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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숲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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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Mar 12. 2022

갈 수 없는 길

   세상이 바뀌고도 세상은 여전하다. 기온은 올라 불현듯 봄날이 되어버렸다. 동생과 자주 걷고 있다. 아침마다 아랫동네까지 한 시간 가량 다녀오는 산책은 늘 하던 것이고, 이젠 오후에도 좀 먼 곳까지 걸어갔다 온다. 오후 산책은 주로 지대가 높은 고갯길 도로를 향한다. 두어 시간 걷는 동안 차량을 채 열 대도 만나지 않는 길이다. 고갯마루에 다다르면 양쪽으로 갈라져 각각 다른 마을로 이어진다. 두 길 중 달빛마을로 가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대체로 우리의 선택인데, 때로 급경사로 구불구불 가파르게 내려가 국도변에 닿는 맞은편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어제는 국도변에 이르는 그 가파른 길을 걸었다. 구불구불 도로를 한참 내려가다 멈칫 걸음을 췄다.  아래 그늘진 도로 가득 얼음이 덮여 있었다. 영상 10도가 넘는 기후에 얼음이 남아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쩐지 그곳까지 가는 동안 만난 차량이 한 대도 없었던 것에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고갯길 입구에 통행금지 팻말은 없었다. 급경사를 달려 내려오다 얼음길 앞에서 돌렸을, 차량의 바퀴 자국이 여러 개 보였다. 넓은 산기슭 쪽으로 차를 돌릴 만한 여유가 있어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아지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앞에서 동생이 말했다.  

   "그러게."  

  나도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건 때로 안정을 주기도 한다. 더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얼음길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내처 걸어 국도를 지나 좀 더 멀리 가 볼 것인가, 고개를 내려가면 바로 되돌아올 것인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음길 앞에 주저앉아 오래 걸어온 열기를 식힌 뒤 우리는 돌아섰다. 다시 구불구불 길을 오르던 중 고갯길을 내려오는 차량을 한 대 만났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나는 굳이 손 신호를 보냈다. '갈 수 없어요, 돌아서 가세요.' 두 팔을 교차해 엑스자를 지어 보였다. 운전자가 속도를 줄여 창을 열었다. 동네 사람은 아니었지만 인근 주민으로 여겨지는 중년 남자였다.   

  "못 가요?"  

  운전자가 물었다.  

  ", 저 아래가 얼음으로 덮였어요."  

  운전자는 그래도 확인이 필요한 지 천천히 운전해 비탈을 내려갔다. 우리는 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었다.   

  "갈 수 있을까?"  

  동생이 말했다.   

 "괜한 모험을 왜 하겠어. 돌아서 올 거야."  

 내가 말했다. 잠시 뒤 다시 돌아오는 차 소리가 들렸다. 우리 곁을 지나가며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고 웃어 보였다.    

  "다른 길로 가야겠어요."



   

멀리 산능선이 아름다운 고갯길


굽이굽이 이어진 내리막길


포근한 기후에도 비탈길이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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