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나무 Nov 19. 2020

택배를 받는 우리의 자세와 전략

  “잊지 마!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야.”

  오후 다섯 시 무렵 저녁밥 가지러 건너온 동생이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알았어. 오늘 밤 9시 이후부터 시키면 되는 거지?”

  콩조림과 배추전, 된장찌개를 쟁반에 담아주며 나는 대답했다.

  “응. 밤 9시부터. 그전에 시키면 안 돼. 어떨 땐 밤에도 출발하더라고.”

  동생이 말했다.

     

  무슨 대화인가 궁금할 것이다. 택배 받기에 관한 의논이다. 우리는 읍내에서 구하기 힘든 물품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하고 있다. 사야 할 물품이 생기면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리고 적당한 때를 기다린다. 때가 되었다 싶으면 둘이 의논해 주문할 타이밍을 결정한다. 적당한 때란 동생과 내가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물품이 적어도 열 개 이상은 모였을 때다. 그 뒤엔 날씨를 점검하고 요일을 맞춘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곤란하다.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도 곤란하다. 택배 물량이 많을 때라 밤늦게야 도착하는 것이다. 특히 택배 물량이 가장 몰리는 화요일은 자정 가까이 도착한 적도 있다. 물량이 적은 목요일과 금요일은 비교적 일찍 배달이 온다. 가로등과 보안등이 없는 이곳의 철벽 같은 어둠을 뚫고 차량이 오는 것은 꽤 마음 쓰이는 일이다.

  그러니까 비나 눈이 올 확률이 낮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택배가 도착하도록 주문을 넣는 것, 그것이 우리의 택배를 받는 전략이다. 그 조건이 될 때까지 몇 주라도 기꺼이 기다린다. 굳이 그렇게까지 신 써서 택배를 받는 까닭은 이곳이 해발 600미터 산골이기 때문이다. 택배 기사로서는 반가울 리 없는 배송지다. 더구나 우리 집은 마을을 거의 벗어나 끄트머리에 있다. 도로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비탈진 좁은 농로로 내려왔다가 다시 산을 끼고 아슬아슬 경사진 길을 올라야 한다. 열악한 조건에 사는 입장에서 한 번에 열 개 이상은 배달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주문은 빠짐없이 했어?”

  다음날 아침 커피 마시는 시간 나는 동생 주문 상태를 확인했다.

  “응. 새벽에 끝냈어. 그새 품절된 것도 있고 가격이 오른 것도 있더라. 다시 찾느라 얼마나 골 아프던지. 언니도 다 했지?”

  “나야 너만큼 많진 않으니까. 넌 열 개라 했나?”

  “아니, 열한 개. 하나 더 늘었어.”

  늘 주문량이 많은 건 동생이다. 대부분이 고양이 사료와 간식, 모래다. 이번엔 고양이 모래만 해도 다섯 박스나 된다고 했다. 겨울을 앞둔 시기라 잔뜩 쟁여놓아야 하는 것이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택배 받기가 쉽지 않다. 나는 생필품을 주로 산다. 박스는 총 네 개다. 동생 것까지 하면 열다섯 박스. 택배 하나에 700원 꼴로 남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택배 기사가 가져갈 몫은 만 원이 겨우 넘는다. 그 정도면 면목은 선다 싶은데 이틀에 걸쳐 오면 미안해진다.

  “그래서 언닌 뭐 샀어?”

  동생이 물었다.

  “늘 사는 거지 뭐. 아몬드랑 땅콩, 병아리콩, 검정콩 같은 거. 형광등도 샀어. 형광등은 이상하게 추울 때 더 잘 나가더라. 아, 그리고 책도. 네가 선물로 사주기로 한 거, 안 잊어먹었지?”

  “맞다… 생일 선물!”

  동생은 잊었던 게 분명했다. 두 달도 더 지난 내 생일 선물. 올해 내 생일엔 웬일로 동생이 책을 사주겠다고 했다. 보통은 서로 직접 만든 것들을 선물한다. 천으로 만든 가방이나 방석, 실로 뜬 모자나 팔 토씨 같은 것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책 선물이라니, 선물 자체보단 그 발상이 나는 더 기뻤다.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줄 아는 동생이다. 읍내엔 서점이 없어 온라인 서점에 주문해 택배로 받아야 했다. 하지만 내 생일 바로 전날 마당 고양이 율무가 야생 동물에게 다리를 물린 사건이 벌어졌다. 상처가 깊어 한동안 생사를 오갈 정도였다. 한  달 넘게  동원을 다니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린 참이었다. 택배 주문 생각도 할 수 없었, 생일 선물 같은 건 까마득 잊혔다. 적어도 동생에겐 그랬다. 나는 잊지 않았다.

  “근데 책은 「랩 걸」로 주문했어.”

  내가 말했다.

  “뭐야? 내가 사주기로 한 건 「달에 울다」잖아.”

  “응. 고민되더라. 갖고 싶은 건 「달에 울다」인데, 당장 읽고 싶은 건 「랩 걸」인 거야.”

  「달에 울다」는 나를 단단히 홀려놓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이다. 오래전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이었다. 「랩 걸」은 호프 자런이라는 나무를 사랑하는 과학자가 쓴 에세이다. 거의 육 개월 이상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던 책이었다. 둘 다 주문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책도 짐이라 여겨지는 요즘이었다. 결국 아직 안 읽어 본, 당장 읽고 싶은 책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건 안 되지.”

  동생이 대뜸 시비를 걸었다.    

  “왜? 더 비까 봐?”

  동생의 반응이 가격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나는 「달에 울다」를 선물로 줄 거야.”

  이건 또 무슨 어깃장인가. 다른 책을 고를 수도 있지, 꼭 그 책이어야 선물하겠다니.

  “그러니까 달에 울다 아니면 안 사주겠다는 거야?”

  나는 확인을 해보았다. 설마 장난이겠지 했다.

  “응. 달에 울다 여야 해. 꼭! 달에 울어야지, 에 울어도 안 돼.”

  푹, 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깨달았다. 장난이 아니었다. 동생은 진심이었다. 태연한 낯짝으로 커피를 홀짝이는 동생을 나는 흘겨보았다. 동생은 종종 그렇듯 의자 위에 올라앉아 헐렁한 윗옷으로 무릎을 싸안고 있었다. 게다가 이마 위로 바짝 끌어올린 분수머리였다. 그 꼴로 천하에 둘도 없는 개떡 같은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오기가 발동했다. 저 웃긴 오뚝이한테서 기어코 내 선물을 받고야 말겠다. 서둘러야 했다. 더 늦기 전에 주문해야 당일 배송이 가능할 것이었다.

     

  “다 떴어?”

  다음날 아침. 우리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커피 잔을 앞에 놓고 앉아 각자의 배송 상황을 점검했다.

  “응. 운송장은 다 떴어. 배송 출발 메시지도 벌써 몇 개는 왔고. 넌?”

  내가 물었다.

  “내 것도 일단 모두 움직이긴 한 것 같아. 씨제이로.”

  동생이 말했다. 나도 모두 씨제이였다. 주문할 때 배송사를 통일하는 것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열다섯 박스가 두 배송사로 나누어 오는 건 우리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품을 장바구니에 담기 전 판매자의 지정 배송사를 확인하면 된다. 배송사를 지정해 놓지 않은 판매자 물품은 제외하는데, 꼭 거기서 사야겠다 싶으면 문의게시판에 묻기도 했다. 똑같은 물품이라도 수많은 판매자에 의해 가격도 배송사도 다르다. 배송사 통일이 우선이고 약간의 가격 차이는 고수하는 것이다.

  이번엔 씨제이로 맞추기로 했다. 이곳에 오는 배송사는 씨제이와 한진 두 곳이다. 둘 중 우리는 씨제이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한진은 자주 배송기사가 바뀌는데 씨제이는 몇 년째 같은 사람이 오고 있다. 숨어 있는 집에 대해 새로 길 안내를 할 필요가 없는 데다 그만큼 익숙하고 친숙하다. 아, 그러고 보니 우체국 택배도 있다. 익숙하고 친숙하기론 우체국 택배도 못지않다. 우체국 택배를 사실 우리는 가장 좋아한다. 우체국 택배는 전략이 필요치 않다. 박스 하나만 배달 와도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다. 평소 늘 하는 우편배달을 겸해 잘 아는 집배원이 오토바이나 우체국 전용 차량에 싣고 온다. 전엔 피디에이에 서명을 꼭 받아갔는데 비대면 시대가 되어 “택배 놓고 갑니다.” 크게 외쳐주고 그냥 간다. 우리의 택배 사정을 아는 가족들은 그래서 물건을 보낼 때는 반드시 우체국 택배로 보내온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우체국 택배로 보내는 판매자를 찾기가 힘들다. 식품이라면 몰라도 동생의 주요 물품인 고양이 관련 용품에선 거의 전무하다.  

     

  “첫사랑 택배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오후 한 시가 되자 전화기에서 음성 알림이 흘러나왔다. 첫사랑 택배는 늘 오후 한 시 경에 메시지를 보내온다. ‘첫사랑 택배’는 또 무슨 배송사인가 할 것이다. 씨제이 배송 기사의 전화번호가 그런 이름으로 내 폰에 저장이 되어 있다. 오해는 마시라.  년  전 배송기사가 바뀐 적이 있는데 그때 새로 온 사람이 내 어릴 적 첫사랑과  닮아있었다. “혹시 같은 형제 아니야?” 하고 동생까지도 놀라워했다. “형제는 무슨, 아들이면 몰라도.” 나는 스물  후반으로 보이던 말끔한 인상의 새 택배기사를 떠올리며 말했다. 기분이 삼삼했다. 첫사랑 택배, 좋지 않은가. 반가워서 그 당시 저장을 그렇게 해 놓았더니 메시지 뜰 때마다 생각지 않게 즐거웠다. 마치 첫사랑에게서 택배가 오는 것 같았다. 사실 내 집에 뭐가 와야 한다면 첫사랑보다는 택배가 오는 게 더 낫다.  

     

  오후 4시경 다시 동생이 건너왔다. 택배 도착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고객님께서 기다리시던 소중한 상품을 가지고 배송 출발합니다. 배송 예정 시간; 17-19시>

  오후 한 시경 온 메시지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준비 해 놨어?”

  “응. 저기 담아 놨어.”

  나는 간식거리를 담아 문 옆에 놓아둔 종이백을 가리켰다. 멀고 험한 곳까지 물건을 가져다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동생이 종이백을 문밖의 <택배 받는 곳>이라 마련해 놓은 평상 위에 두고 왔다.

  “한 번에 오면 좋을 텐데 나머진 내일 올 건가 봐.”

  배송 안내 메시지가 내겐 한 번, 동생에게는 여섯 번 도착했다. 주문한 물품 열다섯 개 중 일곱 개만 오는 것이다. 나머진 중간 지점 어딘가에 묶여 있는 모양이었다.

  “할 수 없지. 요즘은 물량이 너무 많아 하루 만에 배송하기 힘들다고 하더라. 분류센터에서도 너무 고생하고. 당일 배송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소비자 의견이 많아졌대.”

  “「달에 울다」도 이번에 오는 거야?”

  동생이 물었다.

  “몰라, 아이 정말. 어차피 오늘 다 안 올 걸 알았으면 그냥 주문했을 텐데.”

  갑자기 약이 올라 나는 말했다. 결국 나는 동생 선물을 주문하지 못했다. 뒤늦게 책 한 권만 따로 오면 너무 신경이 쓰일 것 같아서다.  

  “하하, 못 샀구나. 바보야.”

  동생이 놀렸다. 약 오르고 놀리고, 이건 우리의 재미다. 사실 속으론 그리 약 오르지 않았다. 어쩐지 「달에 울다」는 갖지 못한, 그 상태가 싫지 않은 책이었다. 병풍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한 남자의 독백이었다. 병풍엔 사계절을 담은 묵화가 그려져 있고, 소설 첫 장은 봄 병풍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오래전 책을 도서관에 돌려주기 전에 그 부분을 나는 종이에 옮겨 놓았다. 비가 줄곧 내리던 여름 끝자락의 어느  아침, 동생에게 그 글을 읽어 준 적이 있었다.

   

 봄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걸식하는 법사다. 휘늘어진 버드나무 둥치에 털썩 주저앉은 법사는 달을 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비파를 타고 있다. 두 눈이 멀어 광대한 강변 일대에 쏟아지는 푸른 달빛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때가 꼬질꼬질한 그의 오체는 삼라만상을 그대로 포착하고 무궁한 시간과 공간에 녹아들어 있다.*


  “이상한 문체야. 마치 병풍이 보이는 것 같지 않니. 빗소리가 시끄러워 밤에 자꾸 깨잖아. 그때 이걸 중얼거리게 되는 거야. 시린 달빛이 펼쳐지고 비파가 흐느끼고. 나도 그 병풍 없이는 잠들지 못할 것 같은 게.”

 내가 말했다.

 “달에 울다?  그 책은 내가 사 줄게. 생일 선물로.”

 그때까지 말없이 듣고 있던 동생이 말했다. 돌이켜보니 동생의 어깃장에 일리가 있었다. 올 해가 가기 전 다시 한번 더 택배를 받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택배는 다음날 오후 모두 배송 완료되었다. 친절한 음성 알림과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객님이 기다리시던 상품이 도착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자음과 모음 출판



이전 01화 청소하는 여자 vs 밥상 차리는 여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