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
우울증이 생기고 나서 나라는 사람은 산산조각 났다. 그건 생활을 구성하는 당연한 부분들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울증 때문에 생업을 이어가는 데 문제를 겪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발병 이전 수준의 생산성을 회복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은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일어나고 잠드는 시각이나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이 오직 내 재량에만 맡겨진 생활이라는 게 오히려 독이 되어 일상이 무너졌다. 약속이 있는 날에는 나가기 전까지 가기 싫어서 오열할 지경이었고, 막상 나가서는 재미있게 놀다가 돌아와서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정오까지 자다가 일어나 약 부작용에 침을 질질 흘리며 괴로워했다.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집을 청소하는 일들은 나름대로 꾸준히 했지만 이것들이 나를 채워주는 데에 도움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이 내게 '우울증을 호전시키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물어볼 때 나는 감히 대답으로 내놓을 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했던 일들은 벌레가 죽기 전에 미친 듯이 다리를 퍼덕이는 무의식적인 생존 본능에 가까웠지 의식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겠다는 건설적인 마음은 절대 먹을 수 없었던 탓이다. 보통은 그냥 버텼다고 대답한다. 내가 경솔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숨 쉬는 동안 너무 괴롭지 않도록 자신에게는 되도록 잘해주려 했다. 약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치료는 절대 빠지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뭘 해도 내 편이 되어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했던 일 중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일상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로 다시 일상을 쌓는 게, 많은 것들이 지나간 후 돌아보니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원래 단순작업을 꽤 좋아한다. 회사에서 종이를 자르거나 스티커를 대량으로 붙이는 것 등의 잡일을 시켜도 그게 원래 해야 할 일을 너무 깎아먹지만 않으면 꽤 기뻐하면서 하는 편이다. 그래서인가 매일 아침-정오였지만- 필기체 연습을 했더니 '그래도 오늘은 필기체 연습을 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성취감이 들었다. 같은 글자를 몇 개나 쓰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손만을 묵묵히 움직여야 한다는 게 참 좋았다. <해를 기다리는 아이>를 연재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해야 할 일이 필요했고, 글을 쓰고 나면 '그래도 이번 주엔 글을 썼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했다. 무너진 것은 일상뿐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생체리듬도 무너졌고, 나는 식욕도 성욕도 배변 욕구도 완전히 무너져서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느꼈다. 머리만 대면 자던 내가 불안함에 30분은 떨다가 잠이 들었으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치료라는 복잡한 세상에, 앞으로의 미래라는 복잡한 일에 비하면 이 필기체 연습은 얼마나 간단한가. 아침에 일어나면 A4용지 뭉치에서 종이를 하나 뽑아 들고 상을 펴 앉은 후 손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매일 쓰던 그 문자들을 오늘은 더 예쁘게 쓰는 것만이 그 순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나는 그 간단하기 그지없는 절대적임에 많이 위로받았다. 뼈를 깎는 노력도 필요치 않고,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만 있으면 된다. 시간은 쌓이고, 내가 자신은 못 바꾸지만 적어도 종이 위의 글씨 정도는 바꿀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쯤엔 이 필기체 연습이 일과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요즘은 또 안 한다) 이것이 내 재활 훈련 중 하나였다.
또 하나는 재활 훈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말이지 내일이 기대되지 않을 때, 시간이 고여있는 것만 같을 때, 오늘과 내일의 차이점이라곤 찾기 힘들 때, 오늘이 며칠인지 전혀 모르겠을 때-이건 원래도 이랬지만- 나름 도움이 된 택배 요법이다. 너무 남용하면 통장이 정말 처참하게 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당시엔 내 장례비만 남기고 다 써도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택배가 온 후에는 다시 평소 같은 시간의 흐름이 계속되었지만, 다 같이 우주를 유영하는 먼지처럼 살아가는 세상에 작은 상자 하나가 내 쪽으로 천천히, 또 천천히 다가와 내게 부딪힌다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Uber eats를 시켜놓고 어떤 길을 지나 우리 집으로 오고 있는지 관찰하는 기분과도 비슷하지만-배우 오카다 마사키가 DVD를 보면서 Uber eats를 시켜서 영화 보는 중간중간 음식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이 배우가 더 좋아졌다-, 택배는 적어도 하루 정도 걸리니까, 더 오랜 시간을 두근거리면서 지낼 수 있었다.
아, 왜 하필 필기체였냐면 프랑스에 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다 쓸 줄 아는 걸 나 혼자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떠날 때 사람들이 써준 롤링 페이퍼도 읽기 힘들 지경이었으니까. 그게 마음에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