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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숲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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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Mar 04. 2022

예고 없는 이웃의 방문

코로나 19

  마당에 오토바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 창으로 내다보니 시꺼먼 복장에 바람막이 두건으로 얼굴을 덮어쓴 사람이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무슨 조사원이나 검침원인가 했다. 그런 일 말고 산골 마당에 이륜차가 나타나는 일은 드물다. 아니 사람 방문 자체가 드문 일이다. 괜히 숨죽인 채 창에서 물러나 보고 있자니 그 사람이 집에 다가와 테라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쾅쾅. 조용하던 마당에서 들려오는 거친 소리. 현관을 나가 테라스 문에 다가가는 사이에도 얄팍한 나무문은 계속 두드려지고 있었다. 베토벤의 운명처럼 쾅쾅쾅 쾅.  "누구세요?"  묻는 내게 아는 사람이요.” 하는 목소리가 어딘지 귀에 익었다.  문을 열자 바람막이 두건을 끌어내린 맨 얼굴이 웃고 있었다. , 아는 사람이었다. 지하수 시설에 이상이 생길 때면 달려와 도와주는 이웃 동네 금강 아저씨.  

  "어쩐 일이세요?"   

  긴장은 풀렸지만 뒷걸음질이 쳐졌다.  

  "궁금해서 와 봤어요. 한참 못 봐서."   

  하하 웃으며 아저씨가 선뜻 테라스에 들어와선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았다. 나는 당황하여 집안으로 들어와 마스크를 찾아 쓰고 다시 나갔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과 마주하는 것이 이렇게 두려운 것이 되었다니. 시에선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지만 산골 마을에선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드물었다. 마스크를 쓰시라, 요구하기 어려워서 좀 멀찍이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달 전인가 기나긴 한파에 지하수 계량기가 동파되었을 때도 달려와 도움을 준 고마운 아저씨. 선뜻 들어서도 무방할 사이이긴 했다. 량기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라 반갑지 않을 리도 없건만, 마음이 안정 되질 않았다. 사실 아저씨 때문이 아니었다. 아저씨가 도착하기 조금 전 딸과 통화를 했다.     


   "엄마 놀라지 말고 들어."  

   딸의 첫마디는 그랬다. 

  "일단 난 괜찮아. 그러니까 놀라지 마." 

  연이어 딸이 말했다. 하지만 놀라지 말라는 자식의 말만큼 놀라운 말이 어디 있을까.

  "너 코로나 걸렸구나!"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갔다. 무슨 사고가 나서 다쳤나 싶기도 했지만, 약간 잠긴 듯한 딸 목소리를 미루어 사고보다는 바이러스 확진이구나 싶었다.  

  ". 어제 PCR 검사받았는데 양성이라고 나왔어."  

  순간 서늘한 것이 뒷목에 닿은 느낌이었다. 그렇잖아도 하루 확진자 20만 명에 달하는 뉴스를 보고 부쩍 걱정이 되더니, 결국엔 우리에게도 닥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상태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거야? 도대체 어디서 옮은 거야?"  

  한꺼번에 물음이 나갔다.  

  "흥분하지 마. 상황 끝났어. 이제 회복되는 중이니까."  

  차분하게 딸이 말했다. 목이 아프기 시작한 건 일주일 전이었다고 했다. 그날 자가 키트로 검사한 결과는 음성. 다음날 동네 의원에 가서 신속항원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또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심한 근육통과 목 아픔이 그냥 감기와는 달랐다고 했다. 3일째 다시 동네 의원에서 검사하여 결국 양성이 나왔다는 것. 그 뒤 보건소 PCR 검사를 하여 다음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증상은 아주 심한 몸살을 앓는 것 같았고 목안이 화끈거렸다고. 나흘 정도는 꽤 힘들었는데 그 뒤로는 차츰 나아져 이젠 견딜만하다는 것. 걱정할까 봐 오롯이 혼자 앓으며 내게 알리지도 않았다니.      


  "하수는 그 뒤로 문제없어요?"  

  잡한 내 심경을 알리 없는 금강 아저씨 대화거리를 꺼냈다.

  ", ."  

  나는 대답했다.

  "내가 괜히 왔나 봐요."  

  아저씨가 머쓱하게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나와 멀찍이 앉는 나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을 터였다.

  "머, 아니에요."  

  나는 짐짓 웃음기를 담 부인하다 할 수 없이 딸이 확진받은 사실을 알렸다. 그 말에 아저씨는 아이고 걱정되시겠네, 하면서도 표정은 밝아졌다.  

  젊어서 괜찮아요. 금방 나을 거예요. 내 아는 사람도 몇이나 걸렸는데 그냥 독감 수준이라던데.”   

  아저씨 말에도 내 울적함은 풀리지 않았다. 혼자 딘 딸이 마음 아팠고, 다시 덧나는 건 아닐지, 후유증은 과연 없을지 걱정되었다. 특이한 증상은 없냐고 딸에게 캐물었을 때 심장 쪽과 왼쪽 팔에 저릿하고 차가운 증세가 있다고 한 것이 가장 마음 쓰였다.  동생네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안녕하세요?”  마스크를 쓴 동생이 나타나 아저씨께 인사를 했다. 그리고 대뜸 마스크 왜 안 쓰셨, 없으면 하나 갖다 드리겠다,  말했다. 자칫 기분 상할 수도 있는데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려 마스크를 꺼냈다.

  "아 내  쓸게요. 동생은 참 애기 같어. 그래서 귀엽다니까."

   동생의 직설 화법에 저씨는 오히려 친숙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교성이라곤 도통 없는 동생인데 금강 아저씨와는 허물없이 니 희한한 일이다. 쨌든 잘 되었다 싶어 나는  틈에 집안으로 들어와 간단 먹을 것을 준비했다. 쟁반을 들고 나가 보니 그새 동생은 소기를 내와 아저씨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직소기는 단단한 물체를 절단할 수 있는 기계인데 테라스 벽체인 폴리카보네이트를 잘라낼 수 있다고 했다. 마당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테라스에 드나들 수 있도록 캣 도어를 만들 생각에 며칠 전 동생이 창고에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오래되어 녹이 쓴 것을 나사를 풀어 해체한 뒤, 기름을 쳐서 닦아내고 다시 조립하네 어쩌네 하더니 칼날 체가 안 된다고 투덜거렸었다. 그걸 아저씨에게 어떻게 해보라고 들이민 모양이었다. 아저씨도 잘 안 되는지  둘이 번갈아 가며 골몰하여 기계에 드라이버를 쑤셔 넣는 꼴을 보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먹을 것 좀 만들어 보낼까?"

  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전에는 자가격리 중 식품과 의료품을 지급했다지만 지금은 그런 관리 체계가 모두 중단된 걸로 알고 있다. 다만 재택 전담반이라는 곳에서 증상에 따라 긴급 상황 시 연락할 수 있는 번호전해왔다고 했다. 약은 동네 의원에서 감기약 처방받은 것과 집에 구비해 둔 약을 대충 짐작으로 선택해 먹고 있다고 했다.

  "먹을 거 충분하니까 정 마셔."

 딸이 카톡으로 답변을 하더니 이내 전화를 걸어왔다. 괜히 택배 부친다고 외출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알았어. 꼼짝 고 집에 있을게."

  딸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통화를 마쳤다. 오히려 딸은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필요한 건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이웃과도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라고 거듭 다짐을 두기에 찔끔했다. 이웃 사람이 지금 와 있는 걸.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갈게요."

  그 이웃이 밖에서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얼른 나가보았다. 아저씨는 느새 마당에 나가 검은 두건을 다시 얼굴에 쓰고 헬을 착용하고 있었다. 눈만 내놓은 아저씨가 오토바이에 부릉 시동을 걸기에 나는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코로나 끝나면 맘 편히 놀러 오세요. 맛있는 밥 해드릴 게요."


   "다음엔 꼭 미리 연락하고 오시라고 했어. 뭐든 예고 없이 들이닥치면 곤란하다고."

  오토바이가 떠나고 집안에 들어왔을 때 동생이  말했다.

  "넌 참 존경스러워."

기운 빠진 나는 긴 말을 생략했다.

  "제대로 알려야지 그럼 어떡해. 그래야 관계가 오래가지."

  예고 없이 오는 것이 어디 이웃뿐일까. 세상 모든 게 예고 없이 닥치는 걸. 팬데믹도, 전쟁도.  울적함은 단지 딸의 병증에서만 기인한 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는 참상은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속 깊은 아픔이 되고 있다. 기나긴 전쟁 중단 상태의 우리 한반도엔 아픔을 넘어 위기까지 감돈다. 오늘 사전투표로 시작된 대선 또한 전쟁과 다름없다. 이번 대선이 무엇을 몰고 올지, 누구든 두렵지 않을까. 복이란 '시 고통이 유예상태'일 뿐이라는 쇼펜하우어 식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우리의 화란 '잠시 전쟁이 멈춘 상태'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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