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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Dec 21. 2021

팥죽 한 그릇

  어느 깊은 산골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긴긴밤 동지가 내일이구나. 할머니는 중얼대며 팥을 한 바가지 씻어 물에 불려놓았답니다. 하룻밤 불린 팥을 다음날 새벽, 솥에 삶고 있을 때였어요. 버스럭,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어요. 해가 뜨기 전이라 밖은 컴컴했어요. 버스럭, 다시 소리가 들려오자 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였지요. 며칠 째 새벽마다 들려오는 소리였어요. 덩치가 큰 놈이구먼. 할머니는 생각했죠. 나가볼까도 싶었지만 조금 무서웠어요. 날이 밝은 뒤 문을 열어보면 아무 흔적이 없었고요. 하지만 오늘은 다를 거예요. 어제 오후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을 테니까요. 날이 밝아 문을 열어보니 눈 위에 떡갈나무 잎처럼 생긴 큼직한 발자국이 보였어요.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 발자국이었어요. 발자국이 멈춘 문 앞엔 쭈그려 앉아 있던 흔적으로 눈이 흩어져 있었고요. 그날 밤 할머니는 팥죽을 끓여 커다란 사발에 담아 문 밖에 두었답니다. 다음 날 새벽, 버스럭 버스럭 또 소리가 들려왔지요. 할머니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어요. 츠룹츠룹 급하게 팥죽 먹는 소리가 들려왔. 잠시 뒤 쓱쓱 그릇 핥는 소리도 들고요. 저런 배가 많이 고팠구먼. 할머니는 생각했어요. 날이 밝아 문을 열어보니 그릇이 말끔히 비어 있었.        


  아침에 동생에게 팥죽을 담아주며 려준 이야기.  전래동화 '팥죽할멈과 호랑이'가 생각나 꺼낸 것인데 이야기 전개는 전혀 다르다. 동화 속 호랑이는 팥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고 죽임을 당한다. 동화라는 게 은근히 잔인하다.  내일은 일 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지. 며칠 전부터 팥을 삶아놓고 아침마다 따끈한 팥죽 한 컵씩 먹고 있다. 동생은 올해 처음 먹는 팥죽이다. 나는 팥을 좋아해 가끔 팥죽을 끓여 먹는데 동생은 동지에나 한 번 먹고 만다. 팥을 먹고 나면 속이 편치 않다고 하니 더 권할 것은 못되었. 동생 팥죽은 소화 잘 되는 삶은 밤을 올려주고 깍두기도 곁들여 주었다. 나는 김치 없이 오롯이 팥죽만 먹는 걸 좋아한다.   


  슨 이야기가 그리 싱거워. 그래서? 정체가 뭐였는데?” 

  이야기를 듣고 동생이 물었다.  

 모르지. 할머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 였든 팥죽 한 그릇 나눠 먹는 걸로 좋은 거지.”  

  내가 말했다.   

 세상일이 어디 그. 끝이 좋을 리 없어. 한 번 줬으니 이제 계속 올 거라고. 날마다 야 할 .”  

  동생이 팥죽을 떠먹으며 말했다. 역시 팥은 별로야, 하는 표정.  대꾸할 것 없이 나는 팥죽 한 그릇있게 비웠다. 돈 남 말 하시네. 속으론 말하고 있었다. 수년째 그렇게 저가 거둬 먹이는 냥님들이 어디 한두 마린가. 두 번째 팥죽을 담아 오는데  계속 떠들고 는 동생.  

 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어. 어? 잡아먹히는 거라고!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동생이다.


<간단 죽 끓이기>

1. 팥을 씻어 물에 반나절 이상 충분히 불립니다.

*불리는 동안 두어 번 물을 갈아 주면, 애벌 삶 팥물을 버리고 다시 끓이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습니다.

2. 압력밥솥에 팥두배 분량 물을 담아 익힙니다.

3. 은 팥을 냉장 보관두고 한 번 먹을 분량씩 꺼내 죽을 끓이면 좋습니다. *삶은 대로 끓여도 되고 취향에 따라 믹서에 거나, 으깨는 도구를 쓰면 됩니다. 물은 두 배 이상 넉넉히 잡고, 새알심, 쌀, 떡국떡, 단호박,  은 재료를 넣어 끓입니다. 죽이 완성되면 소금으로 조금 싱거운 듯 간을 맞춥니다.


* 지켜주는 동지 팥죽 든든하게 드시고 모두 건강하세요.

 

밤을 넣어 끓인 팥죽


떡국떡을 넣어 끓인 팥죽


팥 삶은 김에 팥빵도 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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