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많아졌다
약을 이틀에 한번 복용하기 시작한 지 2주일이 넘었다. 2주 분량 약을 받아 한 달 동안 먹기로 했는데 문제의 약이 이사하는 동안 사라졌기 때문에 센터 분들이 버렸을 거라 생각하고 다시 받아왔더니 책상 위에 있던 약이 부엌 짐에서 나왔다. 잘 찾아보지 않은 내 잘못만은 아니다. 아무튼 얼떨결에 약을 곱빼기로 받았지만 다 먹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결국 병원까지 헛걸음을 했다는 허탈함을 선사했을 뿐이다. 좋은 점은 아직까지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무기력해지거나 불안 장애가 나타난 적이 없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땀이 매우 많아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올린 '그냥의 사회생활'에 들어갈 그림을 스캔하려던 나는 그림을 그린 8절지 용지가 내 스캐너의 평판 영역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A4용지와 전체를 스캔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작은 컷들만 스캐너로 스캔하고 나머지는 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1.5kg 정도 되는 카메라를 들고 60장 정도 되는 그림의 사진을 찍는 동안 땀을 여섯 번이나 닦았음에도 웃옷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요즘 내게 일어나는 많은 변화의 원인을 약 복용 주기의 변화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그저,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내 몸이 '곯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땀이 많지 않은 체질이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자고 일어날 때마다 잠옷이 땀을 흡수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땀 외에도 내가 느끼는 변화로는 꿈이 매우 선명해졌다는 점이 있는데, 어젯밤처럼 아기 둘을 돌보는 꿈을 8K로 꾸다 보면 일어나서도 쉬이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내가 주로 겪은 부작용은 구토나 소화 기능에 관한 것으로, 꿈을 더 생생하게 꾸거나 어지럽거나 땀이 더 많이 나는 류의 부작용은 오직 약의 복용량이나 복용 주기에 변화를 주었을 때만 경험했기 때문에 약의 부작용을 경험하는 것은 약을 처음 복용하기 시작할 때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잘 때 나는 땀이야 관찰할 길이 없지만 사진을 찍는 내내 땀이 너무 나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방이 더운 것도 아니었고, 옷도 두껍게 입지 않았는데 땀은 어느새 송골송골 맺히는 수준을 넘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귀 근처에서 등줄기까지 말이다. 외출 후 밖에서 입은 옷을 벗어놓을 때는 또 어떤가. 옷의 허리춤이나 등 허리께가 만져볼 필요도 없이 축축했다. 아무리 악몽을 꾸어도 땀을 흘리며 깨어난 적은 드문 편인데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 날엔 잠옷 상태가 볼만하다. 어느 날은 진심으로 '내가 혹시 지도를 그린 건가'라고 생각했다.
10mg짜리 렉사프로를 반으로 자르면 새끼손톱의 1/4보다도 작다. 그런 작은 약이 몸에 들어와 미치는 영향은 확실하게 그 약이 몸속에 있음을 알려주니, 존재감만은 짙다. 항생제를 먹을 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50kg 남짓 되는 어른의 몸에 고작 5mg 정도 되는 약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약이라는 것은 더 작은 몸을 가진 어린 아이나 동물들한테는 얼마나 조심해서 먹여야 하는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사색하게 된다.
만화책을 스물한 권 사서 전부 읽었다.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던 연속 드라마도 보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하지 않던 일을 자발적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건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다.
스스로 징조라 믿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바다가 나오는 꿈, 급하게 진행했음에도 한치의 오차 없이 들어맞는 계획, 3의 배수들과 그들의 공약수로 이루어진 전화번호 같은 것들. 하지만 약에 익숙해지고, 약을 줄이는 데에 익숙해지는 동안 겪은 크고 작은 부작용들은 내가 징조라 믿는 것들이 이유 없이, 그러니까 '운명적으로' 튀어나온 것인지, 아니면 갖가지 부작용의 산물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원하는 것은 썩 복잡하지 않다. 나만의 것, 내가 만든 것, 그리고 복잡하지 않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