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한 번째

아이는 이제 편지를 쓴다

by 체리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굳이 어느 쪽이냐 하면 나는 편지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다 쓴 편지를 보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종이에 인사말 하나 쓰는 것도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마주한 다른 문제들에 비하면 별로 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고치고 싶었다 한들 어디서부터 노력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편지를 못 쓴다고 그게 내후년의 생존 여부에 관한 염려로 연결되는 건 아니잖은가. 하지만 찜찜함은 있었다. 편지 공장이 언제 폐업한 걸까 싶어서 말이다. *당시에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별개의 문제가 있었으나 나는 매년 명절이나 특정일(스승의 날 등)마다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내는 습관이 있었다. 우울증 이후로는 절전 모드처럼 최소한의 사회생활만 신경 쓰기 때문에 벌써 거의 2년째 안 하고 있다.

볼펜 끝에 납으로 된 추라도 달려있는 것 같았다. 아예 한 자도 못 쓰게 되기 전까지는 다 쓴 편지를 몇 장이나 집에 쌓아두었다. 버리지도 보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쓸 때는 내 마음이라 생각하며 새긴 글자들이 다 쓴 후에는 얼마나 덧없어 보이던지, 글 쓴다는 사람이 작년에 산 옷보다도 빨리 내 글에 질렸다는 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지만 그즈음부터 많은 것들이 급속도로, 덧없이 생각되었다. 일단 빈칸을 모두 채우고 나면 종이 위가 무척 꾸덕꾸덕해진 것처럼 보였다. 별로 착한 사람도 못 되는 주제에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어서 발악하는 한심함이 종이 위에, 달팽이의 점액질처럼 불쾌하게 눌어붙어 있는 듯했다. 써나가는 동안은 별 생각이 없었지만 종이를 말리기 위해 탁자 위에 늘어놓거나 봉투에 넣어 잘 닫은 후에는 그저 애처롭고 추해 보이기만 했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귀여운 편지지를 사모은 노력이 허무하게도. 그렇게 파리 집 책상 위에서 먼지가 부옇게 앉을 때까지 방치된 편지들은 결국 내가 파리를 떠날 때 한 번에 폐기되었다.

다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볼 마음이 든 것은 한 달쯤 전의 일이다. 라벨지를 만들어 편지 겉면에 붙일 때까지만 해도 의욕적이었는데 역시나 글을 쓸 때가 되자 펜 끝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젯밤 세 장의 편지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한 달이나 청소기가 지나는 자리에 방치한 탓에 편지지는 조금 너덜 해졌지만. 다 쓴 후에는 해묵은 숙제를 한 것 같지도 않았고, 애처롭지도 않았다. 못 하던 일을 하나 더 하게 되었다. 그뿐이었다. 평소처럼 SNS를 이리저리 뒤적이다 잠들었다. 일어난 후에는 1년 만엔가 키보드를 청소했다. 키캡을 하 나 둘 씩 빼서, 잘 닦고 다시 끼웠다. 잘 끼워진 키캡은 이 정도면 됐다고 딱 소리를 내는지라 한동안은 조용한 방에 키캡 꽂는 소리만 울렸다. 편지를 못 쓴다는 것이 어떤 불편을 주지는 않았다. 덕분에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쓸데없는 일들로 쌓아 올린 생활을 사랑한다. 그것들은 소중히 지켜질 자격이 있다.


편지지는 만년필로 쓴다는 가정 하에 만들지 않은 종이들이 월등하게 많기 때문에, 종이를 가리지 않고 만년필로 쓰다 보면 펜촉 끝에 종이 섬유가 엉겨 붙어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쓸 때는 만년필을 쓰지 않았다. 내가 가진 네 자루의 만년필 잉크가 모두 말라붙어 엉망진창이 된 것과 편지를 쓰지 않게 된 사건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바람이 기분 좋게 부는 오늘 만년필을 잘 씻어 말린 후 잉크를 채워 넣고 나면 질리지 않고 더 많은 마음을 써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마 한두 달 후에는 분명히 말라붙은 만년필이 한두 자루는 나올 것이다. 쓰고 싶을 때 쓸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