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는 어쩔 뻔 했어
영화나 책에서 흥미로운 음식이 나오면 그 이미지가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 개암나무 열매 깨무는 소리에 도깨비가 놀라 도망간 동화를 읽고는 개암나무 열매란 게 무척 궁금했다. 도깨비가 놀랄 정도로 굉장한 소리를 내는 열매인데 먹을 수 있는 것.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가 커서 그게 바로 헤이즐넛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의 반가움이라니. 껍질 채 파는 건 사보지 않아 그 굉장한 소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헤이즐넛 먹을 때면 도깨비가 놀라 달아나는 광경을 떠올리게 된다. 부럼 깨는 걸로 악귀나 역병을 막는 우리 전통에서 나온 이야기일 터였다. 딱 하고 깨문 헤이즐넛 하나로 도깨비방망이를 얻었다니 지금으로 치면 로또 정도일까. 그런 꿈같은 상상이 아니면 좀처럼 궁핍을 벗어나기 힘든 삶에서 나온 이야기다 싶으면 씁쓸하지만 그래도 역시 탐난다. 도깨비방망이!
예쁜 그림을 그리며 아름다운 정원을 가꾼 것으로 유명한 타샤 튜더 할머니는 삶 자체가 감동이었는데 거기서 또 내 마음에 들어온 열매가 나온다. 대추야자. 자태도 솜씨도 고운 타샤 할머니가 빵을 굽는데 대추야자와 견과류를 넣는다고 했다. 대추는 아는 거고 야자는 야자수로 알고 있는데 그 둘의 조합인 대추야자, 궁금증이 일었다. 타샤 할머니의 정감 있는 부엌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 이렇게 기억에 저장이 되었다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문득 발견해 놀라고 말았다. 아, 온라인 쇼핑몰엔 없는 게 없다. 헤이즐넛도 대추야자도 얼마든지 팔고 있다. 대추야자는 감탄스럽도록 달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바삭한 모래땅 어디서 그런 단맛을 끌어올린 것인지 경이로웠다. 아주 낯선 맛도 아닌 것이, 곶감과 팥앙금 중간 정도 질감과 맛을 지니고 있었다. 겨울이면 호떡을 가끔 만드는데 설탕 없이 대추야자와 계피, 호두를 넣어 구워도 달고 맛있었다.
책이 아닌 영화에서 만난 음식도 있다. 그중 우리 집 특별식으로 자리 잡은 게 크로크무슈다. 삼사 년 전인가 본 영화에서 나왔다. 이혼한 중년 부부가 나온다. 전남편이 무슨 일인가로 이따금 전처의 집을 드나든다. 어느 날 전처는 그가 좋아하는 크로크무슈를 굽고 있다. 그 냄새에 이끌린 남자가 식탁 근처를 서성이다 쫓겨났던가 먹었던가, 그랬다. 제목은 기억나지도 않고 내용도 희미하게 날아갔는데 크로크무슈만 남았다. ‘이혼은 했지만 크로크무슈는 먹고 싶어’가 흥미를 끈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름도 재미있었다. 무슈가 정말 남자를 뜻하는 프랑스 말의 그 무슈일까? 그랬다. 바싹한 아저씨. 직역을 하면 그렇다고 했다. 바싹한 아줌마도 있었다. 달걀프라이를 모자처럼 위에 얹고는 그렇게 불렀다. 크로크마담. 기억에 담을 것 없이 영화를 본 며칠 뒤 바로 만들어 보았다.
검색창을 통해 몇 군데 레시피를 읽어보니 대충 감이 왔다. 아하, 그냥 샌드위치에 치즈 얹어 굽는 거구나. 프랑스 광부들이 점심으로 싸간 샌드위치에서 유래한 것이라 했다. 차갑게 식은 샌드위치를 난로에 얹어 따끈하게 구워 먹었다니 우리 세대도 그런 추억이 있다. 어릴 때 겨울이면 학교 난로에 도시락을 얹어두어 김치볶음 같은 냄새가 교실에 나곤 했다. 우리 김치볶음 도시락도 다른 나라로 건너가면 특별식이 될 수 있겠다. 어쨌든 크로크무슈는 흔히 먹는 햄 치즈 샌드위치에 베샤멜소스라는 것만 추가할 뿐이었다. 베샤멜소스, 되직하게 끓인 크림스프라 생각하면 된다. 생략하고 싶을 땐 슬라이스 치즈로 대체해도 괜찮았다. 어디까지나 내가 하는 방식이다. 햄 치즈 대신 양파와 감자를 넣는 것도 그렇다. 새로운 요리를 만나면 이름만 빌려올 뿐, 그때그때 가능한 재료로 만들게 된다.
내가 만드는 크로크무슈를 소개한다.
1. 밀가루, 코코넛오일, 우유, 월계수잎으로 베샤멜소스를 만든다.
2. 양파를 다져 올리브유에 볶다가 삶은 감자를 으깨 감자 샐러드를 만든다. 가지나 당근, 버섯 같은 게 있다면 같이 채 썰어 볶은 뒤 합친다. 파슬리나 바질 같은 향채소도 있다면 잘라 넣는다.
3. 샌드위치 빵 양쪽에 베샤멜소스를 바르고 감자 샐러드로 속을 두툼하게 채운다.
4. 샌드위치 위에도 베샤멜소스를 바른 뒤 모차렐라 치즈를 가득 얹어 오븐에 굽는다.
그렇게 만든 첫 크로크무슈는 동생의 반응으로 보아 대성공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은 툭하면 만들어 먹었다. 집에 있는 재료에 따라 맛은 늘 조금씩 달라졌다.
“와, 이번 게 더 맛있어!”
만들 때마다 대체로 동생의 반응은 그랬다. 그 뒤로 어쩌다 가족이나 지인이 온다고 하면 일단 크로크무슈를 준비해 놓게 되었다. 다른 음식보다 손도 덜 가고 재료는 간단한데 차려놓으면 그럴듯한 것이다. 작년엔 손님도 제법 와서 꽤 여러 번 만들었다. 올해는 봄철에 한 번인가 만들어 먹은 뒤로 만든 기억이 없다. 방문을 자제해야 하는 세상 분위기도 그렇고 우리 기분도 그랬다. 크로크무슈를 먹을 땐 파리의 한 모퉁이 카페라도 간 것처럼 기분이 나야 하는데 여러모로 올해는 특별식을 즐길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어제는 오랜만에 크로크무슈를 굽게 되었다. 동생 생일이었다.
뭐든지 주문하라, 했더니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왔다.
"그럼 난 크로크무슈!"
예상했던 바였다. 모처럼 기분을 내어보기로 했다. 파리 한 모퉁이는 이제 됐고 읍내 카페 정도로는 기분을 내고 싶었다. 하루 전날, 길가에 나가 들꽃을 꺾어오고 색이 예쁜 낙엽도 주워왔다. 텃밭에선 마지막 남은 가지와 고추, 파슬리를 훑어 손질해 놓았다. 미역은 잠들기 전 물에 불려놓았다. 어제 아침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부산히 움직였다. 들깨와 감자를 갈아 넣은 뽀얀 미역국부터 끓여 반찬 몇 가지와 함께 동생 집에 배달을 했다. 낮엔 드디어 오랜만의 크로크무슈를 만들기 시작했다. 양파를 볶는 것만으로 잔치 집 냄새가 났다. 가지도 얇게 채 썰어 볶고 감자는 푹 익혀 으깼다. 곁들일 단호박도 굽고, 고추와 양파, 파슬리를 넣은 샐러드도 만들었다. 샌드위치를 완성해 모차렐라를 얹어 오븐에 굽고 있을 때 동생이 건너왔다.
“뭐가 이렇게 야단스럽나, 그래.”
식탁 위에 나뭇잎 흩어놓은 걸 보고 말하는 것이었다.
“왜? 가을 숲이 가장 아름다울 때잖아. 이 정도는 즐겨야지. 그리고 너 생일은 내게 정말 특별해. 너가 태어나주지 않았으면 나는 이 생에서 어쩔 뻔했어.”
심상히 말하다가 뭉클하고 말았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우주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만나 이렇듯 서로의 삶을 넘나들고 있는가. 동생 생일을 준비하며 아주 오래전 호주로 동생을 만나러 갔던 것이 생각났다. 열일곱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동안 나는 점점 슬퍼졌다.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었구나, 싶었던 것이다. 흔히 가는 외국이고 다들 그렇게 떨어져 사는 것이라 여겼다. 젊은 시절 한때 멀리서 넓은 시선으로 살아보라,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나 한없이 가도 도착하기 힘든 곳에 있다는 걸 온몸으로 새기고 있자니 가슴이 저렸다. 눈은 붓고 마음은 먹먹하여 도착한 시드니 국제공항. 출구 게이트가 변경되어 동생은 엉뚱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키 크고 피부색 낯선 사람들 속에 동양인 조그만 나는 묻혀서 도저히 동생이 찾아낼 것 같지 않았다. 고개를 쳐들고 변경되기 전의 게이트를 찾아 바삐 걸었다. 당장 동생을 만나지 못하면 영영 엇갈릴 것처럼 애가 탔다. 그러다 겹겹이 막아선 우람한 체구들 틈으로 휙 지나가는 베이지색 캡 모자를 보았다. 처음 본 모자임에도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소리쳤다. 아, 내 동생이다! 그 소리에 동생이 돌아보았다. 순식간 둘이 얼싸안고 눈물의 상봉을 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동생을 위해서 뭐든지 해 줄 수 있다는 마음이 든다. 얼마나 고마운가. 그 먼 곳에서 돌아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넌 좋겠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내가 있었잖아. 나는 너 없을 때 태어났어.”
접시에 샐러드를 담으며 나는 말했다.
“오! 그러네. 맞어. 언니는 나 없을 때 태어났네. 되게 슬펐겠다.”
동생은 생각지 못한 사실을 깨달은 양 말했다.
“그러게. 엄마가 그러는데 나 태어날 때 무슨 애기가 그리 서럽게 우는지 가슴이 다 아프더래. 너가 없어서 그랬나 봐.”
물론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뭔 애기가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 생각에 서러웠겠나. 그렇게 따지면 가장 서러운 건 우리 언니다. 언니는 나도 동생도 없는 세상에 혼자 툭 떨어졌다. 나는 어릴 때 언니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언니와는 두 살, 동생과는 다섯 살 터울이다. 어릴 때의 다섯 살 차이란 어른과 아이만큼 달라서 동생이 어느 정도 자라기까지는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 시절을 떠올리니 엄마 생각이 났다. 겨우 이십 대 초반부터 줄줄이 아이를 넷이나 낳고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언니도 나도 각자 그렇게 와서 만났지만 결국엔 헤어져야 하는 거잖아.”
동생이 침울하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오래 전의 엄마 생각을 하는 동안 동생은 언젠가는 닥칠 훗날의 이별을 떠올렸나 보았다. 모든 만남은 결국 이별로 마감된다. 그에 생각이 미치면 어쩔 수 없이 막막해지고 만다. 열일곱 시간을 날아간다 해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생일 기분을 내려다 오히려 이상한 감상에 빠져버렸다.
금강 아저씨에게 전화가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 나 여기 동네에 왔는데요, 잠깐 들러도 되나 해서요.”
지난번 전기선 연결 작업을 할 때 아무래도 시계를 두고 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때 당장 찾아보라고 전화를 하시지. 그 사이 비도 왔고 시계가 멀쩡할까요?”
나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이틀이나 고생하고 시계까지 잃어버렸다니 너무 미안했다.
“아, 방수라 괜찮아요. 나도 뒤늦게 생각났어요. 어제까진 딴 데 가 있어서 올 수도 없었고요.”
얼른 오시라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시계는 속상하지만 오시는 건 잘됐다 싶었다. 그렇잖아도 별식을 준비하며 금강 아저씨 생각이 났다. 초대하고 싶었는데 누굴 청하는 것도 폐가 되는 세상이라 생각만 하다 말았다.
접시를 하나 더 꺼내고 식탁을 재구성했다. 다른 음식도 넉넉했기에 크로크무슈 한 판으로 삼 인분을 차릴 수 있었다. 아저씨가 도착했다.
“이게 뭔 일이래! 내가 본 설악산이 왜 여기 와 얌전히 엎어져 있다요?”
나뭇잎 늘어놓은 식탁을 보고 아저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며칠 캠핑카 몰고 설악산이며 동해를 한 바퀴 돌아 어제야 돌아왔다고 했다. 설악의 바람과 동해의 파도가 선물처럼 도착했다.
“내가 요즘 유화를 시작했어요. 서울 삼각지 가서 물감, 이젤, 붓 잔뜩 장만해 놓고 사진 찍으러 설악엘 갔지요.”
식탁에 다가와 앉으며 아저씨가 말했다. 멋지게 삶을 누리는 이웃 아저씨 덕에 기분은 충분히 끌어올려졌다.
“내가 설악 가서 울산 바위 쳐다보며 생각했어. 접때 나보고 다 좋은데 말이 많다 했잖아요? 그게 참 고맙더라고. 아 누가 내게 그렇게 진심을 말해줘요. 하하, 근데 나 지금도 너무 말 많죠?”
연신 웃으며 아저씨가 말했다.
“어머, 아니에요. 재미있게 사시니 좋아 보인다는 뜻으로 한 얘기였을 텐데.”
나는 무안하여 말했다. 정작 아저씨께 그 말을 한 동생은 옆에 앉아 아랑곳없이 크로크무슈만 열심히 썰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난 정말 대단한 동생을 두었다. 다행히 아저씨는 무람없는 동생을 개의치 않고 그새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좀 이따가는 누가 마당 판석이 필요하다 해서 그걸 잘 아는 이와 연결해주러 가봐야 한다나 그랬다. 다녀오는 길엔 능선을 타겠다고 했다. 등산로가 아주 기막힌 곳이고 어쩌고, 인적도 드물고 잣송이가 굴러다니고, 그래서 그곳으로 등산을 간다는 것인지 차를 몰고 간다는 것인지, 말이 말에 겹쳐 첩첩산중으로 흘러갔다. 이야기 도중 여러 번 음식을 권했지만 막 점심을 들고 왔다는 아저씨는 미역국만 비워냈다. 말 상대를 하며 아저씨 몫의 접시를 가져다 도시락을 꾸렸다. 아름다운 능선에 앉아 이국적인 음식을 먹는 것도 아저씨에겐 어울릴 듯했다. 배웅하는 길엔 다 같이 나가 시계를 찾아보았다. 센서선 고정하는 작업을 할 때 호박밭 벽돌 위에 잠시 벗어 둔 것 같다는데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아 괜찮아요. 물건도 다 지 생각이 있어. 떠날 만해서 떠난 거여. 돌아오고 싶음 알아서 오겠지요. 내가 펜션 경매로 넘기고 이 년을 마음을 앓았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펜션이 나를 살리느라 떠났더라고. 만 평 부지였어요. 그거 유지하느라 아주 죽을힘을 다했어요. 아직까지 계속했으면 나 제대로 살아 있지도 못해. 지금은 다 놓고 설악산도 다녀오고 그림도 새로 배우고 얼마나 좋아요.”
아저씨가 가고 난 뒤 유리 주전자에 산국을 담아 촛불 켠 워머에 올렸다. 노란 산국이 뜨거운 물속에서 향기롭게 풀어지고 있었다.
“아, 아깝다. 내 크로크무슈. 하도 정신없이 먹어서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어.”
차를 마시며 동생이 말했다.
“그래도 아저씨 오셔서 좋았다 그치?”
“응. 한 열 사람 다녀간 것 같아. 말씀은 많아도 기분 좋은 아저씨야.”
“나가서 좀 걷고 올까?"
"아까 모리 밥 주러 다녀왔잖아."
동생은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리는 동생이 밥을 챙겨주는 숲 고양이다. 날마다 모리 밥자리까지 한 시간 정도 걷고 오는데, 그것이 우리의 하루 운동인 셈이었다.
"그거랑은 다르지. 바람은 불고, 물든 잎들은 허공을 날아가고. 집에만 있기 아깝잖아. 가자, 그럼 내일 또 크로크무슈 만들어 줄게."
실컷 먹이려고 넉넉히 만들어 둔 샌드위치가 이미 내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
“우와, 정말? 좋아 그럼.”
크로크무슈 한 판이면 말 잘 듣는, 가을 숲이 가장 아름다울 때 태어난 내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