소금 톡톡 치고 올리브유를 뿌리면 또 개운한 한 끼가 된다. 토마토도 한두 개씩 익어가는 터라 함께 곁들이면 근사한 샐러드를 차려낼 수도 있다. 조리대에 오래 서 있을 것도 없고, 가스레인지 불을 켤 것도 없다. 그런데 동생은 그런 것엔 도무지 입맛을 다시지 않으니 어쩌겠나. 결국 땀을 흠씬 흘릴 각오를 하고 가지와 꽈고추를 따서 프라이팬에 구웠다. 기름 넉넉히 두르고 맛소금을 치면  동생이 평소 맛있게 먹는 채소 구이가 된다.  접시 갖다 주었더니 빵이 있으면 좋겠단다. 빵에다 그것들을 끼어 먹 싶다는 것.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솟는 오후, 결국 밀가루를 꺼내 반죽을 시작했다. 무슨 빵을 구울지는 생각 없이, 일단 냄비에 미지근한 물 한 컵과 이스트를 반 작은 술 넣어 휘휘 저었다. 소금과 설탕도 반 작은 술씩 넣었다. 소금은 간을 맞추는 것이고, 설탕은 이스트의 먹이다. 미생물의 원활한 배양은 더위가 담당한다. 내가 갖춰야 할 건 재미다. 이왕 할 거면 재미를 누려야 한다. 딸아이 장기에 자주 써먹은 방법을 나 자신에게도 써먹는다. 재미를 불러들이는 방법은 상상력을 부추길 수 있는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다. 냉동해 둔 블루베리가 생각난 것으로 발동이 걸렸다. 블루베리를 넣 빵 만들어 본 적 없었다. 탱탱하게 언 블루베리의 차가움을 손 끝에 즐기며 톡톡톡 오십 여 알 반죽에 던져 넣었다. 이스트 균 놀라게 하지 않으려면 녹여서 넣어야겠지만, 워낙에 더운 날씨인 것이다. 블루베리에 이어 넣은 건 올리브유 두 큰 술. 휘휘 저어준 뒤 밀가루를 묽게 풀었다. 반죽 농도는 부침개 부칠 정도. 실내 온도 31도. 한 시간 만에 뽀글뽀글 1차 발효가 되었다. 그 상태로 프라이팬에 넓게 펴서 부치면 '로티 차나이'가 된다. 내가 곧잘 만드는 피자 도우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 말레이시아에 잠시 다녀왔는데 그곳 흔한 길거리 음식 중 로티 차나이 있었다. 발효가 잘 된 몽글몽글한 반죽을 한 손에 쥐고 넓적 팬에 순식간 얇게 발라 부쳐내는 음식이었다. 그 뒤 집에서 만드는 피자 도우는 그걸 흉내 내 부침개 부치듯 만들게 되었다. 얇은 도우를 좋아하는 데다 힘들게 반죽을 밀어 만드는 것보다 쉬웠다. 여러 장 한꺼번에 만들어 냉동해 두면 언제든 피자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피자를 만들지 않더라도 도우에 구운 채소를 얹어 접으면 케사디야라는 멕시코 요리를 만들 수도 있었다. 잘 알려진 '토르티야'와 같은 쓰임새다. 그 피자 도우가 남았다면 굳이 빵까지 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그게 하필 동이 났다.


   어쨌든 럭저럭 발동이 걸렸으니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베이글을 만들기로 마음을 굳힌 건 밀가루를 첨가한 뒤 2차 발효에 들어갔을 때였다.  발효되기를 기다리 문득 블루베리빵을 검색하니 베이글이 나왔다. 세간엔 '블루베리 베이글'이 인기 있는 모양이었다. 오호, 베이글을 좋아하는데 그건 빵가게나 가야 살 수 있는 걸로 생각했다. 빵 만드는 걸 배운 적 없이 검색을 참고해 나름대로 만들어 왔기에, 과정이 복잡한 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베이글은 끓는 물에 데치는 과정이 있었다. 역시 좀 부담되는 과정이긴 하지만 도전해 볼 마음이 생겼다. 올해 유난히 풍성했던 블루베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블루베리 베이글 만든 과정>

1. 미지근한 물 1컵(약 200ml)에 드라이 이스트, 소금, 설탕 각각 반 작은술, 올리브유 2큰술, 밀가루 1컵을 넣어 반죽했다. 1시간 뒤 1차 발효가 충분히 되었다.
2. 밀가루 1컵(200g 정도)을 더 넣어 2차 발효를 한다. 1차 발효 때부터 밀가루 총 400g 이 들어 갔다. 뚜껑 있는 편수 냄비에 반죽을 하면 편리하다.  
3. 반죽을 6 등분해 밀대로 밀어 돌돌 만 뒤 베이글 모양을 만들었다.  
 4. 베이킹소다와 설탕 반 작은 술을 물에 넣어 끓인 뒤 반죽을 체에 받쳐 앞뒤 10초 가량씩 데쳐낸다. 5. 오븐에 넣어 굽는다. 190도에 18분.
완성된 블루베리 베이글.


  2차 발효를 마친 반죽을 밀대로 밀어 베이글 모양을 만들 때부터는 제법 몰입이 되었다. 베이킹의 즐거움은 반죽에서 오는 건가 싶다. 흙반죽으로 소꿉놀이할 때의 어린 시절처럼 마음이 순하고 말랑해지는 것이다. 물에 데치는 과정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았고, 오븐에 넣고 기다릴 때는 설렘이 일었다. 처음 만드는 베이글. 곧 그 결과물 나타날 참이었다. 역시 덥다고 가만히 늘어져 있는 것보단 몸을 움직이는 게  한결 나은 상태가 된다.  


  완성된 베이글은 기대 이상 근사했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쫀쫀한 바로 그 베이글의 질감. 어쩌다 만든 베이글이 정말 베이글다운 것에 감동! 하기엔  너무 더웠다. 베이글처럼 흠씬 데쳐진 몸에 얼른 물을 끼얹고 싶었다. 동생을 불러 베이글 두 개를 건넸다. 빵에 채소를 끼어먹든 발라먹든 알아서 하라. 이글을 제대로 즐긴 건 다음날 아침이다. 텃밭에서 막 딴 토마토와 바질, 가지, 고추로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다.

  "어제 준 베이글은 다 먹었어?"

  샌드위치를 먹기 좋게 반으로 잘라 접시에 놓으며 동생에게 물었다.

   "오, 맛있었어."

  샌드위치에 눈길을 꽂은 동생 대답했다. 뭘 어떻게 해서 맛있게 먹었는지 상세한 설명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분명 마요네즈 범벅을 해서 먹었겠지. 빈말을 하지 않는 아이니 맛있게 먹은 건 사실일 것이다.

  "자, 먹자."

  웬만하면 각자 먹는 걸 좋아하지만 모처럼 아침함께 먹기로 했다. 자 즐기기엔  베이글 샌드위치가 근사했다.



맛있는 것 드시고 모두 무더위 잘 이겨내시길...^^


< 베이글 샌드위치 만든 과정은 사진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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