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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Aug 11. 2021

병아리콩 콩국수

마타리 달맞이꽃 해바라기

  입추 지났다고 어느새 밤공기가 달라졌다. 가을을 알리는 벌레 소리도 들려온다. 밖을 향해 울리기보단 안으로 여며소리. 아침 산책길엔 촛대처럼 생긴 노란 마타리가 꼿꼿이 피어 있다. 가 커서 풀숲 위로 쑥 솟아 오른 마타리. 이름이 얼핏 러시아 쪽 같지만 순우리말이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에 등장하는 꽃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온 소녀가 시골 소년에게 묻는다. " 저 양산 같이 생긴 꽃은 뭐야?" 내 눈엔 촛대처럼 보이는 것이 원로 소설가에겐 양산으로 보였구나 싶다.

아침 산책길 마타리
풀숲 달맞이꽃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마타리가 피면 가을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 책에서 읽은 것일까. 누가 알려준 것처럼 기억에 저장되어 있다. 길가 풀숲마타리만큼이나 키 큰 달맞이 꽃도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슬에 젖은, 나비 날개 같은 노란 꽃잎들. 산책에서 돌아올 무렵엔 후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늘 들고 다니 우산을 폈다. 혹시 모를 야생 동물에 대한 방어나 거미줄을 걷기 위한 용도, 때로 역할로 쓰인다. 비는 숨이라도 찬 듯 후둑후둑 불규칙하게 지나가다 멎었다. 마당 입구에 이르렀을 땐 볕이 다. 일렬로 선 해바라기가 다가오는 햇살을 향해 노란 얼굴을 들고 있었다.

마당 입구 해바라기

  낮엔 여전히 덥다. 입추 지나고 제는 말복. 가을에 들어선 뒤 마지막 더위가 온다. 섞여 드는 계절 적절히 명칭을 정해 놓은 옛사람들. 얼마나 오래전부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계절을 살다 갔을까. 삼스러울 것도 없이 따금 드는 상념이다. 까마득 오랜 세월 이어져오는 그 삶들을 떠올려보았자 부질없다. 군들 수월했을까. 낟알 한 알갱이도 쉽게 차오르지 못한다.


  복인 어제 구가 보내 준 초록 사과가 우체국 택배로 도착했다.

  "여름이 가기 전 맛보지 않으면 섭섭하잖아."

  전화 통화에서 친구가 말했다. 좋아하는 과일을 기억해 주는 그 마음. 오랜만의 통화인데 길게 하진 못했다. 코로나가 친구와 내게 끼친 영향 중 하나가 전화 통화다. 일주일에 한 번 가량 오가던 것이 이젠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뜸해졌다. 단출한 내 생활이야 변할 게 없지만, 남편과 아이 둘이 있는 친구는 긋하게 전화할 여유를 잃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그렇지만, 집에서만 식사를 하게 되면서 밥 차리는 걸로 하루가 간다고 다.  

  "요즘 뭐 해 먹어?"

  전화를 할 때면 물어온다. 머릿속에 늘 식사 메뉴가 맴돈다는 친구.  사이 대화도 로나의 영향을 받았다. 전에는 일상보다는 마음과 그 언저리 풍경 같은 것이 주된 이야깃거리였다. 나이 들어가며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나 인상에 남은 책의 한 구절,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것들.  

  "요즘 자주 먹는 건 콩국수야. 하루에 한 끼는 먹고 있나 봐."

  내가 대답했다. 콩을 한 냄비 가득 삶으면 며칠 동안 콩국수를 먹을 수 있다.  

  "아, 콩국수. 그래 그거 맛있겠다. 메주콩으로 만들지?"

  친구가 물었다.

  "아니 병아리콩. 병아리콩은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되니까 편해. 아몬드나 호두 같은 거 있으면 같이 불려서 갈고."

  콩국수 만드는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 통화를 끝냈다. 친구네는 아마 오늘 콩국수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저녁에 콩을 씻어 아침에 삶으라 일러두었다. 병아리콩과 생아몬드 둘 다 반나절 이상 불려야 한다. 밤에 준비해 놓으면 아침에 충분히 불어 있고, 선선한 아침이 콩을 삶기에도 좋다. 름이 가기 전, 나도 한 번 더 콩을 삶을까 싶다.



<병아리콩 콩국수 만들기>

  병아리콩은 불리는 게 중요합니다. 반나절 이상 불려야 해서, 저는 보통 저녁에 콩을 씻어 물 두 배 정도 부어 담가 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삶습니다. 삶을 때는 순식간 넘치니 지켜봐야 합니다. 10분 정도면 물이 끓는데, 그때 거품 걷어내고 뚜껑 연 채로 약불로 줄여 10분 정도 더 삶습니다. 불을 끌 때 뚜껑을 닫아 둡니다. 식을 때까지 그냥 두면 남은 열로 콩이 푹 익습니다. 콩국물 만들 때 1인분은 물 1컵에 콩 1컵, 아몬드 10 알, 소금 1작은술 정도입니다. *아몬드도 미리 불려두어야 껍질이 잘 까집니다. 손으로 벗기면  벗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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