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 번째

사랑은 건강보조식품

by 체리

우울증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적지 않다. 제일 절망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단연코 집중력 저하였고, 물리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약물 부작용이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니 '경제 활동은 어떻게 하면 좋지' 싶어 겁이 덜컥 났다. 앞서 두 번 정도, '지극히 간단하고 굳이 응용력이나 판단력을 요하지 않는 활동의 반복', 그러니까 내 경우에는 '필기체 연습'을 찬양한 적이 있는데 필기체에 몰두한 주원인이 바로 집중력의 저하였다.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표시되는 모든 팝업 창을 덮어놓고 수락하다 보면 브라우저가 엉망이 된다. 브라우저에는 이상한 툴바가 깔리고, 작업 관리자를 열어보면 언제 깔아놨는지도 모를 이상한 프로그램이 컴퓨터 성능을 저하시키고 있다. 나는 살면서 사람들의 오지랖을, 충고를 덮어놓고 받아들였다. 막연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에 공감을 남용했다. 그 시간을 들여서, 그 에너지로 충분히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받아들인 남의 사고와 감정과 규칙에 나의 20%를 내어주었고, 우울증이 생기면서 나의 15%는 내가 지나가는 차를 피하지 않고 서있거나 나를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느라 바빴으므로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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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초기만 해도 한번 더 출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영어며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글씨를 보고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극심한 피로의 비중이 가장 컸고 무기력증이 그 뒤를 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멍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죽음 메들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멍해질라 치면 다시 정신을 다잡으려 몸부림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내 상황이 어떤지 알아도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찾아온 조급증이 다시 한번 나를 흐트러놓았다. 소설책이라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째 그것도 신통치 않았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너무 멍하지는 않게 앉아있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유튜브라면 우울하지 않을 때도 즐겨보았지만, 우울증이 생긴 후로는 사람들이 나와 진행하는 채널들은 전혀 보지 않았다. 그나마 쓰는 것만은 이어갈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내가 살아있는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방법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을 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장례비를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아직 치료 중인 입장이라 그다지 좋지 않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정주행했다. 우울증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아직껏 하고 있을지 모를 이야기들이 가슴을 쳤다. '네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네가 그럴 수는 없다'거나 '남겨질 부모님을 생각해야지'라거나 그런 얘기들.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서로 다른 두 사람을 향한 연심에서 오는 혼돈은 시리도록 이해하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자살충동'은 공존할 수 없다고 여기다니. 이상한 일이지 뭔가. 물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늘 솜씨 좋은 바텐더의 세븐 레이어 칵테일처럼 명확하게 나뉘어있지 않다. 사람의 마음은 잘 만든 세븐 레이어 칵테일보다는 운 나쁜 고양이의 뒤섞인 사료에 더 가까운 것 아닌가. 치킨 맛과 참치 맛과 연어 맛이 뒤섞인 혼돈의 도가니 말이다. 저주할 대상이 부서진 락앤락인지 아니면 칠칠치 못한 주인인지 아니면 사료통을 넘어트린 자신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살려면 먹기는 먹어야 하는 그런 것이 보통의 삶에 더 가까운 것 아닌가?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애인을 사랑한다.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죽음을 향한 인력과 공존했다. 사랑이 구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


아니 그렇잖아, 사랑이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으려면 2분 내외의 노래와 안무가 내 꿈도 이뤄줄 수 있어야지. 피와 살로 이루어진 포유류의 90년이 1시간 30분짜리 영화보다 복잡한 건 자명한 사실이잖은가. 우울증에서 사랑은 건강 보조식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의약품은 될 수 없다. 아주 평범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인을 끌어안았지만 내 허망감에는 바람 한 점 일지 않았다. 나는 사랑의 건강 보조 효과마저 기대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지독한 병이었고, 내게는 존재의 위기를 선사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당장 제 호흡과 팔다리 외의 다른 것을 걱정할 여유가 없듯, 공기 중에서 고사하던 내게도 내 종말 외의 다른 것을 걱정할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의 여부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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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애초부터 사랑에 기대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 후로는 여러분이 아는 바처럼 치료를 받았다. 모든 나사에는 짝이 되는 드라이버가 있다. 맞지 않는 드라이버로 나사 머리를 후벼 파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다. 나사 머리가 뭉개진 후에는 모든 것이 더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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