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연속
이번 이사의 키워드는 배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2월 첫 주 수요일, 즉 4일부터 철도 및 항공 총파업이-다니엘은 이 파업 때문에 매일 아침 우버를 잡아타거나 그것도 용의치 않으면 우버의 공유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간다. 집에 올 때도 마찬가지다.- 시작되었기 때문에 도로가 혼잡해진 사정은 감안해야 하지만 말이다. 먼저 다티(Darty: 프랑스판 하이마트)가 야심 차게 내놓은 구독형 서비스 다티 플러스가 예정일 내에 배송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뒤통수를 쳤고, 다티 플러스 서비스의 정체성은 아마존 프라임처럼, 고객이 더 낸 돈만큼 더 빠르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니만큼 나는 이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쪼잔한 갑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티 측에서 먼저 제공한 예정 배송일을 맞춰 달라는 건데!! 하지만 이 배신에서 회복하기도 전에 다음 배신이 찾아왔다. 20유로인지 30유로인지를 더 내면 내일 배송해주겠다던 이케아가 예정 배송 시간인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하지만 이걸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어차피 다티에서 주문한 드릴도 함흥차사였기 때문에 이케아 가구가 먼저 와 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다음은 매트리스 회사인 테디베어에서 주문한 이불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다는 것인데 다행히 먼저 쓰던 이불이 있어 버틸 만했다. 하지만 이중 어떤 배신도 우리가 야심 차게 구입한 카트의 배신만큼 뼈아프지는 않았다. 호로.. 아니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
새로 이사한 집은 먼저 살던 곳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게다가 우리는 두 사람이 살기엔 매우 좁은 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너무 짐을 늘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짐차만 있다면 우리끼리 짐을 옮겨도 될 거라고 자신 있게 생각했다. 우리는 그것을 실행에 옮겼고, 다니엘이 오피스 디포에서 박스를 사 오는 동안 나는 박스를 고정할 로프와 포장용 뽁뽁이 같은 것들을 사 날랐다. 그리고 이전 집에서 새집까지 이동하는 첫 여정은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여정을 위해 이전 집으로 간 다니엘이 땀에 절어 나타날 때까지 우리를 덮칠 가장 큰 배신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니엘에게 물을 좀 먹이고 물어보니 이전 집에서 나오자마자 바퀴 하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단다. 나머지 두 개의 바퀴는 새 집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박살 났다나, 짐차는 바로 그날 아침 배송된 따끈따끈한 신품이었다. 게다가 의심병이 있는 내가 후기를 하나하나 검증해 가며 선택한 것인데! 도합 150킬로를 나를 수 있다던 짐차가 넉넉히 쳐 줘도 40킬로가 안 되는 짐 때문에 길바닥에서 퍼지다니. 짐차,, 너마저.. 나는 이 배신의 연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머지 이사는 10만 원 주고 산 31인치 캐리어에 과적을 해서 해결했다. 150킬로를 나른다던 짐차가 못 한 것을 한 인간과 저가형 캐리어가 해냈다! 짐차한테 이겨 봤자 무슨 상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짐차를 환불하는 과정 또한 험난하다. 방문 반품 같은 서비스는 없고, 이 짐차를 잘 포장해-박스는 이미 버렸다..- 우체국까지 잘 들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운동 부족인 나를 위한 조물주의 배려인가…운동은 모르겠고 삶에 불신감이 높아진 건 확실하다.
이렇게 이사 과정이 순탄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이미 지난여름 이사 갈 집을 알아보다가 서류 문제 때문에 마지막 단계에서 엎어진 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 이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내내 나는 ‘제발 깨끗한 집… 2중창이라 덜 춥고 마루에 찌든 때 없는 집..’을 간절히 바랐는데 다행히 무척 깨끗한 집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무척 들뜬 마음으로 마루 청소용 약품-나무 마루는 물청소를 하면 안 된다고 한다-을 샀는데, 택배 봉투와 병 표면이 끈적한 걸 보니 약품이 좀 샌 모양이었다. 그리고 병 위에는 내 부족한 프랑스어 실력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금지 표시 속에 있는 손과 약품 방울 모양… 바로 손을 씻었다. 별로 냄새가 고약한 건 아니었지만 약품을 희석한 물에 걸레를 담글 때마다 시꺼멓던 걸레가 비벼 빨지 않아도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걸 보니 왜 맨손으로 만지지 말라는 건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약품을 좀 따뜻한 물에 희석시켜야 한다는 건 온 아파트를 다 청소하고 다니엘에게 약품 병을 보인 후에야 깨달았지만 까짓것 ‘꼭!!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용하세요’ 같은 문구를 못 보고 놓친 것보다는 나으려니 했다. 자잘한 사건들은 있었지만 이사는 잘 했고, 몸살도 없이 지나갔다-아직 모르는 거긴 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 하겠다. 이사와 정리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가까운 한국 슈퍼의 유무와 주변의 배달음식 종류 파악이었다. 전에 살던 집에서 10분 거리면 사실상 한 동네인데 괜히 남의 영역에 발 들인 것 같고 쫄린다. 이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먼저 이 동네 빵 맛부터 시험해 보려 한다.
글을 올리기 전에 다니엘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이케아가 자꾸 온다던 날에 안 오고 주문 확인도 안 해주고 또 배송일을 자꾸 미뤄. 파업 때문인가 봐'라고 했더니 '오... 절대 파업 때문이 아냐. 그게 프랑스 이케아가 매번 하는 짓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드릴은 아무리 블랙 프라이데이 때 할인을 받아 샀다지만 드릴에 발이 달려 걸어오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안 오고 있다. 과연 우리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가구를 갖춘 집에서 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