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나무 Nov 12. 2020

  청소하는 여자 vs 밥상 차리는 여자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쓴 에세이 중에 떡을 잘 굽는 동생 이야기가 있다. 네모난 인절미를 가족들이 좋아하는 작은 크기로 잘라, 속은 말랑하고 겉은 살짝 눌어붙게 쇠망에서 구워낸다고 했다. 동생이 없으면 집안 누구도 인절미를 먹으려 하지 않을 정도라니 그 솜씨를 짐작할 수 있다. 떡 굽는 것만이 아닌, 다른 능력도 많아 작가인 언니가 힘들어하는 일을 손쉽게 처리해 준다고 했다. 복잡한 세금 계산이나 밀린 원고를 처리하는 순서에 대한 조언, 놓치기 싫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알림 역할을 하는가 하면, 볼륨 조절에도 탁월한 능력을 겸비했다는 것이다. 집에서 동생이 ‘떡 굽는 여자’로 불린다면 작가는 ‘홍차 끓이는 여자’라고 한다. 자매는 그 다른 능력을 교환하는 데 있어 진지한 약속까지 하여 언제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해줄 의무를 지녔다고 했다. 가령 한밤중에라도 떡이 먹고 싶거나 홍차가 마시고 싶으면 서로를 깨워도 된다, 그런 확실한 믿음이 서로에게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사정을 잘 아는 자매 사이란 대개 그런 모양이다. 산골에서 한 지붕 아래 각자 현관을 두고 사는 나와 동생도, 그와 비슷한 연대를 이루고 있다. 권리와 의무까지는 아니지만 오래도록 함께 살면서 자연스레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에쿠니 가오리 식 명칭을 붙이자면 동생은 ‘청소하는 여자’고, 나는 ‘밥상 차리는 여자’다. 청소에 관한 한 동생 솜씨는 감탄스럽다. 재빠른 손놀림과 신속한 판단으로 물건들 자리를 찾아주고 뒤처리도 더없이 깔끔하다. 가장 능력이 발휘되는 건 쓰레기를 처리할 때다. 내가 볼 땐 완벽한 수준으로 분리수거를 하고, 더 이상 알뜰할 수 없도록 쓰레기봉투를 채워 매듭을 묶는다. 그 일을 할 땐 거의 무아경이라 근처에 다가가기도 어렵다. 동생에게 너무 험한 일을 시킨다 싶어 내가 조금이라도 쓰레기 정리를 해볼라치면, 어떻게 알고는 쓰윽 나타나 나를 움찔하게 한다. “손대지 말라 했지!”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 그게 흐트러지는 꼴을 못 보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봄부터 시작되는 텃밭 일은 동생이 전적으로 내 지시를 따른다. 씨를 건사하고, 모종을 내고, 어떤 작물을 심을지 정하는 건 물론 텃밭 자리 배정까지 내 원칙이 있다. 빛을 좋아하는 작물, 바람을 좋아하는 작물, 함께 심어야 도움이 되는 작물을 적절히 배치하고 연작을 피해 해마다 자리를 옮기는 것에도 마음을 쓰는 식이다.           


  그 밖에도 둘의 역할은 여러모로 세분화되어 있다. 동생이 벌레 처리, 형광등 갈기, 병뚜껑 열어주기 같은 일에 앞장선다면 나는 전반적인 먹을거리를 책임진다. 특히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요즘은 겨우내 먹을 것들을 절이거나 말리고 얼려, 저장하는 데 주력한다. 폭설이라도 내려 산골에 꼼짝 못 하고 갇힌다 해도, 봄까지 둘이 연명할 정도의 식량은 비축해 놓을 생각이다. 동생은 간단한 집수리 정도는 어렵잖게 해내고, 텃밭 일을 제외한 마당 잡일도 도맡아 하는 편이다. 가장 우선시하기로는 마당 고양이들 보살피고 밥 챙겨 주는 것이지만, 삽질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 구덩이 파는 일 같은 건 내게 양보하지 않는다. 동생이 워낙 마른 체질이라 보통 체격을 가진 내가 더 힘쓰는 일은 잘할 것 같은데 보기와는 다르다. 팔씨름이라도 할라치면 단숨에 내 팔을 꺾어놓는 동생이다. 동생에게 덤빌 마음 같은 건 나도 감히 품지 않는다. 동생은 힘보다는 깡다구가 센 것이라 고집이라도 피우면 가족 누구도 말리기가 힘들다. 술도 가족 중 제일 세서 맥주 두 캔 정도는 거뜬히 마시는 걸로 인정받는다. 워낙 술이 약한 집안에서 별 것도 아닌 걸로 대접을 받는 것인데, 그건 한창때의 이야기라고 본인은 겸손을 떤다.


  “괜히 얼쩡대다 사고 치지 말고 언니는 들어가 있어.”  

  힘든 일은 자신의 몫이라 여겨 동생은 내가 마당에 나가 거들라치면 사뭇 명령조로 말하기 일쑤다. 장작이 오기로 한 날도 그렇게 얼마 거들지 못하고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김치거리를 장만해 놓아 내 부엌일도 만만치는 않았다. 낮엔 배추쌈을 먹고 저녁엔 배춧국에 겉절이를 먹을 생각이었다. 배추는 그 부피만으로도 힘든 재료라 김치 담는 일이 내겐 늘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스테인리스 양푼 두 개가 다 동원되고 각종 양념에 부재료들까지 싱크대와 식탁을 점령하니 그 어수선함만으로도 지칠 일이었다. 더구나 일을 하다 보면 적당할 때 멈추기가 힘들어진다. 이왕 양념을 만든 김에 무채 무침에 깍두기까지 담게 되는 것이다. 따로 모아둔 노란 배추 속잎을 먹기 좋게 잘라 준비해 두고, 함께 먹을 고구마튀김까지 하고서야 나는 한숨을 돌렸다. 이제 배추가 알맞게 절여지면 씻어 버무리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이런저런 정리로 분주하게 마당을 오가던 동생은 배추쌈을 차려놓고 내다보니 차고에 있었다. 차고란 비닐을 씌운 미니하우스인데 그 뒤쪽 공간에 장작을 쌓아둘 참이었다. 보일러 대신 장작 난로를 지펴 난방을 하는 우리에게 장작을 들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겨울맞이 행사다. 차고가 부엌 창 옆이라 동생이 무얼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동생은 차를 빼놓고 하우스 틀에 비닐 고정용 철사를 끼어 넣고 있었다. 높은 곳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들이 툭하면 하우스 위에 올라가 비닐을 뜯어 놓았기에 전날엔 그곳에 새로 비닐을 덮어야 했다. 장작이 젖으면 불이 잘 붙질 않는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아주 애를 먹었다. 미니하우스라 해도 비닐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둘이 하우스 양쪽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 바람에 미친 듯 날리는 비닐을 씌우기까지 이만저만 난리가 아니었다. 비닐을 씌운 뒤엔 고정해야 하는데 그게 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라면 가닥처럼 생긴 철사를 손으로 구부려가며 정해진 패드에 비닐을 대고 강하게 밀어 넣어야 했다. 손 힘이 약한 나로선 쉽지 않은 일이라 비닐을 겨우 잡아 둘 정도로만 철사를 끼어 두었다. 그러니까 동생은 내가 해 놓은 부분이 성에 차질 않아 다시 꼼꼼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동생을 불러 배추쌈에 고구마튀김을 먹고 난 뒤 장작을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2,5톤 트럭에 장작을 싣고 온 청년이 유쾌하게 인사하며 운전석에서 내린 뒤 짐칸에 뛰어올랐다. 장작은 1루베씩 네 꾸러미로 포장되어 있었다. 무게가 엄청나 통째로 쏟아내지 못하고 어느 정도 양이 줄 때까지 일일이 손으로 던져 내려야 했다. 고단한 작업을 하면서도 청년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올라가 거들어 준대도 마다했다.   

  “불 잘 피울 수 있는 노하우, 알려드릴까요?”           장작을 반 정도 내렸다 싶을 때 장작더미로 내려선 청년이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이런 껍질을 불쏘시개로 쓰면 돼요.”  

  장작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껍질을 들어 보이며 청년이 말했다. 나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노하우치곤 좀 싱거웠다.  

  “하나 더 알려드릴게요. 이렇게 장작 모서리에 칼집을 내는 거예요. 그럼 불이 정말 잘 붙어요.”     이번엔 얇은 장작을 하나 골라 들더니 그 모서리에 탁탁 칼집 내는 흉내를 내었다.  

  “아, 칼집을...그렇겠네요. 잘 타겠어요.”  

  나는 진지하게 대꾸해 주었지만 어느 세월에 칼집을 내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캠핑할 때 쓰는 방법이에요.”  

  자랑스럽게 말한 뒤 청년은 다시 짐칸에 올라 장작 던지는 일을 계속했다. 청년에게 줄 음료수를 이미 내다 놓았지만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종이백에 초콜릿바, 비스킷, 땅콩 따위 내가 줄 수 있는 간식거리를 죄다 담아 들고 나왔다. 이따금 오는 택배 기사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것들이었다. 싱거운 노하우를 둘이나 들었으니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다.        


  청년이 트럭을 몰고 떠난 뒤 동생은 곧바로 장작더미에 다가가 하우스 안쪽으로 장작을 던져 넣기 시작했다. 나는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두고 내일 같이 하자.”  

  사정조로 말했다. 기온이 떨어지고 있어 마당은 추웠고 나는 꽤 지쳐 있었다.   

  “언닌 들어가.”    

  동생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완고한 등짝이었다. 말려도 소용없을 것 같아 동생을 두고 들어와 버렸다. 나도 벌여 놓은 일이 있는 것이다. 아직 배추는 절이는 중이었고 저녁 준비도 해야 했다. 쌀을 냄비에 씻어 놓고 무채와 김치 양념은 냉장고에 넣었다. 깍두기는 다용도실로 보내고 어수선한 그릇들도 닦아 정리했다. 대충 치워 놓고 다시 마당에 나가보았다. 동생은 그새 장작을 하우스 안에 거의 던져 놓은 상태였다. 이제 밤사이 비가 온다 해도 장작이 젖을 일은 없었다. 장작 쌓는 건 내일 하자, 권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같이 장작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양 손에 장작 하나씩만 들어도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삼분의 일 정도를 쌓았을 땐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에 감각이 사라졌다. 장작에서 일어난 먼지로 눈도 아프고 목도 잠겼다.   

  “이젠 더 이상 못해. 병나겠어. 너도 손 떼!”

  나는 허리를 간신히 펴고 동생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뭐에 쫓기듯 일을 해야 하나 싶었다. 힘든 일도 쉬엄쉬엄 하면 즐길 만하지 않은가. 차 한 잔 끓여와 쌓인 장작을 바라보며 따끈하게 함께 마시고, 얼마나 그림이 좋은가 말이다.   

  “먼저 들어가. 조금만 더 하고 갈게.”  

  지친 기색이면서도 동생은 버티고 있었다. 장작 못 쌓아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결국 동생을 남겨두고 나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절인 배추를 씻어 건져두다 말고 쌀 냄비와 배춧국 냄비를 가스레인지 불에 올렸다. 너무 피곤해 일의 순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고 두부를 꺼냈다가 다시 넣고 겉절이 양념을 꺼냈다. 두부는 나중에 넣어야지,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김치를 버무리는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양념 묻은 손을 대충 씻고는 식탁에 놓아둔 전화기에 다가가 통화버튼을 터치하고 스피커를 켰다.         


  “뭐 하고 있었냐.”  

  전화를 걸면 늘 그렇게 엄마는 말문을 열었다.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거리두기 세상이 되어 수영장도 노래교실도 못 다니게 되면서 부쩍 전화가 늘었다. 배춧국 끓인다는 내 말에 “얘, 사골 국물에 배추를 숭덩숭덩 잘라 넣고 끓여 봐라, 구수한 게 맛이 아주 기가 막혀요.” 엄마 목소리에 생기가 올랐다. 음식 이야기를 재미나 하는 엄마다. "무를 채 쳐서 엿을 부어놓으면 국물이 잔뜩 나오잖니, 그걸로 고추장을 담가도 좋고 차로 끓여 마셔도 좋아." 나는 스피커 기능을 누른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일을 계속했다. 버무린 김치는 그릇에 담고, 끓기 시작한 밥 불은 줄였다. 냉장고에서 된장과 두부를 꺼내 배춧국에 된장을 풀고 두부를 잘라 넣었다. 창 너머 하우스 안 동생도 쉬지 않고 장작을 쌓고 있었다. 기어코 오늘 중으로 끝낼 작정인 것이다. 엄마는 이제 옷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얘 정순이 아줌마 알지? 그이가 요상한 바지가 생겼다고 나한테 갖다 주더라. 한복 바지 같은 게 얼룩덜룩 색도 요상하고 통도 희한하게 커서 아주 배창지를 고쳤다.”  

  배창지를 고쳤다, 는 말은 엄마가 참을 수 없이 웃음이 날 때 하는 표현인 만큼 꽤 웃긴 사태인 모양이었다. 정확한 웃음 포인트가 뭔지는 모르지만 엄마가 요란하게 웃으니 나도 덩달아 웃게 되었다.  

  “당신 희한한 딸 있잖아. 그 딸이라면 어울릴 거야. 그러는데, 아이고 웃겨!”  

  엄마는 계속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웃음이 웃음을 불러왔다. 피로가 물러간 듯 얼마간 몸이 개운해졌다. 과연 웃음이 명약인 것이다. 바지를 조만간 내게 택배로 보내주겠노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희한한 딸이 나인 모양이었다.


   희한하다, 정도로 이제는 표현이 누긋해졌지만 내가 사는 모양새를 엄마가 납득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엄마가 볼 땐 아직 한창 때로 여겨지는 두 딸이 산골에 틀어박혔으니 속상할 만했다. 바쁜 중이라도 엄마 전화만큼은 성실히 상대하는 내 속내엔 그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무 때나 마음 편히 전화할 수 있는 둘째 딸 정도는  되고 싶었다. 남동생은 일주일에 두 번씩 부모님을 찾아뵙고, 언니도 든든한 맏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동생은 뭐랄까, 그냥 있는 자체로 이쁜 자식이었다. “나는 쟤가 왜 그렇게 이쁘니. 그냥 지나가는 뒤통수만 봐도 이뻐 죽겠어.” 언젠가 명절에 가족이 모였을 때 냉장고에 다가가고 있는 동생을 보며 엄마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내겐 너무 인상적이라 잊히질 않았다. 애정 표현이 드문 세대에게서 나오긴 힘든 말이었다. 아버지조차도 딱 한 번 동생에 대한 애정 표현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애가 니 동생이다. 그러니 잘 돌봐라.” 참으로 과묵한 우리 아버지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내게 전화를 하는데 그때 한 말이었다. 아버지에게 동생은 별난 언니의 꼬임에 빠져 산골에 불쌍하게 끌려가 고양이들이나 돌보며 사는 걸로 여겨지고 있었다.        


  “애가 너무 말랐더라. 나이 들수록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이번 택배 보낼 때 사골 좀 보낼 테니 걔 좀 먹여라.”   

  엄마와의 긴 통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마는 늘 동생 먹는 것을 걱정한다. 식성 까다롭지 않던 동생이 나를 만나 육류를 멀리하게 되었다고도 여긴다. 동생이 마른 걸 내 책임이라 여기는 건 아니겠지만 나로선 눈치가 보였다. 열심히 먹여도 살이 붙질 않는데 어쩌겠는가. 먹을 건 충분하니 보내지 마시라, 엄마에게 말하다 말고 나는 움찔했다. 그 지나가는 뒤통수만 봐도 이쁘다는 엄마의 막내딸이, 후줄근한 꼬락서니로 창밖을 지나가고 있었다. 양 손에 묵직한 장작 바구니를 들고 있는 것이 남은 장작을 현관 앞 테라스로 옮겨 놓는 중인 모양이었다. 차고에 장작 쌓는 건 마침내 끝났나 보았다. 이젠 나도 엄마와 통화를 끝내야 했다.   

  “엄마, 애 배고프겠어. 밥 차려줘야 해!”     


    

    

하우스 안에 장작을 던져 넣고 있는 동생

     

기어코 장작 쌓는 일을 끝낸 동생


테라스에도 가지런히 정리된 장작


배춧국과 겉절이


 동생에게 차려 준 저녁 밥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