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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May 25. 2022

개망초 고추장 장아찌

   이틀 째 낮 기온이 30 넘어. 갑자기 기온이 오르거나 돌풍이 세상을 뒤집기도 하고, 느닷없는 천둥과 비바람이 몰려오기도 한다는, 소만을 지나 망종으로 가는 시기. 봄과 여름 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만은 만물이 자라서 세상을 가득 채운다는 절기다. 그 뜻이 무색하지 않게 밖은 날마다 그득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다는 말이 실감 난다. 마당 맞은편 숲도 그 아래 골짜기도 이제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대대로 물려받은 삶의 기술을 총동원해 영역을 확보하고 한껏 뻗어가기 시작한 온갖 생명들. 흙은 더욱 부드러워져 알갱이 틈새마다 공기와 습기를 품고, 바람도 쉴 틈 없이 위아래로 치달아 섞을 건 섞고 실어갈 건 실어간다. 모두 한 판 마당놀이를 하는 것도 같다. 판을 벌인 이도 구경꾼도 따로 없이 장단은 서서히 자진모리에서 휘모리로 달아오른다.

     

  주변이 너무나 열심이라 덩달아 무엇이든 하게 된다. 아침마다 텃밭 작물을 수확하고 물을 뿌린다. 비가 한참 오지 않아 물을 아주 오래도록 뿌려야 한다. 지하수를 틀어 감겨 있던 긴 호스를 풀며 마당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을 뿌리는 동안 태양이 한 뼘은 옮겨 간다. 때로 허공에도 물을 주고 싶어진다. 뜨거운 볕이 넘실대는 푸른 허공을 향해 물 호스를 대면 가득 흩어지는 하얀 물보라. 도대체 비님은 언제쯤 등장하시려나.


야광나무
토끼풀

     

  들판의 초목은 이 정도 가뭄은 꿋꿋이 견딘다. 야광나무도 고추나무도 향기로운 꽃을 가득 피더니, 이제 아까시와 찔레가 뒤를 잇고 있다. 집 주변 곳곳으로 영역을 넓힌 데이지도 쑥쑥 꽃대를 올린다. 을 알리는 꽃은 아무래도 개망초가 아닐까. 개망초 역시 한껏 키를 높다. 기껏 잎 내고 꽃 피울 준비 는데, 윗대를 똑똑 끊어가 버리는 손길에 난을 겪는다.


  "개망초 한 상자 보냈어요."

  개망초를 가득 꺾어 엄마께 택배로 부치고 전화를 했다.

  "뭘 또 보냈어?"

   아파트 근처 공원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는 엄마. 공원에 핀 갖가지 꽃들과 선선한 바람에 기분 좋다 하시는 목소리 개망초만큼이나 나긋했다.

  "개망초, 망대 나물이요."

  지난번엔 두릅을 가지 째 잘라 한 상자 보냈다. 두릅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데 오직 두릅 숙회로만 드신다. 망대는 아버지가 안 드시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나물이다. 그런데,  

  "개망초가 뭐지?"

  고 묻는 마. 아이고, 섭게 왜 그러실까. 들나물을 유난히 좋아해서 봄이면  꺾던 옛이야기를 리 자주 하셨으면서.  

  "아, 망대!"

  다행히 금방 돌아오셨다. 엄마와 통화한 이틀 뒤엔 언니가 전화를 했다. 마침 엄마네 갔다가 개망초를 얻어 왔다고,  

  "개망초 장아찌 어떻게 담그는 거야?"

  었다. 전에 내가 준 개망초 장아찌가 맛있었단다.

  "개망초를 깨끗이 씻어서, 소금 한 술 넣어 끓인 물에 살짝 데쳐내."

  설명을 시작했다.

  "얼마나 데쳐?"

  "한 번 뒤집어 바로 꺼낼 정도로 짧게, 한 5초 정도. 꺼낸 뒤엔 넓게 펼쳐 식혀."

  "찬물에 안 구고?"

  "응. 그래야 나중에 물러지지도 않고 아삭한 게 맛있어. 좀 식힌 뒤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 고추장 양념을 해. 고추장과 고춧가루, 설탕 모두 같은 분량씩. 매실액 같은 거 있음 설탕 양 줄이 넣으면 되고. 마지막에 생강 넣고 버무리면 ."

  "간단하네. 소금은 안 넣니?"

  언니가 말했다.

  "소금물에 데친 거고, 또 고추장에 소금기 많으니까."

 "그래 덜 짠 게 좋아. 그럼 보관은, 냉장고에 넣으면 되니?"

  "응. 냉장 보관해 두고 먹으면 돼.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들지만 바로 먹어도 괜찮아."


♤개망초 고추장 장아찌 만드는 과정


개망초를 씻어 데친 뒤 자른다
효소나 설탕, 고춧가루, 고추장을 같은 비율로 넣는다
생강가루 혹은 생강즙을 넣고 골고루 버무린다
그릇에 눌러 담아 냉장 해 두고 먹는다.  장기간 보관 가능.


  며칠 뒤 개망초를 한 번 더 끊어왔다. 그새 꽃망울 맺은 것들도 있었다. 당 비탈길 옆 갈대숲이 동생과 내가 개망초를 하는 곳이다. 그동안 오며 가며 조금씩 은 건 나물밥도 해 먹고 김밥에도 넣어 먹었다. 성큼 자란 망대는 저장용으로 좋다. 고추장 듬뿍 넣어 장아찌로도 담그지만 묵나물로 말리기도 한다. 무성한 갈대에 묻혀 똑똑 망대를 끊고 있으면 사방에 살아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진다. 곁에 무엇인가 슬그머니 지켜보고 있는 기분 든다. 엇이 지켜보는 걸까. 삶의 의미 같은 건 소용없다. 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거대한 무대에서 먹고 먹히고, 다시 먹히고 먹는 역할. 쩌면 생을 슬퍼하는 개망초도 있을 것이다.

  "좀 슬프지 않니."

  곁에서 함께 망대 꺾는 동생에게 말해본다.

  "거기까진 가지 말고."

 동생이 말한다. 래. 거기까지 가진 말자.




마당 아래 갈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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