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어? 이상하다.

by 체리

물론 이번 우울증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우울한 시기는 아니다. 나는 어찌 보면 조금 둔감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고, 이런 둔감함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기능했다. 나는 우울함을 의식하면 그 순간 끝장나는 거라고 생각했으며, 요즘 내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도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그런 못된 버릇을 들인 결과 내 우울은 보통 2-3년이 지나서야, 그 좁은 터널을 빠져나온 후에야 스스로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랬구나', '나 그때 우울했었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막 대했냐면 3년 전 나의 우울을 인정한 후에도 '후훗 역시 신경 줄 두꺼운 나다워'라는 식으로 이 연출된 인내와 연출된 둔감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질 않던가. 2017년 해외 생활 중이던 나는 요즘 느끼는 우울감이 정말 심상치 않고, 또 태어나 느껴본 적이 없을 만큼 깊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내버려 두면 나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게다가 내 해외 생활에는 끝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날짜까지 받아놓은 상황이었으므로 이 물가 비싼 파리에서, 불어도 못하는 입장에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느니 그냥 집에 갈 때까지 버티자고 마음을 먹었다. 회사에서 들어준 보험이라면 있었지만 모든 게 느린 프랑스에서는 의료비 환급을 받으려면 몇 주는 기다리기 일쑤였다. 어렵게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고 의료비 환급-이라곤 해도 정신과 상담이나 진료는 1년에 환급 한도가 정해져 있다. 30분 상담에 40 유로면 싼 정도고 때로는 1회 진료와 약 처방까지 80유로까지 가는 데 반해 1년 환급 한도는 200유로 정도이기 때문에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큰 도움까지는 되지 않는다.- 이런 좋은 핑계에 정신과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었으니 치료를 미루고 미루고 미루는 건 간단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DSC01001.JPG 이걸 그리는데 사인펜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왜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오늘도 안 죽었네', '내일은 죽나' 같은 생각들을 했었다. 그 생각들이 소름 끼친다는 마음도 갖지 않았다. '오늘 뭐 먹지'처럼 가볍고도 간단히 '내년에는 살아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당장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의사를 찾아가자는 생각은 안 했으니 참 징하지 뭔가. 자신을 방치하고 학대하는 건 이미 관성과도 같았다. 내가 적극적으로 먹은 것을 게우거나 날붙이로 몸에 상처를 내는 학대를 스스로에게 자행한 것은 아니지만 명백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의도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이 학대가 아니면 뭐겠는가.


미련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행동을 했다면 절대 가볍게 넘어가거나 필요한 조치를 미루지 않았을 텐데. 타인에게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스스로에게 하는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쉽다.


아직 파리에 있을 시점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무리 없는 경제활동이 가능했다. 그 시점까지는, 우울증이 일에 지장을 주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의식조차 못하는 순간순간 '어 죽을까?' '지금인가?'라는 생각들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매일 해야 하는 일들로 뚜껑을 덮으면 당분간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괜찮으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내 우울증이 정체기를 맞은 게 아니라 내가 머뭇거리는 순간순간 착실하게 악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본디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아서 정말 친한 친구도 1년에 한 번이나 2년에 한 번씩 만나는 일이 흔하다 보니 친구가 먼저 만나자고 하면 거절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면 울음이 터질 만큼 싫었다. 친구가 싫은 것은 절대로 아니고, 이 친구가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서 만나자고 해 주었는데 나는 어디가 고장 났는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점과 그저 맹렬하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이 두뇌를 지배하는 현상에 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보통 거의 컴퓨터 앞에서 지내다 보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칼답' 하기로 이름을 날렸었는데, 그놈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 때문에 메신저 답이 몇 시간 늦으면 죄책감씩이나 느꼈었는데 2017년 말부터는 하루가 지나고 나서도 답변하기가 싫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람과의 대화도, 대면도 죽는 날까지 피하고 싶어 졌다. 이런 건 내가 아닌데?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느끼는 우울감이 명백하게 전에 느끼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 시점부터 '이런 건 내가 아닌데?'라고 위화감을 느끼기까지 7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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