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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숲의 시간

봄눈

by 구름나무


그럴 줄 알았다. 산골의 겨울이 이대로 그냥 가버릴 리가 있나. 지난 이틀, 봄눈이 풍성하게 내릴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겨울과 작별하는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계절을 보내고 맞는 것만으로도 생은 넘치는 연정이 아닌가. 한 번은 돌아봐 주겠지, 하는 절절함도 없이 어찌 연정이라 할까. 지난주 내내 따스하게 풀어지던 봄 햇살이 어찌나 능청스러운지, 나는 그예 겨울이 가버린 줄만 알았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자못 쓸쓸해지기도 했. 겨울에 대한 미련보다는 봄을 맞이하는 자세였다. 그런 무채색 쓸쓸함에서 홀연히 색을 피워낼 때에야 봄꽃은 더욱 선연 것이니.


마당 옆 가파른 벼랑 늘 그 자리, 현기증처럼 어른어른 연노랑 생강나무 꽃을 보았던 날, 그렇게 밤새 쓸쓸한 봄눈이 내렸다. 소복소복 쌓이고도 쉽게 그치지 못하여 이틀을 더 차곡차곡 내려 주었다. 세상은 잠시 겨울이 꾸는 가장 아름다운 꿈으로 다시 돌아갔다. 꿈속에서 꾸는 꿈처럼 눈 속으로 내리는 눈은 순간과 순간이 되어, 어느 결 흐름만 남게 되었던가.


문이 더 이상 열리지 않을 만큼 눈이 쌓였다
마당 복숭아나무는 눈의 여왕처럼...

봄눈 오는 아침, 동생은 테라스에서 마당 고양이들 밥을 주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나도 스마트 폰을 들고나가 눈 내리는 풍경을 몇 장 찍었다.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자 하지만 순간은 끊임없이 내리는 눈처럼 끊임없이 사라져 가는 것이라, 찰칵찰칵 순간의 안타까움을 덜었다. 안타까움도 아름다움의 한 종류라면, 여릿여릿 피어 홀연히 가버리는 봄의 꽃잎들도 마찬가지. 눈은 꽃처럼 꽃은 눈처럼 흘러, 그렇게 봄눈은 꽃들의 환영과 더불어 내다.


봄눈 오는 날 아침 식사 중인 마당 고양이 가족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눈 구경...

날은 춥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하는 아침 커피를 테라스에서 마시기로 했다. 바깥문을 열어 놓고 휘날리는 눈을 보며 김이 오르는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아름답구나. 꿈같구나."

중얼거렸더니

"럼 꿈속을 걸어보자고."

동생이 말했다.


커피를 마신 뒤 하얀 눈밭에 발을 푹푹 빠뜨리며 숲고양이 밥자리까지 다녀왔다. 눈은 여전히 천지에 휘날리고 동생은 노란 비옷을 입고 앞서 걸었다. 무겁게 처진 나뭇가지에서 이따금 툭툭 이 쏟아졌다. 저만치 가는 동생을 보며, 가운 눈꽃을 피우고서야 따스한 제 색을 길어 올리는 봄의 꽃들을 생각했다.


벼랑의 생강나무 꽃 그 여린 노란빛.


의도한 건 아닌데 동생은 봄처럼...


나는 겨울처럼 차리고 나섰다는 걸...ㅎ


다시 함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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