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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Jun 08. 2021

데이지 꽃이 필 때면 딸기 샌드위치

  

울타리 안에 핀 데이지

    데이지 꽃이 피기 시작했다. 볕이 잘 드는 마당엔 지난주부터, 길 입구 울타리 안에는 며칠 전부터 꽃잎이 열리고 있다. 하얗게 핀 커다란 꽃잎들. 깨끗한 흰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저절로 피는 들꽃 말고 우리 집에 가장 많이 피는 꽃이 데이지다. 산골에 이사온 초기, 이웃 경애 씨가 한 포기 나눠 준 것이 시작이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포기나누기를 하여 이제 마당과 우물, 울타리까지 가득 군락을 이루었다. 데이지는 번식력이 좋다. 추위에 강하고 거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보름 넘게 꽃이 계속 피고 진다.           

우물가에 핀 데이지
마당에 핀 데이지

     데이지가 피는 요즘 마을길에도 찔레와 아까시 꽃이 한창이다. 길을 걷는 내내 달콤한 향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향기도 꽃잎도 팔랑팔랑,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처럼 시선을 끈다. 풀숲에 묻혀 몽실몽실 피어난 찔레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주렁주렁 늘어진 아까시 꽃도 모두 하얀색. 딱히 우길 건 지만 시기마다 주도하는 꽃 빛깔이 있다. 이른 봄엔 노란색, 조금 지나면 붉은색자주색,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은 하얀색이 주류다. 풀숲에서 한창 피고 지던 딸기꽃도 하얀색. 딸기꽃은 이제 거의 졌다. 꽃 진 자리엔 딸기가 맺혔다. 빨갛게 익은 것을 하루 한 줌 정도 딸 수 있다. 물에 씻으며 실한 것은 바로 입에 넣고, 자잘한 것은 병에 넣어 설탕을 부어둔다. 며칠 모이면 냄비에 끓여 딸기잼을 만든다. 식빵 두 장 정도 바를 양이 나온다. 슬라이스 치즈 두 장을 겹쳐 가운데 끼우고 딸기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딸기 샌드위치와 배추꽃

   정말 오랜만이다, 딸기 샌드위치.”   

  동생이 말했다. 기분을 내느라 굳이 마당에 나가 아까시 차에 곁들여 먹는 중이었다.    

  일 년만인가. 작년에도 이맘때 먹었을 걸. 데이지 필 때 딸기가 익으니까.”  

  화단에 가득 핀 데이지를 보며 내가 대답했다. 얇게 발린 딸기잼에서 진한 딸기향이 났다. 데이지가 필 때면 한 번쯤은 먹게 되는 딸기 샌드위치. 기억났다. 작년엔 길 아래 밭에 일하러 가서 새참으로 딸기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곳 경사진 둔덕이 딸기밭이다. 딸기 벤치까지 만들어두었다. 딸기도 데이지처럼 추위에 강하고 거친 땅에서 잘 자란다. 번식력도 강해 줄기를 계속 뻗어가며 사방에 뿌리를 내린다. 처음 다섯 포기로 시작된 것이 둔덕을 가득 덮을 만큼 퍼졌다. 마당 구석에도 몇 뿌리 옮겨 놓은 것이 또 퍼지고 있다.  


마당 입구에 맺힌 딸기
딸기 벤치. 벤치 뒤 둔덕이 모두 딸기밭이다. 푸른잎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자잘한 딸기가 잔뜩 맺혀 있다.  


    그 딸기 벤치에 어제는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오셨냐는 물음 대신이었다. 집 울타리 안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얼마간 경계를 하게 된다. 같이 인사를 나누던 할아버지가 풀 뜯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옆에 낀 자루를 열어 보였다. 질경이와 칡잎이 한 아름 들어 있었다. 토끼를 키우고 있는데 토끼가 칡잎을 잘 먹는다고 했다. 골짜기 아래 새로 이사 온 사람이라고 저기 저 아래 빨간 지붕.” 하며 손을 뻗어 아래를 가리켜 보였다. 지붕은 보이지 않았지만 언젠가 골짜기 샛길로 내려가다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았다. 빨간 지붕, 그 집에서 딸과 사위랑 같이 산다고 했다 구절초가 벌써 폈나?” 데이지를 보며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데이지라고 알려드렸더니 “뭐 돼지꽃?”했다.  데이지는 꽃만 보면 가을에 피는 구절초와 거의 흡사하다. 나중에 씨를 받을 수 있을까 묻기에 데이지 두어 포기를 캐어 드렸다. 가을에 포기나누기를 하면 가득 퍼뜨릴 수 있다고, 경애 씨에게 들었던 말도 함께 곁들였다. 이웃에게 받은 걸 나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자잘한 꽃망울이 가득 맺힌 걸로 골랐으니 그 집에도 며칠 내로 환한 데이지 꽃이 피어날 것이다.            



마당고양이 율무가 울타리까지 따라와 포즈를 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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