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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Aug 24. 2021

비 오는 산골, 채소 부침개

가지 고추 깻잎 토마토

  이틀 전 밤부터 시작된 비가 속 내리 있다. 12호 태풍 오마이스 영향이다. 풍은 오늘 아침 쪽 내륙을 지나갔다는데, 비는 가을장마 형태로 이어지겠다 한다. 곳 산골은 쪽 해안에서  곳이라  바람 그다지 강하지는 않다. 오마이스는 어슬렁거리다란 뜻이라지.  꽤 뿌렸다는데 큰 피해는 없다니 다행이다.

  

  아침에 숲 고양이 밥 주 다녀오는데 키 큰 달맞이 꽃들이 길바닥에 죄 쓰러져 누워 있었다. 노란 꽃송이들을 피해 징검다리 건너듯 발을 디뎠다. 돌아온 뒤 보송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나니 한가해졌다. 한 권 골라 빗소리 들으며 책장을 넘겼다. 오랜만의 종이책. 빗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자아내는 적함만이었다. 무엇을 읽을까, 책을 고르며 고심 것이 멋쩍도록 용은 상관없어졌다. 글자를 천천히 따라가는 호흡과 끊임없는 빗소리.  자체가 오히려 책스러웠다. 가을을 읽는 느낌.

  

  점심때가 되기 전 동생이 놀러 왔다.

  “여름 빗소리는 쏴아 파도 같더니, 가을 빗소리는 어째 추적추적하지 않소.”

  동생님 꽤나 심심한 모양이었다.

  “가을이니 추적추적 하지 않겠소.”

  책을 덮으며 어슬렁 말을 받았다.

  “그리 요란한 비는 아니니 잠시 마당이나 거닐다 옵시다.”

  빗소리 들으며 개운한 집안에서 그런대로 만족스럽건만. 키지 않는 눈치를 보였더니 그만 두오, 휭 가버렸다. 잠시 뒤 창 너머 마당에 동생 모습이 보였다. 책은 더 이상 읽히지 않았고, 지켜보다 우산을 들고 마당에 나섰다. 사방 둘러진 숲에 내리는 빗소리.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동생은 그새 고양이 식당에 들어가 고양이들 점심을 챙겨주고 있었다. 기껏 나갔더니 고양이들 밥 먹이느라 아랑곳도 않는 동생. 혼자 마당 아래 비탈길을 걸어 우체통 있는 울타리까지 다녀오고 마당 두어 바퀴 돌았다. 우산 들지 않은 손에 어느새 비에 젖은 깻잎이 들려 있었다. 귀찮게시리 손이 저 혼자 주섬주섬 깻잎을 따버렸다. 비 올 때는 작물을 따지 않는 게 좋은데, 생각하면서도 연이어 가지에 고추까지 땄다. 비 오기 전 가지며 고추를 잔뜩 따서 새로 딸 것이 많지도 않았다. 토마토 두 개, 가지 네댓 개, 고추와 깻잎 두어 줌. 통일감도 없이 얼마 되지 않는 이것들로 무얼 하나 싶은데, 어쨌든 수확한 것이니 손질해 담아 들고 왔다. 씻는 동안 궁리를 해보았다. 한꺼번에 모두 처리할 방법. 일단 모두 채를 썰자. 소금을 살살 뿌려 숨이 죽으면, 그렇지 밀가루를 푸는 거야. 부침개 당첨. 마침 비 오는 날 아닌가. 동생이 또 건너왔다.

  "뭘 만들려 하오?"

  계속 놀자는 가락이다.

  "비 오는 날은 부침개 아니오."

   대꾸했다.

  "크, 좋은 결단 하셨소."

  웃기고 있다.


   <비 오는 날 점심, 부침개 만들기> 

  가지, 고추, 깻잎 모두 채 썰어 편수 냄비에 담은 후 맛소금을 뿌려놓다. 토마토는 어쩔까 하다 에라 모르겠다, 함께 넣다. 갈라지고 비 맞은 것이라 익혀 먹는 게 안심된다. 소금도 용도에 따라 잘 써야 한다는데 나는 단순히 천일염과 맛소금을 쓴다. 국이나 찌개, 절임엔 천일염, 구이를 할 땐 맛소금. 편수 냄비는 똑같이 생긴 것이 세 개나 된다. 세 쌍둥이 냄비라 부르고 있다. 지름 20센티로 아담한 크기다. 편수라 한 손에 잡기 쉽고 무겁지 않아 손목에 무리가 없다. 뚜껑이 있어 채소를 절여놓을 때 좋고, 밀가루 묻힐 때도 좋다. 뚜껑 닫고 흔들어 놓으면 알맞게 절여지고 섞인다. 냄비밥도 하고 빵 반죽을 숙성시킬 때도 편리하다. 보관할 땐 같은 크기라 겹쳐서 쌓아두면 된다.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고 있는 걸까. 세 쌍둥이 냄비에 꽤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삼십 분쯤 채소를 절이는 동안 두어 번 냄비를 흔들어 다. 이내 숨이 죽어 만만해진 채소들. 국물이 제법 나와 따로 물을 넣지 않아도 다. 밀가루 한 컵 정도 넣어 섞은 뒤 프라이팬에 부다. 가지가 많이 들어가 두툼다. 모양새 별로다. 가지는 역시 제 모양대로 썰어 윤기 나고 통하게 구워야 기품 있어 보인다. 그래도 고추, 깻잎과 어우러져 기름에 구워지는 냄새는 근사다. 창밖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부엌엔 자작자작 전 구워지는 소리.

  


  

우산 쓰고 따온 텃밭 채소
모두 채썰어 소금에 절인 뒤 밀가루를 넣는다
두툼한 모둠채소전. 토마토 들어간 게 의외로 맛있었다.
대추와 꿀마늘도 함께...
창 밖에서 전 굽는 거 구경하는 마당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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