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죽음이 아니어도 끝낼 수 있는 고통

by 체리

소제목은 <웹툰 작가 서밤: 이 고통은 죽음이 아니라 살면서도 끝낼 수 있다>에서 따왔다. 어느 날 나는 24시간 중 단 1초조차 살아야 할 이유 비슷한 것을 찾아내지 못해 괴로워했다. 흔하디 흔한 날 중 하나였고 나는 살아야 할 이유 비슷한 것조차 찾아내지 못한 배경에 어떤 그럴듯한 곡절이 존재하기를 바라 마지않았지만 나는 끝내 살아야 할 이유도, 그 비슷한 어떤 부스러기도,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되었는지도 찾아내지 못했다. 더 끔찍한 건 내가 그 어떤 감정도 갖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머릿속 작은 주름의 사이까지 종이를 끼워 훑어내는 꼼꼼함으로 뒤져 보았으나 나는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즐거움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는데, 그것은 현 상황이 그 어떤 그럴듯한 논리의 흐름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불안과 살면서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는 치명적인 공허함을 향한 농도 짙은 두려움이 합쳐진 것이었다. 나는 시력이 좋은 편이다. 양안이 1.2 정도로 멀리서도 찾고자 하는 간판의 위치를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 그 사실이 원망스러울 만큼 눈에 띄는 모든 물건에 의해 죽음을 맞은 내 모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어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그날은 소름 끼칠 만큼 충실하게, 10초마다 '그럼 죽자'라고 속삭이며 날아오는 생각을 쳐내면서 보냈다. 거기에 어떤 박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 리듬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의식할 만한 여유는 없었지만 깨어 있는 시간은 모두 '그럼 죽자', '아니 난 죽기 싫어', '그럼 죽자'의 반복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슨 타악기의 반주처럼 반복적이었다. 그동안은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은 정말 많기 때문에 나 같은 건 그리 특별하지도 않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방치했다. 더 이상 스스로가 원치 않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거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건 좀 더 생각해 볼 문제라고 느꼈다. 그 '어느 날' 이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다음날은 토요일이었고, 나는 가장 가까운 정신과 의원이 어디인지 검색해 진료시간을 물었다. 천만다행으로 자고 일어난 뒤에는 전날의 '죽자' 메들리가 반복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 허망감으로 가득 차 터져나갈 것만 같았던 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전날의 공포는 부모님과 사회로부터 주입된 정신과를 향한 공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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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하나 부모님이 말한 것처럼 정신과 문턱을 넘는 순간 남는 기록이 내게 손해를 입힌다 해도, 정말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어쨌든 최악의 경우 내가 되는 것은 '산 사람' 이잖은가. 그런데 내가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마지막으로 하루라는 시간을 꼬박 '죽자'라는 공을 쳐내는 데 보냈을 때 나는 모든 공을 완벽하게 쳐냈지만 다음번에는? 다음번에 공을 쳐내지 못하면? 다다음 라운드는 사라질 거다.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니까, 과학수사물을 좋아하니까, 어중간하게 살아날 방법이라면 애초에 시도를 안 할 테니까. 특히 이런 중요한 문제라면. 나를 병원 문 앞으로 인도한 것은 이런 계산이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얼굴이나 그런 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어젯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평생 이 허망감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만 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애초에 쓸 생각이 없었다. 먼저 내 우울증이 치료 4개월 차로 이미 지나간 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과 작년 한 해 타 플랫폼에서 연재를 하면서 의외로 글이나 사진을 통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던 경험, 1주일 간격의 연재가 주는 부담감에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러니까 더 팔릴 만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이유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나라는 사람의 곪은 부분을 드러낼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내가 이렇게 이유 늘어놓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하루 종일 살 이유를 못 찾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DSC00978.JPG 나는 띵띵이라고 쓴건데 왜 명명처럼 보이지

치료를 시작하고 차도를 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항우울제가 원래 그렇다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차도는 1분에도 몇 번씩 "오 그러면 죽을까?"라는 생각을 이 악물고 쳐낼 필요가 없었다는 뜻으로 기분이 좋아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가라앉아있었고, 치료 자체에 관해서도 확신이라 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내가 먹는 브린텔릭스는 오전 내내 나를 메슥거림에 시달리게 만들었고, 그나마 상태가 나아져도 세상 끝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기를 반복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일을 '이건 죽기 전에 해둬야지'라는 생각을 품고 대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 사람들이 전해오는 여러 가지 사건에 '예전의 나라면 그렇게 했을' 반응을 기계적으로 내보이는 자신에게 소름이 돋았다. 그 모든 과정 동안 놀라울 만큼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삶은 명백하게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첫 문장에서 언급한 서늘한 밤 작가의 인터뷰를 접한 것은 그 시기였다. SNS 타임라인에서 발견한 '이 고통은 죽음이 아니라 살면서도 끝낼 수 있다'는 말은 가슴속에 고동처럼 울렸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좀 더 버틸 힘을 얻었다.


다행히도 주변에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건 '이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라고 느낀 사람에게만 털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위 '괜찮은 사람들'도 때론 돌이킬 수 없는 실언을 한다. 운 좋게도 친구들은 '그렇구나'라는 말과 함께 받아들여 주었다.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는 말과 나아질 거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워준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가 그 어떤 순간에도 '해도 되는 이야기'에 속했으면 좋겠다. 누구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경증이라거나 그래서 엄살을 피워서는 안 된다거나 그런 답도 없는 불행 자랑 대회에 휩쓸리는 일 없이 당연하게 주위로부터 지지받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하는 지금도 숨어서 글을 쓰는 입장이라 꽤 복잡한 심정이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문제 때문에 자신을 책망하는 사람들이 지지받는 세상에 벽돌 한 장 쌓고 싶다.


에밀 시오랑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고 했다. 우리는 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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