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버텨서 될 일과 안 되는 일

by 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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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비교해서 자신이 조금 가라앉아있다고 느낄 때 내가 제일 먼저 취하는 방법은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달리 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었고, 삶이라는 게 원래 부침이 있기 마련이니 그렇게 내버려 두다 보면 또 나를 끌어올려주는 사건들을 만나 다시 평상시의 감정 상태를 되찾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내버려 두기 민간요법으로 대학원 시절의 침침한 일상과 성추행범이 있는 직장생활의 기억을 불안하게나마 디디고 선 내가 1년여의 해외 생활 끝에 얻은 우울증은 내버려 둬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귀국 6개월 전부터 내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나는 '그냥 좀 울적한 것뿐이고 누구나 이 정도는 겪는다'라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내 증상은 '그냥 좀 울적한 것'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느 날은 너무 울적한 나머지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슈퍼를 다녀오는데 40분이 넘게 걸렸다. 내가 평소처럼 속도를 내어 걸을 만한 기력을 내는 데에 아무 의미도 찾지 못했던 탓이다. 또 다른 날은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었다. 대형 트럭이 경적을 울리면서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나는 당연하다는 듯 피하지 않았다. 내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트럭이 완전히 지나간 후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몇 초 후 나는 그 사실이 소름 끼친다고 생각하면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횡단보도를 건너 사무실을 향했다. 차에 관련된 일이라면 하나 더 있었는데, 이때도 집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속도를 하나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횡단보도를 통과한 차 때문에 큰일을 겪을 뻔했다. 주변 사람들은 사라져 가는 차 뒤꽁무니에 어이없다는 얼굴로 손짓을 했었다. 나는 그때도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은 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횡단보도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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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였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반응들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래서 뭐? 어쨌다고?라고 생각했었다. 평소의 나였더라면 트럭이 머리카락을 스침과 동시에 '엄마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놀랐을 것이다. 놀람과 동시에 몸을 틀어 피했을 것이다. 나는 무서운 것을 무섭다고 느끼지 못했고,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 왜 의무의 영역에 속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버려 둬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으나, 회사에서 비자 스폰서십에 관한 협조를 거절당하고 귀국이 확정된 후부터 '치료가 필요하면 한국 가서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내가 자신을 특별히 싫어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상당히 옅어져 있었고, 귀국이 다가오면서 짐을 싸고 주변에 인사를 하기 위해 식사 자리를 가지는 등의 일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내게 필요한 건 정신과 전문의의 적절한 도움이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를 돕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는 데 더 전념했었다. 내가 지내던 파리는 날씨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니까, 잘 안 먹어서 5kg 정도 빠졌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 요즘 정신이 없으니까, 프랑스어를 하지 못해서(회사에서는 영어로 일을 했다. 사실 영어로 진료하는 의사도 찾으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건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증상을 설명하는 게 피곤하니까, 곧 귀국하는 판에 비싼 프랑스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다가 의료비 환급 절차는 언제 다 하고?(프랑스 의료보험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환급받을 수 있었지만 기간이 오래 걸려서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같은 허울 좋은 핑계들이 잔뜩 있었던 탓에 나는 늘 그랬듯 '언젠가는'을 맹신하며 자신을 방치했다.


왜 더러운 집이나 몸에 붙은 세월은 부끄럽게 여기면서 내면을 방치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살다 보면 큰 결심을 하게 만드는 순간이 온다. 내게는 그것이 4개월 전, 전화에서 언급했던 끔찍한 날이었다. 죽을까, 죽을까, 죽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은 그날 처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30분, 그다음에는 1시간 하는 식으로 서서히 늘어나던 시간은 그날 내가 아침에 눈을 떠 잠들기 전까지 기어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날 가장 끔찍했던 건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오직 공동(空洞)이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평소에 나를 구했던 모든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시간이나 가족의 손길,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단 1mg의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기댓던 모든 것은 더 이상 나를 구하지 못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병원을 찾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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